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가오는 한글날은 단순히 문자 창제를 기념하는 일을 넘어, 우리 삶과 신앙의 뿌리도 함께 성찰하는 날이다. 우리 신앙은 처음부터 모국어로 기도하고 노래하며,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을 통해서야 비로소 우리는 모국어, 곧 한국어로 전례를 드리며 하느님과 더 깊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복음을 담는 그릇, ‘한글’의 의미와 그 가치를 생각하며 오늘날 전례의 기쁨을 정현진 신부가 소개한다. |
2015년 3월 7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의 ‘모든 성인 성당(La parrocchia di Ognissanti)’에서 미사를 거행하며, 바오로 6세 성인 교황께서 사상 최초로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로 미사를 집전한 역사적 사건의 5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1965년 3월 7일, 바오로 6세 성인 교황은 바로 이 성당에서 라틴어가 아닌 한 지역 교회의 하느님 백성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로 미사를 집전했고,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른 전례 개혁의 ‘실질적 적용’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념비적인 이날, 그는 벽을 바라보지 않고 신자들을 바라보며 미사를 주례했습니다.
50년 후 같은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요한 복음 2장의 성전 정화 일화(13~25절)의 뜻을 강론에서 밝힙니다. 곧 “전례와 삶의 일치(la corrispondenza tra liturgia e vita)”가 이루어질 때 “진정한 전례”를 거행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성전 정화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전례의 정점인 미사 참여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여 자신들의 삶 한가운데로 가져가야 하고, 그래야만 말씀이 각자의 일상으로 되돌아간 신자들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진정한 경청
전례 거행에 현존하시는 주님께서 몸소 말씀을 선포하셨다고 해서 저절로 그 말씀이 들리고 마음에 새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깨어 있는 믿음과 활기찬 ‘응답’이 있어야만 말씀의 ‘경청이 완성’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우리가 답하는 것, 이것이 바로 경청입니다. ‘경청하는 사람’은 들은 말씀을 실행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응답 없이 단지 소리만 들은 사람은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마태 7,26)과 같습니다.
만약 교회가 ‘라틴어로만’ 기도하고 말씀을 선포한다면, 신자들은 주님의 목소리를 듣기는 하겠지만,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어 삶으로 응답하기에는 무척이나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느님 백성이 말씀을 더 잘 알아듣도록 마땅히 방안을 마련해야 했고, 모국어로 전례를 거행하고 말씀을 선포하도록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노력의 결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는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비오 5세 성인 교황에 의해 서방 교회 최초로 통일된 전례서가 마련되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400년 가까이 라틴어로 하느님을 경배했던 외형적 모습을 고수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하느님 경배를 위한 통일된 공적 기도 양식이 없었기에 기도 법칙(Lex orandi)의 일률성을 간절히 바라는 과정에서 라틴어를 선택했고, 동시에 가톨릭 교회를 루터의 개혁 운동에서 보호하는 가운데 쇄신하려고 경배의 단일성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교회는 그 시대의 시급한 요청에 응답하기 위한 수단으로 라틴어를 선택했지만, 라틴어 자체가 본질은 아닙니다.
모국어 미사의 중요성
그렇다면 현시대의 요청은 무엇일까요? 바오로 6세 성인 교황은 오늘의 하느님 백성은 그 어느 때보다 주님의 말씀을 향한 갈망이 크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 교회들의 언어로 말씀과 기도의 법칙(Lex orandi)이 번역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념 미사를 마치고 ‘모든 성인 성당’ 밖으로 나오며 신자들에게 말했습니다.
“교회가 하느님 백성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그들이 거행하는 것을 잘 이해하도록 한 것은 정말 용감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모국어로 깊이 이해하는 가운데) 미사를 거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뒤로 물러서지 말고 이 길을 계속 걸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