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의 슬픔
“베드로는 주님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루카 22,61-62)
지난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들었던 이 복음 말씀이 유난히 슬펐다. 예수님을 아주 많이 사랑했으면서도 한순간 그분을 외면하고 눈물을 흘린 베드로의 모습은 성주간 내내 잔상에 남았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웠던 사도들도 그분의 가르침과 그 사랑의 의미를 뒤늦게 깨달았다면, 주님의 먼발치에 있는 우리는 그 의미를 알기 위해 더 부지런히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故 정진석 추기경님의 책을 찾았다.
주님 부활로 정점을 찍는 하느님의 구원 사업과 인류를 향한 그분의 넘치는 사랑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면, 예수님의 생애가 압축된 성주간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분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습니다》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이 일주일 동안 겪으신 사건들을 조명하며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는 않는다. 저자는 4개 복음서를 엮어 가며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고 거기에 역사적, 학문적 설명을 덧붙인다. 또한 중간중간 성화가 곁들여져 있어 당시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기도 좋고,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조각처럼 알던 말씀 사이의 공백이 슬며시 채워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 낚는 어부와 십자가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을 되짚어 보면 그 시간이 길고도 짧게 느껴진다. 이 기간에 많은 사건이 벌어지지만, 특별히 베드로의 ‘성장 서사’에 눈길이 갔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자신의 충성을 장담했지만 결국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 그러나 그 후에 그가 죄를 뉘우치고 믿음을 잃지 않았던 데에는 예수님의 기도와 격려가 늘 존재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는 슬퍼하며 대답한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요한 21,17)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신다. 주님을 부정했던 베드로의 잘못과 그의 부족했던 용기를 더 큰 사랑으로 품어 안아 주시는 순간이었다. 예수님의 사랑은 베드로보다 부족하고 나약한 우리에게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 말씀이 주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와 연결된다는 점이 새삼 놀라웠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이렇게 그는 주님 부활 이후,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어부’가 되었다.
부활의 기쁨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십자가를 져야 한다. 부활의 기쁨에 십자가의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다시 떠올려 본다.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를 것인가. 돈이 제일로 여겨지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아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개인의 노력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가능한가? 그 노력을 언제까지, 어느 정도의 힘으로 지속할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이 마음속에 어지럽게 피어날 때, 너무 거창한 생각과 먼 미래를 상상하기보다는 그저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나와 주변 사람을 위한 작은 사랑부터 실천해 보자고 다짐한다. 나의 십자가는 내가 지고 갈 수 있을 만큼의 무게일 것이다. 부디 그것을 너무 고통스럽게 지고 살아가지 않기를바라며 이번 부활 시기에는 주님께 믿음과 인내, 지혜와 용기를 청하고 싶다. “주님 대신에 제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까지 제가 할 일이 끝나지 않습니다. 각 사람의 인생에 성금요일의 수난이 없는 한,부활의 기쁨도 없을 것입니다. … 십자가가 없는 한, 빈 무덤의 기쁨도 없습니다. 갈증이 없는 한, 천국의 기쁨도 없습니다. 예수님, 이 힘든 작업을 제가 마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318쪽)
* 이 책을 읽을 때, 영화 《부활》을 함께 감상해 보길 바란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기까지 3일 동안 로마군이 그분의 시신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전개된다(더 이상의 내용은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생략).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시각적으로 새롭게 창조한 작품으로, 책과 함께 각각의 텍스트를 비교하며 읽을 때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
by. 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