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저절로 맞이하는 것만 같은 오늘은,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구원의 날’입니다!
‘어느 오늘’에 베드로와 요한은 파스카 음식을 차리도록 파견되었습니다. 늘 그렇듯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을 착하고 순박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가서 우리가 먹을 파스카 음식을 차려라.”(루카 22,8)라는 ‘주님의 말씀’에 성실하게 순명하여, 음식을 차리고 만찬에 참석합니다. 그때만 해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왜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루카 22,15)라고 하시는지 온전히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최후의 만찬’이라 부르곤 하는 그 식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구원 성사의 원형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어도, 아버지 하느님께서 영원으로부터 세우신 구원 계획 안에서, “모든 창조와 모든 역사는 이 만찬을 위한 거대한 준비”1)에 불과했던 것이고, 제자들이 파스카 음식을 차린 ‘어느 오늘’은 “마침내 구원 역사 그 자체가 드러나는 시점”인 ‘만찬 때’로 수렴되고 있었던 것입니다.2) 바로 그때, “파스카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3)
‘어느 오늘’에 무지할 뿐만 아니라 준비도 되지 않은 제자들에게 구원의 선물이 무상으로 주어졌듯이, ‘나의 오늘’도 그렇습니다. 그때 그 제자들보다 더 부족하고 나약한 나에게도 성체성사를 통해 부활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성체성사, 자비의 선물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선물을 받기에 우리는 너무 부족합니다. 심지어 거룩한 선물을 받고자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공짜라서 그럴까요? 토마스 아 켐피스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심에 그리 열중히 끌리지 않고 냉랭하며 준비가 부실하니 극히 울고 탄식할 일입니다.”4)
이렇게 말한 것이 대략 15세기경이라 하는데 오늘은 다를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가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선물은 어마어마하게 큰데 그것을 받는 사람은 너무 작아, 우리는 그 엄청난 불균형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5)
그렇지만, 교황은 희망의 말을 덧붙입니다.
“주님의 자비를 통하여 그 선물이 사도들에게 맡겨져, 모든 사람이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6)
성체성사는 우리의 뛰어남에 대한 칭찬의 선물이 아닌, 우리의 비참함에 대한 ‘자비의 선물’인 것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재현되는 그때로 들어가 예수님의 생생한 말씀을 들어봅시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7)
이 구원의 말씀은 과거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진리의 말씀이라면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는 예수님의 선포는 ‘나의 오늘’에도 유효하기 때문입니다.8)
특히 “너희가 듣는 가운데”, 곧 전례 공동체에 현존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들을 때 온전히 실현됩니다. 미사 거행 안에서 함께 모여 듣는 선포의 말씀은 살아 계신 주님의 말씀이며, 성체는 ‘오늘’ 저희에게 주시는 일용할 양식인 것입니다.9)
바로 그 때문에, 파스카이신 그리스도께서 선물로 주어지는 전례 공동체야말로 이 지상에서 당신을 참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합니다.10) 이렇게 “전례는 구원 역사의 오늘(Liturgia: 《Hodie》 historiae salutis)”입니다.
“오늘 너희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알게 되리라.”11)
참고 도서
1) 장 피에르 롱자, <수도승의 전례:하느님의 위대한 오늘>, 《코이노니아》 50(2025), 김경은 옮김, 한국 베네딕도 협의회, 118-129쪽.
2) 토마스 아 켐피스, 《준주성범》, 윤을수 옮김, 가톨릭출판사, 20052.
3) 프란치스코, <나는 간절히 바랐다>,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8(2023),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1-51쪽.
4) CYPRIANUS, De Dominica oratione, ed. C. Moreschini (CCL 3A), Brepols, Turnholti 1976, 86-113.
5) ORIGÈNE, Homélies sur S.Luc. Texte latin et fragments grecs. Introduction, traduction et notes, edd. H. Crouzel-F. Fournier-P. Périchon (SCh 87), Cerf, Paris 1962, 338-339
각주
1) 프란치스코, <나는 간절히 바랐다> 3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8(2023),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2쪽.
2) 프란치스코, <나는 간절히 바랐다> 3항.
3) 위와 동일, 65항.
4) 토마스 아 켐피스, 《준주성범》, 윤을수 옮김, 가톨릭출판사, 290쪽.
5) <나는 간절히 바랐다> 3항.
6) 위와 동일.
7) 참조: 《로마 미사 경본》의 감사기
8) Cf.ORIGÈNE, Homélies sur S.Luc. Texte latin et fragments grecs. Introduction, traduction et notes, edd. H. Crouzel-F. Fournier-P. Périchon (SCh 87), Cerf, Paris 1962, 338-339.
9) Cf.CYPRIANUS, De Dominica oratione, XVIII, ed. C. Moreschini (CCL 3A), Brepols, Turnholti 1976, 101-102.
10) 참조: <나는 간절히 바랐다> 8. 10-13항.
11)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미사 입당송〉, 《로마 미사 경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전례위원회 편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23, 1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