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결합하는 신앙의 출발점

신학 칼럼

세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결합하는 신앙의 출발점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신비

2024.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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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무렵, 키릴루스 주교가 새 신자들을 대상으로 행한 강론들에 따르면, 본격적인 세례 예식이 거행되기 전, 세례 후보자들은 세례당 현관에 서서 사탄과 그의 모든 행실을 끊어 버리겠다는 선언과 함께 그리스도께로 돌아서그분께 온전히 우리를 내어 맡기겠다는 장엄한 서약을 예식 안에서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 후 후보자들은 세례당으로 들어가 세례의 핵심 예식인 물로 씻는 예식에 참여합니다.

 

세례당에 들어선 후보자들은 세례수에 몸을 담그기 전,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벌거벗은 채 섭니다. 이 탈의의 과정을 단순히 침수를 위해 필요한 동작, 또는 인권을 침해하는 비인격적인 동작으로만 이해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왜냐하면 이 동작에는 세례 예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하기 전에 필요한 깊은 신학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옷은 인간을 더위와 추위로부터 보호하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성경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원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할 때, 하느님께서 인간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가죽옷을 입혀 주었다는 창세기의 증언에 따라, 옷은 초기 교회 안에서 인간이 지은 원죄의 결과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기초하여, 옷을 벗는 행위는 원죄에 굴레에 묶여 있는 옛 인간의 모습을 벗어 버리는 동작이며, 동시에 더 이상 옛 죄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도덕적 차원의 결단을 표현하는 전례적 동작이었습니다. 또한 옷을 벗음으로써 창조 때 누리던 하느님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키릴루스는 설명합니다.옷을 벗는 행위는 이러한 실존적 변화를 드러내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더욱 깊은 결합을 준비시키는 행위라고 키릴루스는 강조합니다. 그에 따르면, 옷을 벗은 후보자들이 벌거벗은 채 사람들 앞에 서는 이유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벌거벗겨진 채로 십자가 위에서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옷을 벗음으로써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인간의 유한한 운명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여 불멸의 존재로 넘어가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덧붙여 말합니다.

 

옷을 모두 벗은 세례 후보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마 기름으로 도유를 받습니다. 오늘날 전례에 비교해 본다면 이 예식은 세례 예식 이전에 예비 신자 성유를 바르는 예식에 해당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기름은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질병은 악령에 의해 생긴 것으로 간주되어, 악령을 물리치기 위한 치료제로 환자에게 기름을 발랐고, 또는 전장에 투입되는 병사들이 갑옷을 입기 전에 몸에 기름을 발라 유연성을 더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키릴루스는 이런 상징적 의미를 예식 안에 받아들여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성된 기름은 세례 후보자들을 사탄으로부터 정화하고 또 사탄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그들을 강건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제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세례 후보자들은 봉사자의 인도를 받아 세례수가 담겨 있는 큰 수조 안으로 한 명씩 들어갑니다. 예식의 주례자는 후보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을 믿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각기 부르면서 그들을 물에 완전히 잠그게 한 후, 다시 물 위로 일으켜 세웁니다.

 

이렇게 세례를 베푸는 방식을 침수侵水 세례라고 하는데, 이와는 달리 삼위일체의 이름을 부르며 이마에 물을 붓는 방식을 주수注水 세례라고 합니다. 현대 교회 안에서 초기 교회의 침수 방식이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표현한다고 여겨, 침수 세례로 예식을 거행하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방식이야 어찌 되었든 물로 씻는 예식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진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세례 예식은 어떤 신비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동시대의 다른 교부들과 마찬가지로, 키릴루스는 바오로 사도가 설명한 세례의 신학적 의미를 토대로 예식이 드러내는 신비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로마 6,3-5)

 

이미 눈치를 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물속에 잠긴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죽음을 뜻합니다. 반대로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은 새로운 삶을 뜻합니다. 물에 잠김으로써 과거의 나는 죽음을 맞이하고, 물 밖으로 나옴으로써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의해 새로운 나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새로운 탄생이 아닙니다. 물속에 잠기는 것은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결합하는 죽음이며, 물 위로 나오는 것은 죽음을 이기고 되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결합하는 탄생입니다. 그래서 세례성사는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신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신 곳, 그리고 부활하신 장소에서 세례를 받았던 예루살렘의 새 신자들은 예식 안에서 앞서 설명한 신비의 의미, 곧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강렬하게 체험했을 것입니다. 키릴루스는 그때의 그 신비로운 체험과 의미를 신앙생활 안에서 늘 기억하고, 이 기억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와 더욱 깊은 일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였습니다.

 

이제 새 영세자들은 세례수 밖으로 완전히 나와 준비된 흰옷을 입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 3,27)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흰옷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음을 드러내고,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결합하게 되었음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이어서 새 신자들은 다시금 도유 예식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때 주례자는 몸의 주요 부위, 곧 이마, , 콧구멍과 가슴에 기름을 바릅니다. 키릴루스는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그분 위에 내리신 것처럼 기름 바르는 예식을 통해 새 신자들에게도 성령께서 강림하신다고 설명합니다.

 

세례 이전에 주어지는 도유가 세례 후보자를 정화하려는 목적으로 주어졌다면, 세례 후에 주어진 도유는 성령의 강림을 통해 그들을 거룩하게 하려는 목적을 지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식과 비교하였을 때, 새 신자의 이마만이 아니라 몸의 여러 부위에 성유를 바르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키릴루스는 각 부위에 기름을 바르는 이유를 성경에 기초하여 설명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이마에 기름을 바르는데, 이는 첫 인간의 원죄로 얻게 된 부끄러움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귀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그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영적인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듣고 깨닫게 하는 전례적 행위입니다. 그다음, 콧구멍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새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2코린 2,15)가 되어 그 영적인 향기를 맡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슴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새 신자들이 정의의 갑옷을 입고 악마의 간계에 저항할 수 있도록”(에페 6,11.14 참조) 주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도유 예식을 끝으로 세례 예식이 마무리되고, 처음으로 교회 공동체의 신자들과 함께 성찬례에 참여하고, 성체를 받아 모셔 그리스도와 온전히 한 몸을 이룸으로써 모든 입문 성사 예식은 끝이 납니다. 율법에 대한 열정으로 그리스도인을 박해했던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이 겪은 이 실존적 변화에 대해 사도는 갈라티아의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19-20)

 

세례의 은총에 대하여 어떻게 이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세례성사는 단순히 가톨릭 신자가 되기 위해 수료해야 할 교육 과정 또는 자신의 노력으로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여 그분과 결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신비입니다. 세례를 통해 이루어진 이 놀라운 실존적 변화와 은총을 늘 기억합시다. 그리고 이 은총에 합당한 신앙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분명 그리스도와 더 깊은 일치를 이루며 성숙한 신앙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프랑스에서 교리 교육 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WYD 법인 사무국 및 기획 사무국 국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신자들이 신앙을 통해 하느님과 기쁘게 만나도록 다양한 분야에서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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