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특징
① 인간 상호적인 관계
그리스도교 영성은 기본적으로 하느님과의 만남, 교제, 소통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영성가 하면 사막에 홀로 나가 금식하며 기도에만 집중하는 수도자를 떠올렸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계신다고 믿는 신앙인들에게 영성은 당연히 우리 삶의 현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실제로 많은 이가 영성을 단순하게 종교적인 것과 동일시해 왔기 때문에, 어떤 시기에서는 교회와 세상 사이에 괴리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앙信仰은 절대자를 믿고 따르는 것으로, 일상적인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교회 공동체와 그 안에 속한 신앙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마르 9,49-50 참조). 교회 공동체는 사회에 대해 무언가 길을 제시하고 모범을 스스로 보여야 한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말씀을 건네시고 만나시는 근본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복음을 선포하시고, 인간을 성화시키며, 인간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여 구원에 이르는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과 본질은 ‘선교’이다. 우리가 여행할 때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 ‘나중에 부모님과 같이 오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처럼, 기도 중에 은총을 체험하면 누군가와 그 행복을 나누고 싶어진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의 마음이다.
외적으로 보면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삶이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인의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지향과 태도는 전혀 다르다. 한 예로 오래전 한 아나운서의 결혼 주례를 맡았을 때의 일을 소개한다. 당시 “결혼하면, 앞으로 직원 식당에서 식사할 때 꼭 성호를 긋고 밥을 먹어 달라.” 하고 당부했다. 그 아나운서는 약속대로 성호를 긋고 식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니도 가톨릭 신자였어요?”라는 질문을 받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사람들이 호감을 드러냈다. 그렇게 가톨릭 신자인 아나운서들이 모여 종종 미사도 같이 참여하고, 봉사 활동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의 목표는 하느님이지만, 인간 상호적인 관계를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웃 사랑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고 함께한다. 인간 생활 안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역사役事하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주변 사람들이 신앙인의 삶에서 일반인들과 다른 특별한 차이점을 보지 못한다면 선교는 어려워질 것이다.
② 역사성
그리스도교는 역사적 종교이며, 인간의 체험 구조는 역사적, 실제적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인격적이고 봉사적인 제헌 특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수난, 부활의 신비는 실제적인 역사성을 지닌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 역사에 직접 개입하여 당신의 사랑과 계시를 결정적으로 드러내셨다. 신학적으로 보았을 때 주님의 삶, 수난과 부활, 승천은 최고의 공적 계시이다. 그래서 인간은 신학이나 철학 이전에 신앙과 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의 인격과의 일치 안에서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그리스도 신비神祕의 삶이다. 이 신비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가시적 구조 즉, 교회를 통해서 드러난다.
이 신비를 신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체험experience과 성찰reflection이 교차하는 역동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성찰은 마치 거울에 우리 모습을 비추어 보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지니는 다양한 체험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런 경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는 우리의 어떠한 체험도 그 자체로 머물러 있지 않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인 어떤 행동으로 이끌어 간다. 따라서 영성Spirituality은 구체적으로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행동 양식’이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주님의 삶과 닮아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에서부터 그리스도교적인 영성적인 삶을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체험은 실재實在에 대해 몸소 겪은 경험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체험을 한 사람과 책이나 이야기로 듣고 간접적으로 죽음을 체험한 사람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모든 인식의 출발은 실재와의 구체적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직접적 체험이다. 이는 보통의 감각 행위와는 다르며 그 이상의 것이다. 그러나 경험의 단계에서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실재實在라고 할 수 있다. 종종 우리가 기도나 묵상 중에 다른 사람이 체험하지 못한 특별한 체험을 예외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체험을 한 본인은 정작 그 실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분명한 식별 능력을 지닌 좋은 영성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처럼 하느님과의 접촉과 만남은 이론이 아닌 구체성, 역사성을 띠게 된다.
③ 초월성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역사성 외에도 초월성을 갖는다. 영적 생활은 하느님의 영靈을 받고 은총으로 성화되며, 성령에 압도된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로마 8,9)
여기에서 “모시고”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신앙심을 갖고 있다, 나는 신앙을 따르고 있다.”라는 표현에 익숙하지만 “나는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다.”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완전히 내 안에 혼연일체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지속시키는 것 자체가 초월적인 면을 갖는다. 초월超越은 어떠한 한계나 표준을 뛰어넘는 것, 즉 경험이나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 그 바깥 또는 그 위에 위치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세상 안에서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하느님께로 변화시킬 때 비로소 영적인 삶이 이루어진다. 하느님과의 일치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의식 구조에서 이 체험을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식별의 문제(분석과 종합)가 등장한다. 영적 생활에서 식별은 아주 중요하다.
다행히 바오로 사도는 ‘열매’를 통해서 식별을 당부한다.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한다면, 서로가 파멸할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갈라 5,14-23 참조)
영적 생활에서 식별이 중요한 이유는 초기에 초월적인 면 즉, 상식이나 일상적인 판단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현상들이 분명하게 영성적인 삶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롭게 결과, 즉 열매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우리의 판단은 행동으로 연결되며, 그 행동은 사랑이란 방향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참고 문헌>
1) Joseph. A. Fitzmger.S.J, 정양모 옮김, 《바울로의 신학》, 분도출판사,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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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김백준, 《겨울에 꿈꾸다》, 나남,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