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어디 가세요?”
“지인이 있소. 그분을 묻어 드리러 가오.”
아내는 무엇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으나 더는 묻지 않았다. 보통 이 시간에 항상 율법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니 아내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늘 그래 왔듯 아내는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말없이 하인 두 명과 미리 챙겨둔 향유를 나귀에 싣고 집을 나섰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과 무덤 앞에서 해 뜨는 시간에 만나기로 했는데,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아직 어두워서 그런지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이가 떨렸다. 나보다 더 얇게 입은 하인들이 떨고 있는 것을 보고, 근처 여관에서 몸을 녹이라고 보내며 갖고 있던 돈을 쥐여 주었다. 얼마나 추위에 떨었을까. 저 먼 곳에서 아리마태아 요셉이 그분을 모시고 오는 것이 보였다.
***
그날 밤도 이렇게 추웠다. 나는 매해 그래 왔던 것처럼 부모님과 과월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 문제는 한순간에 발생했다. 수만 명의 인파를 헤집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던 때였다. 길을 올라가던 중 잠시 긴장의 끈을 놓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시야에 부모님이 보이지 않았다. 당황해서 계속 부모님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울상이 되어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하염없이 길을 헤맸다. 한참을 추위에 떨다 더는 밖에 있을 수 없어 아무 집이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이 집 저 집을 헤맸고, 어떤 허름한 집의 문이 열렸다.
“오 하느님! 세상에, 얘야,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나는 무어라 말도 못 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아주머니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분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는 급히 집 안에 있던 지푸라기를 끌어모아 방의 구석진 곳에 불을 지폈다. 어둠이 가득한 방이 빛으로 가득했다.
한참을 울던 나에게 아주머니는 따스한 죽을 건넸고 나는 울음을 삼키며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얼어 있던 몸이 점점 녹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으렴, 더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얘기하고.”
내가 진정되어 가는 것을 느끼셨는지 아주머니는 부모님을 놓친 장소부터 차근차근 물어보기 시작하셨다. 분명 그 자리에 아직 부모님이 계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당신이 꼭 그분들을 찾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 다시금 눈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의 두서없는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집에서 몸을 더 녹이라고 말씀하시고, 부모님을 찾기 위해 황급히 집 밖으로 나가셨다. 혼자 집에 남게 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이 집이 얼마나 가난한 집인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나는 그분을 붙잡지 않고 맨손으로 온 경비병들에게 분노로 가득 찬 표정을 한 동료의 얼굴과 그분을 따르는 가여운 군중을 번갈아 보았다. 저들의 모습은 나의 부모님을 찾아주었던 평범한 그 아주머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동료가 한 말은 나도 율법을 공부하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들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기억은 평생 나에게 비수처럼 남아,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을 아프게 했다.
권위 있는 바리사이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신앙이 독실했고, 나도 그러한 부모님 밑에서 그분의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불혹이 훨씬 지난 연세에도 불구하고 밤낮으로 하느님 말씀을 공부하는 부모님께 내심 존경심을 가졌던 나는 양질의 율법 교육을 받았고, 최상위는 아니었을지라도 내내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그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학업에 임했다. 이것이 부모님을 닮고 그분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최고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찬사를 들으면서도, 내 마음은 공허했다. 한편으로는 율법을 철저히 공부하고 완전히 실천하려 노력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들을 경멸하는 동료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저주받았다기엔 그분에게 받은 사랑과 의로움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표징을 일으키는 예언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성전에서 알게 모르게 이윤을 취하던 동료들과 큰 갈등을 겪었던 사건에서 그분의 소식을 들었다(요한 2,13-22; 루카 19,47 참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으로 충돌이 일어나자 동료들은 그분에게 유례없는 적대심을 드러냈고 그분을 따르는 군중들 또한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나는 그분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그분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그날은 추운 밤이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율법 연구라면 나름 평생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이 가르침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들은 저주받은 이들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온 나는,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나를 구해 준 그 아주머니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했다. 그분의 말씀이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아 잠이 들 수 없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가 느꼈던 그대로 이야기한 경비병의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인 나는 그분을 모셔 와서 동료들에게도 그분의 말씀을 들려주려고 용기 내어 제안했지만, 그들 안에는 그분을 모실 자리가 조금도 없었다(루카 2,7 참조).
***
어느새 아리마태아 요셉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니코데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나? 어서 그분을 모시세.”
“미안하네.”
이미 종들을 따듯한 곳으로 보냈기에 불러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요셉에게 양해를 구하고 직접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차갑게 식은 그분의 손을 만져 보았다. 손은 차가웠지만 알지 못할 온기가 내 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길을 잃은 나에게 아주머니가 내민 손을 잡았을 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그날은 정말 어둡고 추운 밤이었지만, 빛이 스며든 날이기도 했다.
그분에게 향료를 바를 동안, 등 뒤에서 따뜻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