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수난 주일을 맞는 오늘, 우리는 루카가 전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야기를 읽습니다. 복음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루카가 이 장면을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묘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단 하나의 절로 언급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두 죄수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루카 23,33)
이어지는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내용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대하는 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전하는 데 집중합니다(23,35-53). 그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백성의 지도자들’, ‘군사들’, ‘죄수 하나’, 그리고 ‘다른 죄수’, ‘백인대장’, ‘군중’입니다. 이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루카가 예수님의 죽음 이야기를 전하며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우선, 백성의 지도자들은 십자가 아래에서 멀리 서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빈정거립니다.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루카 23,35)
다음으로 군사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역시 십자가 아래에 있지만, 신 포도주를 예수님의 입에 들이댐으로써, 백성들의 지도자보다는 조금 더 예수님께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을 비웃는 태도는 여전합니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루카 23,37)
이렇게 처음에는 십자가 아래 저 멀리에서, 다음으로는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예수님과 물리적인 거리가 조금은 더 가까워진 이들, 예수님의 죽음을 비웃으며 적대시하는 이들의 모습은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를 통해서 최고조에 이릅니다. 같은 죄수의 신분으로, 예수님과 같은 높이의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 하나가 예수님을 비웃으며 말합니다.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 23,39)
루카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극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비웃음이 절정에 이른 바로 그때, 가장 강렬한 신앙 고백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통해 드러납니다. 예수님 옆에 매달린 다른 죄수 하나가 말합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예수님을 참된 구원자로 믿고 고백하는 간절한 청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해 올라갔던 우리의 시선은 비웃음이 있던 자리에서 그것을 이겨 내는 참된 신앙 고백을 만나게 되며,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의 반응을 통해 그 믿음이 다시 십자가 아래로 내려옴을 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본 백인대장이 고백합니다.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루카 23,47)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예수님의 죽음을 조롱한 군사들과 달리,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신앙을 고백한 다른 죄수가 보여 준 것과 같은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군중들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군중도 모두 그 광경을 바라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루카 23,48)
말을 통한 신앙 고백은 아니지만,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는 행동을 통해서 군중들이 예수님을 참된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십자가상 위에서 다른 죄수 하나를 통해 표현된 참된 믿음이, 십자가 아래 멀리서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던 군중들에게 전해져 다시금 사람들 속으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나요? 지금 우리가 살펴본 여러 등장인물은 각자의 신앙 상태를 대변해 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안에도 예수님을 불신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루카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의심의 그 자리에서, 가장 절실한 믿음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다가오는 성삼일 동안 예수님의 죽음을 깊이 묵상하며, 부활의 기쁨을 맞이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