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내 성당으로 발령받았을 때 그 동네는 마음과 정신이 아픈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그 말대로였다. 그런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났다. 새벽에 사제관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 화면을 뚫어져라 보는 사람, 술 취한 채 와서 다짜고짜 제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떼쓰는 사람, 마스카라를 진하게 칠하고 와서 미사 때 울고 있는 사람(이때는 정말 미사를 봉헌하는 게 시험에 드는 느낌이다) 등등.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한나절은 할 수 있는 그 경험들은 내 사목 내공을 튼튼하게 해 줬다. 그중에 제일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지난 3월 초쯤, 누군가가 사제관의 초인종을 눌렀다. 현관 화면을 보는데 화면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종은 계속 울렸다. 문 앞에 가서, “누구세요.”라고 물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김OO 목사입니다.” 나는 김OO 목사를 모르기에 “무슨 일이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문을 열어 주셔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복장은 목사라고 하기엔 좀 남루했고 담배 냄새는 엄청 났다.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세요?”라고 다시 물어봤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난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님에게 안수받은 목사인데, 모래내 성당에 와서 초를 봉헌하려 했다. 근데 라이터가 없어서 내 라이터 세 개를 놓고, 돈이 없어서 지갑과 여권 그리고 신용카드 5장을 그 안에 넣었다.”라고 횡설수설했습니다.
나는 뭔가 의심스러웠지만 봉헌함 열쇠가 없었기에 같이 내려가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그 사람은 ‘추우니까 커피 한 잔을 뽑아 달라’고 했다. 나는 커피를 뽑아 줬다. 그러니 ‘담배를 달라’고 했다. 담배가 없다고 답하니 돈을 달라고 했고, 돈이 없다고 하니 커피 한 잔을 더 뽑아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저녁에 사무장님이 출근하면 봉헌함을 열어 줄 테니 다시 오라’고 했다. 그 사람은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며 문을 나서는 듯 보였다. 그런데 곧 돌아서서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주보를 보니 신부님 세례명이 베드로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내가 “맞습니다.”라고 하니 요한 복음서 21장 15-19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 3번이나 사랑하냐’ 하고 물었던 복음 구절을 말하기 시작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초점 없는 눈을 하고 물어보아 나도 모르게 “예!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마자 그 사람은 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어봤고, 나는 엄청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정말로 사랑하느냐?” 하고 물어봤고, 내가 ‘주님을 정말정말 진짜진짜 사랑한다’고 답하자, 그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사무장님이 출근한 뒤, 봉헌함을 열어 보니 정말 그 안에 여권과 지갑, 신용카드 5장이 들어 있었다. 난 혹시 그 사람이 다시 와서 볼 때 ‘돈을 달라’ 할 것 같아 사진으로 찍어 뒀다. 시간이 흘러 저녁때가 되자 그 사람은 다시 와서 사무장님에게 커피를 얻어먹고 있었다. 그 사람과 봉헌함 앞에 섰다. 열어서 확인하라고 하니, 그 안에 돈이 가득했는데도 ‘내가 넣은 것은 여권과 지갑, 신용카드’라며 그것만 챙겼다.
그 뒤 나에게 고맙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 제 물건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77억이 있는데, 7억을 모래내 성당에 봉헌하겠습니다.” 나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과대망상이라는 생각만 들어 “저희는 괜찮으니 순복음 교회에 기부하세요.”라고 했다. 그 사람은 “그럼 제가 바티칸에 7억을 기부하겠습니다. 주소를 알려 주시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것은 목사님이 알아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고, 그렇게 그 사람은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도 성당에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알고 보니 오히려 라이터 세 개를 정말 봉헌하고 갔는데, 처음부터 나는 그 사람을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내 입으로 분명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정말 주님일지도 몰랐을 그 사람을 나는 처음부터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 그 이상도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상황을 삶으로 가져와 보면 우리도 모르게 반복되는 부정적인 경험들은 때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주님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주님께서는 여러 사람과 여러 모양으로 오시는데, 우리는 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아픔과 고통에 가려 내가 보고 싶은 주님만 보게 되는 것이다.
김OO 목사님은 그날 이후 모래내 성당에 오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누구든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매일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어볼 것이다. 입으로만 사랑한다, 하고 마음으로는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시선의 전환과 마음의 전환이 다가오는 주님을 바라보게 할 것이고,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고백의 순간을 만나게 할 것이다.
“모래내 성당의 베드로 신부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