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60,1-6; 에페 3,2.3ㄴ.5-6; 마태 2,1-12]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12월 25일에 시작된 성탄 축제는 주님 공현 대축일에 그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공현公顯’은 그리스어 ‘에피파네이아’의 번역으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자 메시아로서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내심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으로는 동방 박사에 관한 이야기가 선포되는데(마태 2,1-12), 이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에는 없고 마태오 복음서에만 유일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멀리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서 ‘동방’은 (명확하지는 않으나) 페르시아나 바빌로니아, 또는 아라비아 지역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에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을 찾아 그분께 경배를 드리기 위해 온 것입니다(마태 2,1-2 참조). 박사들은 신비로운 지혜를 지닌 현인들이었습니다.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찰하는 능력을 지닌 천문학자 혹은 점성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박사들이 몇 명이었는지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교회 전승에 따르면 세 명의 박사가 찾아왔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가스파르, 발타사르, 멜키오르).
별은 박사들을 멀리 동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인도해 주었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또다시 길을 가리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마태 2,11)에게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그토록 만나길 간절히 원했던 ‘유다인들의 임금’을 찾은 기쁨에 동방 박사들은 환호하며 노래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이사 60,1-3)
이사 60장 1-6절에 따르면, 시온 위에 빛이 떠올랐고, 민족들이 그 빛을 향하여 다가옵니다. 그 빛은 “민족들의 빛”(이사 42,6)이 되고자 했던 ‘주님의 종’과 그를 통해 변화된 ‘시온의 자녀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시온에게 빛을 보내시고 그들에게 빛이 되어 시온을 구원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눈멀고 귀 먹어 회개할 줄 몰랐던 시온의 자녀들은 ‘주님의 종’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바빌론 유배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된 ‘시온과 예루살렘의 구원’에 관한 하느님의 말씀은 이제 새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찾고서 환호하고 기뻐하는 동방 박사들의 찬미 노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마태 1,21 참조).
마리아 곁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발견한 동방 박사들은 그를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알아보았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경배하다’ 또는 ‘숭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프로스퀴네오’는 존경할 만한 권위나 품위를 갖춘 사람(예를 들면, 임금)에 대하여 공경과 순종의 자세를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마치 신하가 임금에게 합당한 자세를 취하듯이, 박사들은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행위를 보여 준 것입니다.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에 우리는 새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찾아 경배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별을 만나 볼 수 있었듯이, 이제 그 빛은 우리를 빛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환히 빛나는 별을 보고 우리도 밝은 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별이 되어 사람들을 빛이신 그리스도께 데려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