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 펠리칸, 성체성사의 신비

성경 이야기

토마스 아퀴나스, 펠리칸, 성체성사의 신비

2025년 6월 22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25.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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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 탄생 8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성인은 2000년이 넘는 교회 역사에서 저명한 교회학자 중 한 명으로 천사적 박사’(Doctor angelicus)라고 칭송받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성인을 엄청난 영적·인간적 지혜를 지닌 교회의 인물로 소개하시며, “거룩한 신비를 경건하고 이성적으로 탐구하면서도 열렬한 믿음으로 묵상하셨다고 강조하셨습니다(2023711일 자, 토마스 아퀴나스 시성 700주년 기념 서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우리에게 성체 찬미가를 헌정하신 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245년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축일(“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제정하신 우르바노 4세 교황님은 전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성체 찬미가가 필요했고,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부탁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5개의 성체 찬미가를 작성하였는데, 그중에서 엎디어 절하나이다.”(Adoro te devote)는 가톨릭 성가(195)와 가톨릭 기도서에 수록되어 성체 강복 또는 성체 행렬 때 자주 불리는 대표적인 찬미가입니다.

 

찬미가 엎디어 절하나이다.”는 총 7개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섯 번째 연에 시선을 멈추어 봅니다.

 

사랑 깊은 펠리칸, 주 예수님, 더러운 저를 주님의 피로 씻어 주소서. 그 한 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을 모든 죄악에서 구해 내시리라.”

 

여기서 펠리칸’(Pelican)은 사다새 혹은 가람조(伽藍鳥)라고도 불리며, 몸의 길이가 140cm~178cm 가량 됩니다. 몸은 흰색을, 첫 번째 날개깃은 검정색을 띠고 있습니다. 부리가 크고, 부리 밑에 신축성 있는 오렌지 색상의 큰 주머니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펠리칸은 먹이를 구할 수 없을 때 부리로 자신의 가슴을 쪼아 거기에서 나온 피로 새끼를 먹여 살리는데,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펠리칸의 희생적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그가 체험한 예수님의 사랑을 노래하였습니다.

 

사랑이란 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모든 것을 전부 내어 주고도 더 이상 줄 것이 없어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사랑이라 했습니다. 새끼들을 위해 자신의 심장과 내장과 피까지 모두 내어 줄 수 있는 것, 이런 것이 진정한 사랑일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어미 펠리칸의 모습에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보았고, 성체성사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 주시면서 극진한 사랑을 보여 주셨고, 그분의 피로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의 전통 안에서 펠리칸은 성체성사를 상징합니다.

 

성체성사의 신비가 이해하기 얼마나 어려웠는지, 토마스 아퀴나스의 진심 어린 고백을 찬미가의 첫 번째 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두 가지 형상 안에 분명히 계시오나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제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옵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제사이며, 예수님께서 몸소 제관이 되시고 몸소 제물이 되시어 인류 구원을 위하여 봉헌하신 십자가의 희생을 재현하는 제사입니다. 우리는 성찬례에 참여하여 거룩한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성체와 성혈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과의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도 더 줄 것이 없어 미안해하시는 듯한 예수님,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을 우리는 성체성사 안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놀라운 사건에 감사를 드리며, 사제의 손으로 거행되는 성체성사에 참여하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합시다. 주님의 몸과 피를 영원한 생명을 위한 음식으로 받아먹고,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분 안에서 하나가 됩시다.

 

 

Profile
수원교구 사제.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 양성’이라는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신학생들과 함께한 지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리게 느껴졌던 신학생들이 양성을 마치고, 사제 서품 후 파견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와 하느님 백성을 위해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학교 양성자로서 살아가는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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