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복음 묵상

성경 이야기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복음 묵상

가족이 행복한 이유

2024. 12. 28
읽음 120

<주일 복음: 루카 2,41-52>

 

오늘 교회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성탄 팔일 축제 안의 주일을 주님께서 이루신 가정을 본보기로 우리들의 가족을 살피자고 권합니다. 이 권고에 따라 가족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 가족은 행복합니까? 가족이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여러 가지가 머릿속에 스쳐 갑니다. 머물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하고, 먹고 살기 위해 안정된 수입이 있어야 합니다. 덧붙여서 가끔 가족들이 함께 외출할 여유가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당연히 부모님은 서로 화목해야 하고, 자녀들은 부모님 말씀을 잘 따르고, 하는 일을 성실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형제들 간의 우애는 기본입니다. 조부모님과도 잘 지내고 서로 관계를 놓치지 않고 안부를 물으며 건강하고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나열한 것들은 모두가 동의하는 행복한 가족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비추어 우리 가족을 한번 살펴보면 어떻습니까? 지금 말씀드린 조건에 맞는 가족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실 이런 가족은 많지 않습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모든 가족이 각각 힘든 역사와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척하거나 문제를 무시하거나, 그 심각성을 모를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을 꾸리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리 가족이 가진 고통은 그 모습만 변할 뿐, 죽을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가족을 행복하지 않도록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가정을 성가정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한 가족이 있습니다. 유일한 아들은 젊은 나이에 집을 떠났습니다. 부모와 연을 거의 끊고 지내다 감옥에 갇힙니다. 그리고 끝내 정치범으로 요절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그 못난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라는 이는 가정생활에 도움이 되었는지 어쨌는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제력도 그리 좋지 않았고, 더 나아가 이 가정의 시작부터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가족이 우리가 그렇게 추구하는 행복한 가정이 맞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 가정을 성가정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가진 행복한 가정, 성가정의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세상이 이야기하는 행복한 가정이라는 기준 말고, 성가정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성가정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있는 가정입니다. 일이 잘될 때, 자녀가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또는 시험을 잘 봤을 때, 아버지가 돈을 잘 벌 때, 부모님의 사이가 좋을 때만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그분께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불행의 한가운데에서, 가족의 모든 역사 안에서 주님을 찾는 가정이 성가정입니다. 그 모든 것 안에서도 주님을 놓치지 않는 가정이 성가정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 전혀 행복하지 않았던 예수님의 가정이 그러했듯이, 우리의 가정도 하느님을 중심으로 모셔야 합니다. 가족 구성원이 잘나서 또는 잘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서로를 서로에게 맺어 주셨음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듯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에게서 주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애쓰며, 그 고난의 길을 하느님과 함께 가는 가정이 바로 우리들의 성가정, 세상이 이야기하는 행복한 가정과는 다른 진정으로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리고 이 성가정은 무엇보다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멘.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로마 교황청립 성서 대학에서 성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라는 말씀을 사제 생활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으로 실현하고자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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