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성월, 9월에는 한국의 순교자들에 대해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103위 순교 성인과 124위 순교 복자가 있고, 무명의 순교자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의 파견 없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특별한 역사가 있습니다. 특히 사회적 신분 차별과 계급 구조가 뚜렷했던 시절에, 당시 지식인들이 그들만의 ‘특별의식을 가진 신앙’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상적입니다. 124위 순교 복자 중에 한 분인 황일광(시몬)은 백정이었는데,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백정으로 태어나 이제껏 사람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참으로 천주교인이 됨으로써 나는 어떤 학문이나 이치가 아닌 신앙의 삶을 통해 천주교가 참됨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천국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직 오르지 못한 곧 가게 될 이승 너머의 곳이고 또 하나는 지금 이 생활입니다. 양반인 천주교 형제들은 금수禽獸와 같이 취급되는 나를 형제라 부르며, 나를 친형제처럼 사랑으로 대하여 주었습니다. 우린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 어머니께 한마음으로 이 묵주로 기도드렸고 함께 고생했습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신앙 선조들은 가장 높은 가치와 의미 있는 것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구체적으로 실천함으로써 하느님께서 모든 이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세상에 증거했습니다.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이승훈 베드로가 세례를 받아(1784년 갑진년) 천주교 신앙이 들어온 지 240년이 된 뜻깊은 해입니다. 우리네 집안과 우리 자신은 어떻게 신앙을 믿고, 그 신앙을 구체적인 삶으로 지켜 나가고 있을까요?
과거의 종교 박해 시절에 비해 세상은 좋아졌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불평등한 구조와 차별이 사라지지 않고 더 심해졌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복음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계속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면서 말이죠. 한 신부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사랑을 하면 서로 같아지길 원합니다. 높이 있는 것은 내려와 같아지려 하고, 많이 가진 것은 나누어 같아지려 하고, 앞서 있는 것은 기다려 같아지려는 모습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당신과 같아지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말씀을 실천한다고 해서, 세상이 즉시 바뀌거나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 구조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희망이 없고 우울하고 억울하게 생을 마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초대되어 가장 좋은 것을 나누며 살아가는 인간다운 모습으로 하느님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주일 복음: 마르 7,1-8.14-15.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