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의 시작을 다시 읽다

가톨릭 예술

이해인 수녀의 시작을 다시 읽다

《민들레의 영토》 출간 50주년, 신간 《해인과 바다》와 함께 돌아보다

2026. 0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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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씨를 바람에 날려 또다시 노란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저의 뛰어나지 않은, 그러나 당신 안에 불리운 진실한 노래들이 이웃의 가슴속에 전달되기를 빌고 싶습니다. 지난번 광안리에 갔다가 가져온 민들레 씨들이 아직도 제 곁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주고 있어요.”

─ 《해인의 바다》 본문에서

 

부산 광안리 해변에서 5분쯤 걸어가면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원이 나온다. 이해인 수녀는 6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에서 머물며 다양한 저서로 자신의 기도와 사랑, 일상의 발견을 전해 왔다. 그 오랜 시간의 시작점에 올해 출간 50주년을 맞는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있다.

 

1966년 청원기 시절의 이해인 수녀는 돌 틈에서 피어난 민들레 한 송이를 바라보며 민들레처럼 인내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 나가 어디서든 꽃을 피우는 민들레와 같이, 그의 글 역시 오랜 세월 동안 독자들 곁으로 스며들어 조용한 위로와 맑은 사랑의 마음을 전해 왔다.

 

수녀원 한편에 마련된 해인글방에는 그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 이해인 수녀는 지금도 그곳에서 읽고 쓰는 일을 이어 가고 있고, 글방 안에는 숱한 사연이 담긴 애장품과 수십 년 동안 전국의 독자들이 보내온 편지가 세월의 결만큼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렇게 오래 이어져 온 그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오늘의 이해인을 만든 젊은 날의 기록과 마주하게 된다.

 


 

치열하고 순수한 수도 생활의 기록, 《해인의 바다》

 

 

 

《해인의 바다》는 이해인 수녀가 지나온 시간의 한 자락, 그중에서도 치열하고 순수했던 시기를 잘 보여 주는 책이다. 올해 330일 출간을 앞둔 이 산문집에는 1976년 종신 서원 직후에 남긴 수도 생활의 기록, 종신 서원을 앞두고 떠난 8일간의 피정 동안 써 내려간 묵상이 함께 실려 있어 그 무렵의 내면을 한층 가까이 들여다보게 한다.

 

이 책은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세상에 내놓던 시기, 수도자로서 자신의 삶과 신앙을 다시 돌아보던 시기의 기록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독자에게 익숙한 이해인 수녀의 단정하고 맑은 문장이 어떤 시간을 지나며 형성되었는지 보여 주는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진솔함이다. 신앙 앞에서 흔들리고, 갈등하며, 슬퍼하고 후회하면서도 다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고자 다짐하는 젊은 수도자의 목소리가 꾸밈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희망하는 일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되어 가는 모든 일이, 스스로의 내면이 온통 모순투성이라는 생각으로 오후 내내 답답했어요.”

 

살아갈수록 단순한 것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영혼이 당신 안에서 단순하면 단순해질수록 더욱 맑고, 조용하고, 깨끗한 마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당신을 향한 부질없는 의심이나 주제넘은 항의, 반발 따위는 하지 않아도 좋겠지요. 언제나 이 어쭙잖은 마음을 당신 앞에 탁 털어놓는 어린이가 될까요.”

 

이 기록은 신앙을 이미 완성한 이의 언어가 아니라, 신앙 앞에서 자신을 조금씩 다듬어 가는 한 사람의 언어에 가깝다. 때로는 조심스럽게 마음을 고백하고,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하느님 앞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는 모습에서 우리는 신앙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공감하게 된다. 이는 《해인의 바다》가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읽히는 이유다.

 


 

《민들레의 영토》 출간 50주년을 기념하며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 〈민들레의 영토〉 중에서

 

이해인 수녀의 시 〈민들레의 영토〉 첫 구절은 언제 읽어도 마음을 맑고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유난히 마음이 메마른 날에도, 세상이 어둡고 거칠게 느껴지는 날에도 이 시는 읽는 이의 마음에 내려앉아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이해인 수녀는 오랫동안 일상에서 사랑과 신앙의 의미를 길어 올려 시로 써 왔다. 그의 문장은 순수한 동시에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삶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희망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평범한 하루를 통과하며 발견한 사랑의 증거들이자, 견뎌 낸 시간이 남긴 영적 기록으로 읽힌다.

 

 

 

올해는 이해인 수녀의 대표작 《민들레의 영토》가 출간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종신 서원을 기념해 50년 전 가톨릭출판사에서 펴낸 이 시집은 50쇄를 훌쩍 넘기며 꾸준히 읽혀 왔다.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만큼 이번 50주년 기념판에는 특별히 이해인 수녀의 애장품 사진과 인터뷰를 함께 수록했다. 오래 간직해 온 물건들에 깃든 사연을 들려주는 그의 말 속에는 작고 사소한 것을 깊이 아끼는 마음이 배어 있으며, 지나온 삶의 자취와 성찰을 들려주는 인터뷰에는 독자를 향한 사랑이 그대로 묻어난다. 덕분에 독자는 그의 시를 길러 낸 삶의 이야기를 더 깊이 만나게 된다.

 


 

‘2026년의 해인‘1976년의 해인에게

 

부산을 찾은 날, 서울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날이 몹시 춥고 흐렸다. 그러나 하늘은 점점 개기 시작했다. 이해인 수녀가 머무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원 마당에는 어느새 따뜻한 봄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이해인 수녀는 수도원 건물을 하나하나 안내하며 함께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손을 잡아 주기도 하고, 팔짱을 낀 채 보폭을 맞춰 천천히 걷기도 했다. 그 곁에서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을 겪으며 단단해진 사람이 전하는 고요 덕분이었으리라.

 

60년 넘는 세월 동안 그는 같은 자리에서 읽고, 쓰고, 기도했다. 그리스도를 향해 글을 쓰며 자신을 내어놓는 일은 그에게 곧 기도였다. 그렇게 그의 기록은 시가 되고, 산문이 되고 또 하나의 기도가 되어 독자들에게 전해져 왔다.

 

그때의(예전의) 제가 아주 얌전하고 내성적인 작은 민들레 같았다면, 50년을 살고 난 지금의 저는 산전수전을 겪으며 조금 더 단단한 민들레가 되었다는 점 아닐까요. 세상의 바람과 햇볕을 다 맞으며 곳곳으로 퍼지고, 그러면서도 뿌리를 더 깊이 내린 민들레 말입니다. 이제는 노년이 되어 흰머리를 민들레 솜털처럼 날리며 자기 삶을 봉헌하는 민들레가 된 셈이지요.”

─ 《민들레의 영토 출간 50주년 기념판》 본문에서

 

‘1976년의 해인역시 지금 이해인 수녀가 건네는 이 말에 위로를 받지 않을까. 흔들리면서 깊이 뿌리를 내렸고, 비로소 더 단단한 민들레가 될 수 있었다고. 그 시간들은 반드시 꽃을 피울 것이라고. 그가 전하는 문장과 기도가 오늘도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살아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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