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일 복음 묵상

성경 이야기

연중 제30주일 복음 묵상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10,52)

2024. 11. 27
읽음 36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리코에서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이를 치유해 주시는 부분입니다. 이 말씀을 단순히 치유를 베푸신 기적 이야기로 볼 수 있겠지만, ‘눈먼 이’라는 이중적 의미 안에서 참된 믿음과 구원은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 주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눈먼 이’는 대부분 시각 장애인을 지칭하지만, 주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눈을 감아 버린 이들, 영적인 눈멂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사 42,18~25은 진정 눈멀고 귀먹은 이들이란 야훼 하느님을 거부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요한 복음서 9장에서도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이들을 진정한 눈먼 이로 묘사합니다.

바르티매오는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영적인 눈까지 먼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만이 아니라 용기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더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라고 외칩니다. 자신의 믿음을 용기 있게 고백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가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비신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성호경을 긋고 식사하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또 희생이 필요한 상황에서 선뜻 고민 없이 뛰어들기 왜 이리 힘든지, 신앙의 용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바르티매오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서 9장을 보면, 제자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요한 9,2)

그 당시 많은 사람은 병을 하느님께 죄를 지은 것에 대한 하느님의 벌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병은 죄인이라는 낙인 효과를 초래했고, 이는 병든 이들을 더욱 큰 자괴감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바르티매오는 자괴감을 딛고 용기를 내어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용기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내치지 않고 받아 주실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봤다는 것은 바르티매오의 영적인 눈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가끔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 형식의 자괴감이며, 영적인 눈이 감긴 상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에 눈을 떠야 합니다. 요한의 첫째 서간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10)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고, 그리스도를 통해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사랑과 자비에 눈을 떠야 합니다. 사랑에 눈을 뜨면, 사랑하는 이에게 내 모든 것을 내어 주고 싶듯이, 나 자신을 가만히 놔둘 수 없습니다. 많은 이가 바르티매오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지만, 더 큰 소리로 외치듯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에 눈을 뜨면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한 열정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에 눈을 감으면, 그분의 말씀은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릴 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라고 말합니다. 바르티매오는 자비를 통한 그분의 사랑에 눈을 떴기에, 시력까지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에 눈을 뜰 때, 그분을 향한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사랑 덕분에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용기를 내어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에 눈을 떠야 하겠습니다.

 


주일 복음: 마르 10,46ㄴ-52.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성서신학을 전공했고,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담당 신부로 활동 중입니다. "인간의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에페 3,19)라는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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