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내 성당에 부임한 지 벌써 3년째 되어 간다. 이곳은 주위 네 곳의 성당에서 한 부분씩 분할하여 이루어진 성당인데,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우리 성당 신자들의 평균 나이는 72세다. 그래서 이벤트를 할 때마다 초점은 항상 어르신들에게 맞춰져 있다.
그간 했던 이벤트를 떠올려 봤을 때 제일 잘한 것은 어버이날 이벤트다.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결혼하여 자녀가 있는 부모님이라면 모두 카네이션 브로치를 드렸다. 들어가는 금액은 소소하지만 대부분 혼자 지내시는 어르신이 많고, 챙겨 주는 사람도 없어서 카네이션을 받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하셨다.
지난 어버이날에는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미사 후 한 분 한 분께 카네이션 브로치를 드리는데, 모래내 성당에서 나이가 제일 많으신 99세 도미니카 어르신께서 다가오셨다. 그리고 가방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한참 찾으셨다. 잠시 후 가방에서 예쁘게 뜨개질한 카네이션 브로치를 꺼내셔서 친히 내 가슴에 달아 주셨다. 아주 예쁜 카네이션 브로치를 바라보며,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공들여 하나하나 뜨개질하셨을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르신은 이어서 이렇게 말하셨다.
“본당 신자들의 어버이이신 신부님, 늘 고마워요.”
그 말씀을 듣자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잊지 못할 다른 일도 있었다. 미사를 봉헌하는데 한쪽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깊은 한숨 소리는 공지 사항을 안내할 때까지 이어졌다. 결국 거듭되는 한숨 소리를 참지 못하고 말씀드렸다. “힘든 일 있으신가 봐요? 한숨을 계속 쉬시네요.” 그러면서 얼굴을 바라봤는데, 순간 너무 죄송했다.
한숨을 쉬던 자매님은 얼마 전 갑작스럽게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신 후 나와 면담을 나눴던 분이셨다. 너무 죄송한 마음에 곧바로 사과를 드렸다. 미사 후 카네이션 브로치를 나눠 드렸는데, 그것을 받고 나가시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카네이션 브로치를 다 나눠 드리고 성당 밖으로 나갔는데, 그 앞은 감동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난번 세례를 받으신 미카엘 형제가 아들을 잃은 자매님께로 다가갔다. “자매님, 제가 자매님 아들 해 드릴게요. 힘내시고, 성당에서 저 보시면 아들이라고 불러 주세요.” 하며 카네이션 브로치를 달아 드렸다. 미카엘 형제의 말에 눈물을 흘리는 자매님의 얼굴에는 위로가 가득 차 보였다. 도미니카 어르신이 본당 신부를 위해 나눠 주신 사랑, 미카엘 형제가 아들을 잃어 슬퍼하는 자매님을 위해 나눠 준 사랑, 이 사랑을 가만히 보면 인간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이 알려 주신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랑은 누가 알려 주셨을까? 세례를 통해 우리 안에 하느님이 깃들고, 그 주님을 통해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한다. 즉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보호자 성령께서 우리 안에 머물며 살아 숨쉬기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 모여서 기도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처럼 살며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신앙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진리의 영을 만났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신 세례를 통해, 그 진리의 영을 전할 사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명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면서도 누구나 그 사명대로 살아가지는 못한다.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두려움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사람들이 나의 호의를 오해하지는 않을까?”
“나의 모습이 다른 이들이 볼 때 짐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마음속에 주님께서 주신 진리의 영이 있더라도 두려움으로 인해 주님을 전하기가 어렵다. 이런 마음이 들 때 이 말씀을 기억하면 좋겠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18)
아이는 부모가 뒤에 있을 때와 없을 때 모습이 다르다. 부모가 뒤에 있으면 더 힘을 내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멀리 계시지 않는다. 늘 옆에서 우리가 힘을 내어 주님을 증거할 수 있게 해 주시며, 이웃을 통해, 상황을 통해 주님을 체험하여 용기를 얻게 해 주신다.
어버이날을 맞아 도미니카 할머니께서 본당 신부에게 꽃을 달아 주고자 하신 마음과 미카엘 형제가 아들을 잃은 자매님께 아들이 되어 주겠다고 말한 그 마음이 그냥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리의 영이 마음속에 있고 그 진리의 영이 시키는 대로 했기’에 그 행동 안에서 주님이 드러난 것이다.
우리도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아서 행동해 보자.
우리가 마음에 사랑을 담아 전하면 그 사랑을 통해 주님이 드러날 것이다.
따스한 사랑은 들에 핀 야생화와 같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름다우며, 누가 바라봐 주지 않아도
아름다운 향기로 바라보게 할 것이다.
주님의 영을 마음에 담고 사랑을 전하며 신앙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를 기도해 본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