지난 글처럼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에 관한 주제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드리는 답변은 규정을 명확히 소개해 드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본당이나 다른 여러 공동체는 그 상황이나 조건들이 다양하고 다르므로 집전 사제와 봉사자들이 거행 전에 서로 충분하게 협의를 거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Q. 성목요일 저녁 미사 중 대영광송 이후에 오르간 반주는 일절 하지 않는 것이 맞나요?
A. 《로마 미사 경본》의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저녁 미사’ 부분을 보면(321쪽), 7항에 이와 관련된 예식 규정이 있습니다.
“대영광송을 노래한다. 대영광송을 노래하는 동안 종을 친다.
이 노래가 끝나면 파스카 성야에 대영광송을 노래하기 전까지 종을 치지 않는다.
교구장 주교가 상황에 따라 달리 정하였으면 그러하지 아니한다.
또한 이때에는 오르간과 다른 악기는 노래 반주에만 쓸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을 보면, 반주에 오르간과 다른 악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본당에서 아예 사용하지 않고 성가대도 첫 음만 듣거나 아예 듣지 않고 성가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례서에는 노래에 동반되는, 다시 말해서 반주가 필요한 경우에는 오르간과 다른 악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반주’에만 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노래가 없는 독주는 (예를 들면, 묵상곡 연주, 행렬에 동반되는 노래 없는 연주) 할 수 없습니다.
전례 주년의 정점인 이 시기의 전례에서 반주 없이 성가를 불러 악보와 다른 톤으로 부르거나 점점 음이 떨어지게 되는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오히려 이런 현상을 피해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으로 시작된 전례 개혁 이전의 전례서들에서는 ‘반주에만 악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좀 더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참여를 증진하기 위해 개정된 여러 내용 중에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Q. 성목요일 저녁 미사 끝에 성체를 옮겨 모시는 곳을 뭐라고 부르나요?
A. 예전에는 ‘무덤 제대’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용어를 쓰지 않습니다. 굳이(!) 시간을 따져 볼 때 예수님께서 아직 돌아가시지 않으셨기에 그곳은 ‘무덤’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성전이나 경당에 있는 제대가 아니기에 ‘제대’라고도 볼 수 없습니다. 라틴어 원문 전례서에서는 성체가 옮겨 모셔지는 곳을 단순하게 성체 “보관 장소(locus repositionis)”라고만 지칭하고 있습니다. 본당이나 공동체의 상황이나 조건들이 다양하기에 폭넓은 표현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편의에 따라 ‘수난 감실’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수난이 시작된 시점에서 성체를 조배하고 묵상하며 그분 수난에 동참하기 위해 마련된 곳이기에 그렇습니다.
Q.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은 미사가 아닌가요? 영성체가 있는데 미사라고 볼 수 없는 건가요?
A. 미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예식’입니다. 그래서 이날 예식의 구조는 미사와 다릅니다. 말씀 전례, 십자가 경배, 영성체로 이루어진 구조가 얼핏 보면 일반적인 미사 안에 십자가 경배 예식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예물을 준비하고 감사 기도를 바치며 성체와 성혈을 축성하는 성찬 전례가 없기에 미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영성체는 성찬 전례의 한 부분이기에 전부를 다 가리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날 우리는 그 전날 저녁 미사에서 미리 축성해 둔 성체를 모시게 됩니다. 성찬례만큼 풍성한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이 예식에 꼭 참여해 보시기 바랍니다.
Q. 파스카 찬송은 성전 조명을 끈 상태에서 부르나요, 켠 상태에서 부르나요?
A. 본당마다, 공동체마다 다 다르게 거행되는 부분이 이 시점일 것 같습니다. 과거에 ‘부활 찬송’이라고 불렀던 이 노래를, 저도 경험상 본당 신부님이나 본당에 따라 환한 상태에서 들을 때도 있었고, 아직 어두운 상태에서 손에 든 촛불에 의지한 채 들은 적도 있었습니다. 파스카 찬송을 노래하는 분은 작은 전구로 악보를 비추면서 노래하던 모습도 기억에 있습니다.
하지만 현행 전례서인 《로마 미사 경본》은 이미 명확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365쪽 17항, 세 번째 ‘그리스도 우리의 빛’을 노래한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그다음에 부제는 독서대 옆이나 제단 안에 마련된 큰 촛대에 파스카 초를 놓는다.
그리고 성당 안의 불을 모두 켠다. 다만 제대 초는 켜지 않는다.”
그러니까 제대 초만 켜지 않을 뿐, 성당 안에 조명들을 이때 모두 켜야 합니다. 그러면 이어지는 파스카 찬송을 환한 상태에서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규정과 다르게 조명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파스카 찬송을 부르는 곳도 아직 있는 것일까요?
감히 짐작하건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전례의 관습이 남아 있는 경우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에 반포된 1570년판 전례서를 사용하던 때부터 성주간 전례가 개혁되기 시작한 1951년까지 거행되던 전례에서는 ‘빛의 예식’의 구조가 현행 전례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그리스도 우리의 빛’을 노래한 다음에 부제는 복사들과 함께 파스카 초를 들고 파스카 찬송을 부르는데 그 노래의 중간중간마다 그제야 파스카 초에 향덩이를 꽂고, 불을 댕기고, 노래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성전에 등불을 밝힙니다. 지금의 파스카 성야의 빛의 예식과는 전혀 다른 구조였던 것입니다. 이 관습의 흔적이 아직 남아서 지금도 성전의 조명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파스카 찬송을 부르는 것이 아닐까 예상해 봅니다.
물론 감성적으로 봤을 때, 조명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파스카 초와 손에 들고 있는 촛불들에만 의지하며 파스카 찬송을 듣는 것도 분위기가 꽤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규정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분위기만을 따라가기보다는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행 예식에서 파스카 초는 축복받은 새 불로 이미 밝혀졌고, 파스카 찬송을 부르면서 부활의 기쁨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촛불만을 바라보기보다는 이미 주님의 부활로 환해진 세상을 살아가는 빛의 자녀답게 기쁨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