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증인,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

영성과 신심

사랑의 증인,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

“저는 성모님의 것입니다. 그분을 통해, 하느님께 이릅니다.”

2025. 10.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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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지난 상반기는 한마디로 나를 잃은 시기였다. 환희의 순간도 있기는 했지만, 알 수 없는 불안이 차올라 심해 속으로 끝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인간관계

내게 주어진 할 일들

공부

 

모든 의무가 한꺼번에 나를 압도해 왔다. 겉으로는 명랑함과 쾌활함을 유지했을지언정, 내 안에서는 과거의 기억까지 되살아나 염증처럼 곪아 갔다.

 

1학기 동안 몇몇 교수 신부님과 면담하며 반복해서 들은 말이 있다. 첫째, 기도할 것. 둘째, 모든 걸 책임지려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되 하느님께 맡길 것. 셋째, 쉴 것. 그리고 말씀에 따라 붙던 질문.

 

하고 싶은 거 있어?”

 

진로를 묻는 게 아니었다. 지친 나를 잠시라도 숨 쉬게 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 모든 대화는 무얼 해야 하나요?” 혹은 신부님은 무얼 하시나요?”로 흘러갔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놓치고 있었다.

 

그렇게 1학기가 끝났다. 종강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한동안 미뤘던 독서와 함께 방학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집어 든 책은 이영제 요셉 신부님의 《함께 기도하는 밤》이었다.

 

유스페스티벌 희희희봉사자들을 위해 신부님께서 친필로 정성껏 서명해 주신 선물이었다. 본가로 향하는 지하철 안, 한 시간 반을 이동하며 책장을 넘기던 나는 뜻밖의 갈망 하나를 발견했다. 그 어떤 거창한 계획도, 새로운 시작도 아니었다. 묵주 기도였다.

 

그러다 문득, 2024년 여름 일본 나가사키 성지 순례에서 마주한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의 발자취가 떠올랐다. 줄무늬 죄수복을 입은 신부님의 성화 아래에는 거칠고 무거운 쇠사슬로 만든 커다란 묵주가 놓여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성모님을 찬미하며 기도했던 그분의 삶이 다시 마음 깊이 다가왔다.

 


 

 

막시밀리아노 성인의 생애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은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집에는 작은 제대가 있었고, 그 앞에는 언제나 등불이 켜져 있었다. 가족은 그 불빛 아래 모여 기도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성모님과 대화하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어린 그는 상처받은 마음으로 성모님께 물었다.

 

저에게 무엇을 해 주실 수 있나요?”

 

그날 밤, 그는 성모님이 두 개의 왕관을 보여 주시는 환시를 보았다. 흰 왕관은 순결을, 붉은 왕관은 순교를 의미했다. 그는 주저 없이 두 개 모두 갖고 싶다.”라고 응답했고, 이는 평생을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성인은 17세에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며 막시밀리아노 마리아라는 이름을 받았다. 로마 유학 중에도 세속과 거리를 두며, 성모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했다. 그는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회를 창설하고, 일본 나가사키에 성모의 마을을 세워 복음을 전했다. 그러던 1941, 게슈타포에 체포된 그는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사진 ⓒ 김윤우

 

수용소 안에서 그는 여전히 묵주 기도를 바치며 동료들에게 희망을 나누었다. 한 수감자가 탈출한 뒤 무작위로 지목된 10명이 사형에 처했을 때는, 가족이 있는 한 사람을 대신해 죽음을 선택했다. 물도 음식도 없이 버티는 아사 감방에서도 그는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를 부르며 찬미했다.

 

성모 승천 대축일 전날인 814, 성인은 평온한 얼굴로 선종했다. 그의 생애는 오직 한 가지 고백을 향해 걸어간 여정이었다.

 

저는 성모님의 것입니다. 그분을 통해, 하느님께 이릅니다.”

 

1982,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를 순교자이자 사랑의 증인으로 시성하였다. 그의 삶은 기도 자체였고, 그의 죽음은 가장 깊은 사랑의 기도였다.

 


 

성모님, 저를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기도가 하고 싶었다니,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도 기도를 갈망했다. 하지만 기도는 나에게 어려운 일이 되어 있었다. 고해성사 보속으로 받은 묵주 기도조차 몇 주씩 미룰 정도였다. , 기도하라는 신부님의 말씀에 기도하는 방법을 잊은 것 같다.”거나 누군가 내 손에 묵주를 쥐여 줘야만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인 줄 스스로도 몰랐다.”라고 내뱉을 정도였다.

 

등하굣길마다 헤드셋으로 음악을 듣는 대신, 묵주를 손에 쥐고 기도문을 바치곤 했다. 내게 2024년이 황금기였던 것도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무리하려 애썼던 마음 덕분이었으리라. 그래서였을까. 나는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하느님을 향하던 내 시선이 흐려졌다.

 

한 번은 교수 신부님께 회의적인 질문을 드리기도 했다.

 

신부님, 이 모든 것이 2,000년 된 사기극이면 어쩌죠?”

 

입으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라고 고백하면서 과연 그분이 내 곁에 계신 것인지 의심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언제나 계셨으며, 단지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뿐이었다.

 

《함께 기도하는 밤》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한 응답의 증거를 보여 달라고 주님께 다그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실까요? ‘내가 네 곁에 있음을 십자가와 부활로 보여 주었는데,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왜 자꾸 다른 표징만 보여 달라고 그러니?’”

 

그렇다. 곁에 계신 그분을 내가 잊고 있었다. 이제 나는 다시, 묵주를 손에 들고 입으로는 기도문을 읊는다.

 

자비하신 주님, 부디 저를 구하소서.

 

언젠가 십자가에 매달린 당신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당신의 자녀로서 마땅히 도구가 되겠사오니 도움 주시옵소서.”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 모습은 기도하는 것마저 잊은 길 잃은 어린 양에 불과합니다.

 

부디 저를 구하소서. 한없이 부족한 존재인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성호경을 그을 때마다 용기가 되어 주소서.

 


 

참고 도서

1)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가톨릭출판사

2) 이영제, 함께 기도하는 밤, 가톨릭출판사

 

Profile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도보 여행을 하다 보면 때로는 예상치 못한 만남을 경험합니다. 길가에 피어난 작은 생명, 끝없이 출렁이는 바다, 광활한 하늘은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하고, 저를 주님께로 이끌어 줍니다. 혼자 떠나는 길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는 경이로운 순례입니다. 길 위에서 마주하는 삶의 조각들 속에서 발견하는 은총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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