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교황은, 누구입니까?

영성과 신심

새로운 교황은, 누구입니까?

성령의 이끄심은 새로운 인물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

2025. 05. 26
읽음 116

 1. 새로운 교황이 탄생하던 순간

 

흰 연기가 피어오른 지 약 한 시간이 지났다. 이윽고, 수석 부제 추기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베무스 파팜”,

우리에게, 교황이 있습니다.”

 

생방송을 중계하던 나는 중얼거렸다.

 

그래서, 새로운 교황은 누구입니까?

 

내 손에는 선출이 유력한 추기경들의 상세 정보가 적힌 종이 뭉치가 들려있었다. 새 교황의 이름이 발표되는 순간 시청자들에게 빨리 정보를 제공해야 할 터였다.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그래서, 새로운 교황은 누구입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롭게 선출된 교황의 이름이 전해졌다.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머리가 새하얘졌다. 예상했던 인물이 아닌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국적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이름. 방송을 보는 수많은 사람이 숨죽여 그가 누구인지 귀 기울이고 있을 터였다.

 

바로 그 순간, 혹시나 해서 준비한 133명 추기경의 명단을 집어 들었다. 하느님의 도우심 때문일까. 첫 페이지 네 번째 자리에 있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로버트 프란시스 프레보스트

1955년생

미국 국적

주교부 장관

 

찰나의 시간을 뒤로하고 곧바로 중계를 이어 갔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셨습니다. 로버트 프란시스 프레보스트, 주교부 장관이었던 최초 미국인 교황이십니다. 교황명은 레오 14세입니다. 우리에게, 교황이 있습니다.”

 

화면으로 교황명을 연호하며 기쁨에 겨워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오 14세가 나와 신자들을 마주했다. 그의 첫 말은 무엇일까, 다시금 집중했다. 앞으로의 사목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될 새로운 교황의 첫 말씀. 그 말씀은 다음과 같았다.

 

“La pace sia con voi”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소름이 돋았다. 이어서 교황의 말을 통역하고 중계하는 동안 좀처럼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미국인이라니. 그리고 레오라니.

 

그렇게 새로운 교황의 시대가,

밝았다.

 

2. 세상의 관심, 그리고 새 교황의 특징

 

콘클라베 중계를 준비하며, 유독 다른 때보다 교황 선출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선물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약자들에 대한 관심, 환경 보호와 평화에 대해 적극적이고 겸손하게 활동한 전임 교황의 행보는 신앙의 여부를 떠나 많은 이에게 새로운 성찰을 안겨 주었다. 우리의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참다운 가치를 지니는지를 세상은 다시금 깨달았다.

 

그러므로 세상은, 다음 교황이 누구일 것인지에 대해서 주목했다. 그만큼 우리 시대의 정세가 복잡하고 어지럽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속되는 전쟁, 환경 파괴로 인한 신음, 소외된 이들의 아픔, 나날이 고독해지는 우리들. 이러한 상황들 속에 빛이 되어 줄 현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콘클라베의 결과에 소름이 돋았던 이유는,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온몸에 전율이 흘렀던 이유는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한 교황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지러운 세상, 약자들이 고통받는 세상, 자민족주의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나타난 새 교황은 이를 타개할 특별한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페루에서 활동한 경력

레오 14세는 페루에서 20년간 선교사로 활동하는 동안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청년 사목과 교육, 빈곤층 지원에 힘썼다. 이러한 활동은 그가 단순한 종교 지도자를 넘어, 진정한 의미의 양 떼의 목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는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철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미국인 그리고 대() 트럼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교황은 미국인이다. 전 세계에 강한 영향력을 지닌 강대국 출신이다. 이 지점에서, 미국 교회의 분위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가톨릭 신자는 인구의 20%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은 강한 연대와 신앙을 중심으로 뭉쳐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들의 지지를 힘입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가톨릭 유권자들로부터 52%의 지지를 받았으며, 이는 힐러리 클린턴의 45%를 앞서는 수치였다. 특히 백인 가톨릭 유권자들 사이에서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높았으며, 이는 그의 예상치 못한 승리에 기여한 주요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2024년 대선에서는 가톨릭 유권자들의 지지가 더욱 증가하여 트럼프의 승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신념의 일치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문화적·사회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난민과 민족주의 등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행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낙태 반대, LGBTQ+ 이슈, 마약 문제 등에서 단호하고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가톨릭 신자들의 목자인 새로운 교황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리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만약 새 교황이 다른 국가 출신이라면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지만 심지어 같은 미국인 아닌가? 또한 트럼프의 인기가 정치적 경력과 경제적 성공을 기반으로 하지만, 교황은 인류를 위한 헌신과 희생을 기반으로 세간의 존경을 받는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상의 평화, 환경의 보호, 공동선에 대해 교황이 단호하게 언급한다면 아무리 거대한 힘을 갖고 있는 트럼프라고 해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정한 힘은 권력이 아닌 사랑과 온정에서 나온다. 물론, 정치적인 의도로 미국인 교황이 선출된 것은 아니겠지만 성령의 이끄심은 이러한 강점을 지닌 교황을 우리에게 보내셨다.

 

셋째, 교황명 레오와 <새로운 사태> 

그러한 점에서 교황명 레오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전임 레오 13세 교황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레오 13세는 19세기 후반, 2차 산업 혁명 시기에 활동한 교황으로서 특별히 사회 교리의 시작을 알린 교황이다. 2차 산업 혁명은 철강, 전기, 화학, 대량 생산 등에서 기술적 비약을 이룩했으나 수많은 노동 계급(프롤레타리아)을 탄생시켰다. 19세기 중반 봉건제 폐지 이후, 자유로워진 노동력은 자연스럽게 도시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도시에 올라왔으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소수 자본가에 의한 부의 집중과 빈곤이었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 아동 노동 등 다양한 착취가 이뤄지는 한편, 부당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위한 목소리는 미미했다. 새로운 환경이 조성된 탓에 무엇이 올바르고 그른 것인지조차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그러한 가운데, 레오 13세가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발표한다. 여기서 교황은 마르크스주의의 잔재라 여겨져 부정되던 노동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폭력과 체제의 전복을 위한 노동 운동이 아닌 정의를 위한 사랑의 정신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노동 운동을 언급했다. ‘새로운 사태를 맞이해 혼란스러운 인류에게 그렇게 이전에 없던 개혁, 사회 교리가 주어졌다.

 

새로운 교황이 레오 13세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은, 그가 선출 이후 추기경단과의 미사에서 언급했듯이, 지금 우리 인류가 또 다른 새로운 사태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 AI라는 새로운 혁명 앞에 선 인류는 점차 생각할 능력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내어 맡긴 채 수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의 고독과 상처, 온라인상의 새로운 범죄들, 사라지는 일자리 등 현재 인류는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사태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교황은 다시금 레오라는 교황명을 선택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교회의 사명을 공표하였다.

  

3. 새로운 교황, 그리고 우리들

 

앞서 언급한 과제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주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세상의 빛이 될 것인가?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적을 통해 많은 이들이 감동했듯 우리 삶의 가치는 겸손과 이타적 사랑에서 오며 그것은 복음의 빛을 근간으로 한다. 또한 세상은 알고 있다. 삶의 진정한 가치와 평화는 적대적 감정, 전쟁과 같은 폭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 오직 사랑에서 오는 것임을.

 

, 그렇다면 이제 다시금 우리는 복음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다. 그렇게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일치를 이루어 나갈 때, 우리는 새로운 사태 앞에서 더욱 개혁적인 사랑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세상은 변화할 것이다.

 

성령의 이끄심은 이를 위해 새로운 인물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 세간의 관심이 그를 집중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레오 14세다.

 

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로마 라테란대학교 알퐁소대학원 윤리신학을 전공했습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윤리신학을 신자들이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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