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아름다운 무게

영성과 신심

사랑, 그 아름다운 무게

사랑받는다고 느낄 때까지…… 요한 보스코 성인과 우리 삶의 이야기

2025. 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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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살레시오회 창립자이신 성 요한 보스코 신부님께서는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야 됩니다.”라는 주옥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고 느낀다는 것은 아주 큰 행복이고 기쁨일 것이다. 반대로 나 자신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성 요한 보스코 신부님의 말씀은 청소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사랑이다. 따라서 내가 만나는 많은 이들이 그 사랑의 대상인 것이다.

 

그런데 사랑에도 어느 정도 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 상대방에게 큰 부담을 느끼게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개인적인 욕심이 들어 있는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은 아름답기보다는 욕심과 질투, 시기와 이기심 등등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반대되는 것들로 가득할 것이다.

 

부산에서 사목 활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 거의 바닥을 친 적이 있었다. 수도 생활의 위기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지쳐 있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냥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 친구가 너무나도 필요했다. 하느님께 기도도 열심히 드렸지만 주어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어려움은 더해 갔다.

 

그러던 중 부산에서 청년 한 명을 만났다. 그 청년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와 대화도 많이 나누고 식사도 함께하며 산책도 자주 하곤 했다. 너무나도 편안한 청년이었기에 내가 겪는 어려움을 잘 이해해 주고, 받아 주는 듯했다. 그래서 거리낌 없이 나의 어려움을 풀어놓곤 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청년은 나와 하는 대화를 불편하게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처음엔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지만, 만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얼굴에 웃음기는 점점 사라지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대답만 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어려움을 말할 때, 그는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난감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청년이 편했기에 더 잘해 주고 싶은 마음과 더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 청년을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 날 그 청년과 단둘이 식사하며 여느 때와 같이 나의 힘듦을 그 청년에게 말하고 있었다. 가만히 듣던 그 청년이 나에게 참다못해 한마디 던졌다.

 

신부님, 그런 말씀 저에게 하는 거 너무 부담스러워요!”

 

부담 갖지 말라고 말은 했지만, 이 청년의 말 한마디는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청년을 위해 만남의 시간을 가진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내가 위로받고자 하는 욕심으로 그 청년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레시오회원으로서 사목적 대상인 그 청년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해 주고 싶었지만, 그 사랑은 그 청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힘드니 위로받고 싶은 대상을 위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힘들 때 함께 있어 주고 기쁠 때 함께 웃어 주던 그 청년에게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어떤 자매님과 신앙 상담을 할 때, 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실 그 자매님의 딸은 그 누구의 자녀보다 착하고 성실하며 신앙심도 깊은 29세 직장인이다. 하지만 딸은 엄마와의 관계를 많이 힘들어했다. 딸이 엄마를 힘들어했기에, 엄마도 딸을 힘들어했다. 그러니 서로 자주 부딪혔다.

 

자매님의 불만은 아주 사소했다. 어릴 적 자녀는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자신에게 늘 보고했지만 나이가 드니, 보고는 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이제 곧 30살이 되는, 쉽게 말하면 다 큰 딸인데 말이다.

 

부모가 자녀를 걱정하는 마음은 사랑의 마음에서 오기에 너무나 좋다. 하지만 자녀를 사랑한다고 구속하려는 태도는 자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보다는 부모의 욕심이 크기 때문에 자녀가 그 사랑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자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매님, 욕심을 버리세요.”

 

이 말을 들은 자매님은 한동안 눈물을 흘리셨다.

 

진정한 사랑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 등이 잘 어우러진 모습이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상대방이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표현일 것이다.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도 똑같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응답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받는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을 볼 때 늘 기쁨이 가득하고 마음이 평화로울 것이며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온유로서 호의와 선의를 베풀며 인내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두 글자로 줄이면 행복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원하는 행복은 바로 사랑 안에 있다. 예수님께서 주신 새로운 계명이 있다. 이는 율법을 뛰어 넘는 참신하고 완전한 계명이며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이 사랑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초월적 사랑이다. 원수는 멀리 있지 않다.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 바로 원수가 된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원수까지 사랑한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볼 수 있다.

 

닭이 울기 전 세 번을 모른다고 고백하며 배신한 베드로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이셨으며, 당신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에 대해 아쉬워하셨다(마태 26,24).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던 이들을 용서해 달라며 하느님께 기도까지 하셨다(루카 23,34).

 

예수님의 사랑은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이를 위해 모든 것이 되신 예수님처럼 우리 사랑의 대상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 원수들까지 포함한 모든 이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더 보태면 그 사랑은 욕심과 질투, 시기가 없는,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어야 할 것이다.

 

살레시오회원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청소년과 수많은 청년, 수많은 교우들을 만나 왔다. 조금 부끄러운 말이지만 살레시오회의 창립자이신 성 요한 보스코 신부님의 정신을 따라 사는 사제로서 내가 만난 수많은 청소년과 수많은 청년 그리고 수많은 교우들이 과연 나에게 사랑을 느꼈을까? 이것을 수치로 따진다면 얼마나 될까?

 

수치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아마 이것은 지금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나의 성소를 완성한 날(내가 살레시오회 사제로 죽었을 때) 비로소 후대 사람들이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그들에게 드러난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오늘 하루도 주님께 기도해 본다.

 

Profile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으로, 현재 서울 신월동에 있는 '살레시오 나눔의 집'에서 사랑둥이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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