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남동구 구월말로 24번길에는 모래내 성당이 있다. ‘모래내’라는 용어는 주변 하천에 모래가 많이 쌓여 물이 밑으로 스며드는 곳을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래내라는 지명을 쓰는 곳이 세 곳 있는데 서울 남가좌동, 전주 인후동,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구월동이다. 이 중 서울이 중심 도시다 보니 많은 사람이 ‘모래내’라는 지명을 들으면 서울 남가좌동을 떠올린다. 하지만 ‘모래내 성당’은 서울에도, 전주에도 없고, 유일하게 인천에만 있다.
2022년 1월 모래내 성당 주임 신부로 발령받았다. 보좌 신부 1년, 유학 생활 6년, 특수 사목 5년을 거쳐 사제가 된 지 12년 만에 본당 신부가 된 것이다. 발령 첫날, 차를 타고 도착했을 때 골목 한 가운데 우뚝 선 건물이 성당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신자들은 거의 다 고령이었고,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신자들의 눈에서 사제를 향한 따스함과 포근함이 느껴졌다.
첫 주일에는 20명(지금은 13명)의 초, 중, 고등학생과 미사를 봉헌했다. 이미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마주하니 아이들과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아이들은 한 학년에 한 명 또는 두 명 정도밖에 없었다. 비록 적은 인원이었지만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컸다.
모래내 성당에 다니는 아이들 중에는 독특한 친구들이 몇 있는데, 내 눈에 확 들어온 친구는 ‘박OO 빅토르’였다. 이 친구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내 생각까지 혼미해질 정도다. 첫영성체를 마치고 복사단에 들어온 빅토르는 매일 지적을 받았다. 특히 복장. 나는 운동복을 입고 복사 서는 것을 늘 지적했다. 계속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 그 친구 어머니에게 복장을 잘 챙겨 달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미사 때 복사를 서기 위해 성당에 들어오는 빅토르를 보았다. 옷을 잘 입었나 하고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운동복을 입고 왔다. 성당으로 들어가려는 빅토르를 멈춰 세우고서는 “빅토르, 너 교장 선생님을 만난다면 어떤 옷 입을 거야?”라고 질문했다. 빅토르는 이렇게 답했다. “제일 좋은 옷을 골라 입고 가야죠.” 내가 이어서 “그럼 성당은 하느님 만나러 오는 건데 어떻게 입어야 하지?”라고 질문하자 빅토르는 이렇게 답했다. “제일 좋은 옷을 입어야죠.” 나는 이 답에 “그런데 너는 왜 운동복을 입고 왔어?” 하고 물었다. 빅토르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이게 제일 좋은 옷이에요.” 그 말에 나는 “제일 좋은 옷이 운동복이야?”라고 물었고, 빅토르는 이렇게 외쳤다.
“신부님 이거 나이키예요.”
빅토르의 답에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아이는 나름대로 제일 좋은 옷을 입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사 후에 빅토르의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 정말 빅토르가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온 건가요?” 어머니는 “네, 신부님. 빅토르가 제일 아끼는 옷을 성당에 입고 오는 것이니 빅토르 기준에서는 제일 좋은 옷 맞아요.”라고 말했다.
이후 아이들 사이에서 운동복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아봤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아냈다. 코로나 시기, 아이들이 집에서 학교 수업을 대신하던 때가 있었다. 외출하지 않으니 옷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졌고, 집에서 주로 운동복을 입었기에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옷은 운동복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옷의 등급은 운동복의 브랜드에 의해 정해진다. 그러니 빅토르에게 나이키 운동복은 성당에 올 때 입을 만큼 좋은 옷이었다.
3년간의 코로나 시기.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의무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미사를 드리지 않아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그 이후 하느님에 대한 생각 또한 바뀌었다. 꼭 주일을 지키지 않아도, 꼭 성당에서 기도하지 않아도, TV를 보는 것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마치 빅토르가 운동복의 편안함에 빠져 운동복의 브랜드로 옷의 가치를 구분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빅토르를 만난 지 3년째, 그는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운동복의 브랜드로 옷의 등급을 나누지 않고 상황에 따라 옷 입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본당 신부로 살아가며 코로나 이후 바뀌어 버린, 편하게 변한 신자들의 가치관을 다시금 성당으로 향하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TV가 아니라 실제로 미사를 봉헌하는 기쁨을 전달하려 하고, 공동체와 함께 머물며 기도할 때 행복하다는 것을 여러 기도 모임과 신심행사를 통해 전하려 한다. 그런데 아직도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성당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도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버린 마음을 어떻게 하면 돌릴 수 있을까?
그것이 본당 신부인 내가 앞으로 마주한 시대를 살아가며 정답을 찾아야 할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