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도 출판사가 있었다?

교회사 여행

조선 시대에도 출판사가 있었다?

위대한 신앙 선조들의 뿌리를 찾아서

2025. 0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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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8일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축일입니다. 

이날은 출판인의 수호성인을 기억하는 날로, 가톨릭출판사의 창립 기념일이기도 하죠.
오늘은 한국 가톨릭 교회 출판 역사의 시작점으로 함께 잠시 떠나 보려 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출판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828일은 가톨릭출판사의 창립 기념일이다. 이날을 기념하는 이유는 출판, 인쇄, 작가, 학자들의 수호성인인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축일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생전에 방대한 저술 활동을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진리의 길을 제시하고 교회 역사의 큰 족적을 남겼다.

 

한국 최초의 근대 출판사인 가톨릭출판사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보여 준 진리의 빛을 따라 걸어가며,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오늘은 출판사 설립에 앞서,문서 선교라는 이름 아래 복음을 전하려 애썼던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한 권의 책, 하나의 믿음이 이어온 길

 

1861, 베르뇌 주교는 조선대목구 목판 인쇄소를 설립하며 출판 선교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을 떠나면서 그 흐름이 일시적으로 끊기고 말았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1878, 청나라로 피신했던 리델 주교가 조선에 재입국하면서 다시금 인쇄소 설립을 추진했다. 그는 조선에 머물던 선교사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잘 알았고, 교회 재건을 위해서는 교리서와 신심 서적 보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리델 주교가 체포되어 청나라로 송환되면서 국내 인쇄소 설립은 무산되었고, 출판 사업은 국외에서 이어졌다.

 

이후 리델 주교의 뜻을 이어받아 일본 요코하마의 레비 인쇄소에서 코스트 신부가 중요한 활약을 펼친다. 그는 세계 최초로 188012월에 《한불자전》을, 18815월에 《한어문전》을 간행했다. 이 책들은 한글과 프랑스어, 한자를 아우르며 언어 간 이해를 돕는 귀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188112, 조선대목구 대표부와 경리부가 나가사키로 이전하면서 인쇄소도 함께 옮겨 갔고, 이때 최신 설비를 갖춘 독자적인 조선대목구 공식 성서 활판소가 설립되었다. 이는 한국 천주교 출판 역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88511, 이 근대식 활판소는 마침내 국내로 이전하면서 정동에 자리 잡았고, 188812월에는 종현으로 옮겨 종현 성서 활판소’(현재 명동대성당 파밀리아 채플이 있는 자리)로 불렸다. 이후 1979827, 인쇄소는 중림동으로 다시 이전하여, 오늘날 가톨릭출판사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어를 이해하는 집념의 결정체, 《한불자전》과 《한어문전》

 

《한불자전》은 한국어를 프랑스어로 풀이한 사전이고, 《한어문전》은 프랑스어로 펴낸 한국어 문법서다. 이 두 책은 단순히 선교를 위한 도구를 넘어, 언어와 문화 교류를 담은 중요한 유산이다.

리델 주교는 이 두 책의 원고를 완성하기까지 조선어 연구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다음은 그의 서한 중 일부 내용이다.

 

저는 사랑스러운 우리의 조선을 그리며, 저의 생각을 계속 그곳에 머물게 하기 위하여 조선어 문법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거의 완성을 보았고, 한불사전의 편찬을 위하여 많은 자료를 모았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모든 작업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1)

 

리델 주교는 《한어문전》 초고는 1867년에, 《한불자전》 최종고는 1873년에 완성했지만 출간까지는 각각 수년이 더 걸렸다. 이 작업은 최지혁, 김여경, 권치문 등 조선인 조력자들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이 두 책은 당시 조선에서의 인쇄가 어려웠던 탓에,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간하기로 결정됐다. 리델 주교는 코스트 신부를 인쇄 책임자로 임명했고, 그는 18784월 요코하마에 도착해 인쇄를 준비하지만, 실제 인쇄는 8개월이 흐른 뒤에야 시작됐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무엇보다 먼저 프랑스에서 새 활자를 들여와야 했는데, 이것만 해도 석 달 이상 걸렸습니다. 그 사이 도쿄의 일본인 인쇄소에서 주형을 준비하고 한글 활자를 주조해야 했습니다. 저희는 이 작업이 프랑스에서 유럽어 활자가 도착하기 전에 완성되기를 기대했습니다. …… 마침내 저희는 열여섯 페이지를 처음 찍어 내는 데 필요한 재료를 거의 모을 수 있었고, 지금 저는 교정쇄를 수정하는 중입니다. 이렇게 첫걸음을 내디뎠으니 조금 더 빨리 진행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2)

 

그렇게 수많은 우여곡절을 딛고, 두 권의 책이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본다. 18801211일에 간행된 《한불자전》과 1881521일에 간행된 《한어문전》이다. 한글을 체계적이고 학문적으로 다룬 세계 최초의 두 기록물은 앞으로도 교회사, 문화사, 국문학사 전반에 결쳐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조명되어야 할 역사적 유산이다.

 

오늘날 우리는 책 한 권을 읽을 때 그 안에 담긴 수고와 헌신을 종종 잊곤 한다. 그러나 200여 년 전, 조선에서 한글 활자를 만들고 인쇄소를 세우며 언어의 벽을 넘기 위해 애썼던 이들의 여정은 단순히 출판 활동이 아니었다. 믿음과 사랑을 문자로 새긴 선교 기록이었다.

 

《한불자전》과 《한어문전》은 결코 지나간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이는 우리 교회가 어떤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다. 그러니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복음을 문서로 전하려 했던 신앙 선조들의 집념은 지금도 이어지며, 우리는 그들의 피와 땀, 눈물을 딛고 하느님께 나아가고 있다.

 

책으로 신앙을 전하고자 모든 것을 걸었던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교회 안에서 믿음을 나눌 수 있다. 그들의 발자취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신앙 여정 중의 가장 깊은 응답일 것이다.

 

얼마 전부터 새 인쇄소가 가동되고 있고, 곧 인쇄물을 낼 것이라는 사실을 신부님께 알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 기술자들이 아주 능수능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발전할 것이고, 시작한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3)

 


 

* 참고 문헌

1) 펠릭스 클레르 리델 저, 한국교회사연구소 번역위원회 역주, 《리델 문서Ⅰ(1857~1875) ― 병인양요와 선교사 활동의 좌절: 조선교구 역대 교구장 서한집 제1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94, 181(18671월 리델 주교가 형수 레오니 리델에게 보낸 서한) 참조).

2) 참조:A-MEPVol. 580(B), f. 844 / CBCK 판독자료집, 64, Lettre de M.Blanc à M. Delpechl(블랑 부주교가 파리본부의 델페슈 신부에게 보낸 서한. 188091, 전라도, 함열). 

3) 참조:A-MEPVol. 580(B), f. 844 / CBCK 판독자료집, 64, Lettre de M.Blanc à M. Delpechl(블랑 부주교가 파리본부의 델페슈 신부에게 보낸 서한. 188091, 전라도, 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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