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은 ‘참된 임금이신 예수님’이라는 개념이 구약과 신약에서 어떻게 드러났고 발전했는지 보여 줍니다.
우선 제1독서인 다니엘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실존 인물인지, 아니면 당시 현자들이 종종 사용하던 이름인 다니엘을 차용하여 신앙의 지혜를 전하려 한 것인지는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서 토론 대상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서가 기원전 586년경에 있었던 바빌론 유배 이후 상황을 다룬다는 점에서, 인물의 실제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다니엘서는 유배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의 가르침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에 기록된 임금들의 이름을 고려하여 연대와 상황을 추정해 보면, 다니엘은 유다 땅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인물로 여겨집니다. 또한 바빌론을 점령하고 뒤이어 유다 백성을 억압했던 셀레우코스 왕조 시대도 겪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다니엘서가 오랜 기간 바빌론과 헬레니즘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억압을 겪으며 신앙도, 삶에 대한 희망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구원의 선포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구절이 바로 오늘 독서 내용입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다니 7,13-14)
이처럼 구약에서는 오랜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람의 아들’ 같은 구원자가 등장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모든 나라를 다스리기를, 그러한 강력한 왕권을 가진 임금이 등장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임금에 대한 희망은 신약의 예수님에게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뀝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냐고 물으면서, 예수님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워 십자가형에 처할 명분만을 찾는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시간 기다려 온 임금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믿었기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에 그분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강력한 힘으로 다른 나라를 눌러 이기는 나라가 아니라고 밝히십니다. 이 말을 들은 당시 유다인들은 큰 실망감과 어쩌면 배신감까지도 느꼈을 것입니다. 이 감정이 분노로 바뀌어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일 테지요.
그렇다면 그리스도교는 왜 예수님을 참된 임금으로, 우리가 기다려 온 메시아로 고백하는 것일까요? 그 답을 제2독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묵시 1,5-6)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가장 중요한 일을 언급합니다. 강력한 왕권으로 다른 세력을 이기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악행이나 죄에서 해방되는 것이 진정한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 일을 해 주셨고, 따라서 우리는 그분을 참된 임금으로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하기 위해 당신의 목숨을 봉헌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는 죄에서 멀어지고 구원에 가까워지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주일 복음: 요한 18,3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