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간음하다 붙잡혔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 그 여인을 돌로 쳐 죽이기 위해 모여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자가 먼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십니다. 다른 이를 비난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바라볼 것을 요구하신 것이지요. 결국 모였던 이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아, ……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0-11)
이 장면은 죄지은 여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오늘은 예수님 그리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용서’의 의미에 대해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용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용서에 관한 몇 가지 명언들을 떠올려 봅니다.
‘용서하는 것은 기억하는 것을 전제한다.’(폴 틸리히)
‘어리석은 자는 용서도 안 하고 잊지도 않는다. 순진한 자는 용서하고 잊는다. 지혜로운 자는 용서하되 잊지는 않는다.’(토머스 샤츠)
용서를 설명하기 위한 여러 관점 중에서 이 명언들은 ‘기억’에 초점을 맞춥니다. 특히, 기억해야 하는 요소 중에서도 ‘용서해야 하는 내용’에 관한 기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방금 언급한 명언들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용서하는 것은 [누군가 나에게 잘못한 것들을] 기억하는 것을 전제한다.’
‘지혜로운 자는 [누군가 나에게 잘못한 것들을] 용서하되 [그것을] 잊지는 않는다.’
이처럼 내가 용서해야 하는 대상이나 그 내용을 기억하는 일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용서하기 위해서, 그와 관련된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잘못을 어떠한 마음으로 기억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러한 용서에 응답하기 위해서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이에 대해서 오늘 독서가 그 답을 알려 줍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이사 43,18-19)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필리 3,13)
예수님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언제나 용서받는 존재입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인간적인 마음으로 누군가를 용서하면서 내가 용서해야 하는 내용을 기억하고, 또 누군가를 용서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아갈 때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용서하시는 예수님과 하느님은 그러한 마음으로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옛 잘못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말씀하실 뿐입니다. 즉 희망만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예수님과 하느님의 이러한 마음은 나약한 우리 인간이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무한하신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언제나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으로 이끄시려는 사랑이 있으시기에, 우리의 과거가 중요하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하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깨달았다면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과 하느님 앞에서 저질렀던 잘못들에 머물러 있지 말고, 새로운 삶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야 합니다. 잘못한 것들을 무조건 잊어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하느님이 베풀어 주시는 사랑을 믿고, 보다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자는 의미입니다.
사순 시기는 우리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으시기 위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의 마음을 묵상하는 시기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그 마음을 느껴 보고자 애쓰고 그에 감사하며 변화된 삶으로 응답할 수 있는 사순 시기를 보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