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맛으로 기억될 것인가

영성과 신심

어떤 맛으로 기억될 것인가

성체성사에 담긴 참사랑의 맛

2025. 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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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입맛에 좀 맞으세요?”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약 2년간 부산에 있는 이태석신부기념관 1층 카페테리아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만들며, 오시는 손님들에게 늘 던지던 물음이었다. 많은 분이 신부가 주방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만든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 맛에 더욱 놀라기도 했다. 사실 요리라고는 라면 끓이기밖에 할 줄 몰랐던 내가 정해진 레시피와 개인적인 연구를 거듭하며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러한 노력의 대가인지 많은 사람이 내가 만든 파스타와 피자를 먹고 만족하는 모습에 기쁨을 느꼈다. (물론 지금은 파스타와 피자가 아닌 서울 신월동 살레시오 나눔의 집에서 5명의 사랑둥이 아이들과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고 있다.)

 

부산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만들던 그 시간을 보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든 파스타와 피자가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의 맛이 될 수 있을까?’ 그 연장선상으로 이런 묵상을 하기도 했다.

 

과연 나는 어떤 맛의 신앙인이고, 어떤 맛의 사제이며, 어떤 맛의 수도자로 살아가는가?’

 

음식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이다. 매일 섭취해야 하며 음식을 통해 우리는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어떤 음식은 단순한 영양 섭취의 목적 그 이상으로 우리의 삶에 울림을 준다. 어머니의 손맛처럼 말이다. 어머니가 해 주신 따뜻한 밥 한 그릇과 된장찌개, 그리고 평범한 반찬들은 그 어떤 산해진미와도 비교할 수 없을 최고의 맛이다. 음식을 만들면서 어머니가 해 주셨던 그 맛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마음이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제 어머니의 밥을 못 먹은 지 3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래서인지 정말 어머니의 맛이 그리울 때가 많다.

 

지난 2024년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날씨도 더웠지만 뜨거운 불앞에서 요리까지 하니 태어나서 이러한 더위는 처음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입고 있던 옷뿐만 아니라 앞치마까지 땀으로 흠뻑 젖고, 결국에는 더위까지 먹었다. 더위를 먹으니 입맛이 떨어져 물만 계속 마셨다. 7월과 8월 약 2개월 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지인분들이 식사 초대를 해도 한두 점 혹은 몇 숟갈만 겨우 먹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몸무게도 10킬로그램이나 빠졌다. 몸에 좋다는 보양식도 제대로 먹지 못해 소용없었다. 그저 맛볼 수 없는 어머니의 밥 한 그릇이 간절했다.

 

몸이 힘드니 마음도 지쳐 갔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짜증이 나고 무력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주님의 천사가 나에게 왔다. 다름 아닌 부산에서 알고 지내는 은인 가족분이었다. 특히 자매님께서는 김밥과 쥐포튀김을 손수 만들어 가져다주셨다. 나는 고향이 경남 마산이라 쥐포튀김을 상당히 좋아한다. 자매님께서는 김밥을 만들다 내가 쥐포튀김을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고, 계획에도 없는 쥐포튀김까지 함께 만들어 온 것이다.

 

그 김밥과 쥐포튀김을 입에 넣는 순간 울컥, 눈물이 났다.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그리웠던 어머니의 맛이었다. 김밥과 쥐포튀김에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나도 맛있었다. 그 맛은 어머니의 밥상을 그리워하던 내 오래된 기억을 생생한 현실로 되돌려 놓았고 마음속까지 파고들었다. 마치 어머니가 눈앞에서 위로해 주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평범한 김밥과 쥐포튀김에는 사랑과 정성 그리고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정성스럽게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만든 특별식을 먹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자매님의 덕분에 잃었던 입맛도 되찾고 기운도 차릴 수 있었다. 그 음식은 무더운 여름 그 어떤 보양식보다 값진 것이었고 지금도 내 기억에 잊지 못할 맛으로 남아 있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도 잊지 못할 음식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음식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음식이 있다. 성체와 성혈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이 직접 빵과 포도주가 되셨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한데 모아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며 축복하고 쪼개어 제자들에 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그리고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며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우리는 이 말씀을 미사 때마다 듣는다. 하지만 그냥 듣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 모든 장면을 기억해야 한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말씀에서 기억은 그냥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기억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억은 희랍어로 아남네시스(ἀνάμνησις)’, 단순한 정신 활동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는 예수님의 그 모습과 말씀, 당시 최후의 만찬 때의 모습과 말씀을 그대로 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저 떠올리는 기억이 아닌 예수님께서 직접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그때 그 모습으로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말씀 안에서는 우리와 평생을 함께하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충분히 담겨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여라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행해야 할까? 이는 바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 복음 선포를 우리도 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복음을 그저 말로만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언행일치의 모습으로 선포하셨다.

 

성당에서는 그 누구보다 거룩한 모습이지만 일상에서의 모습이 형편없다면 복음 선포의 자세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습관적으로 성체를 모시고 있다면 그것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성체를 통해 내 안에 오신 예수님을 나 스스로가 삶 안에서 증거해야 한다. 나에게 잊지 못할 음식이 있듯, 우리가 모시는 성체와 성혈 역시 잊어서는 안 될 귀한 음식이다. 그 외에도 하느님께서 성체와 성혈을 통해 참사랑의 맛을 만들어 주고 계심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성체를 통해 내 안에 오신 예수님을 나는 어떤 모습으로 증거하는지, 신앙인으로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지, 나는 어떤 맛의 신앙인이고 어떤 맛의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나에게 깊은 맛을 안겨 주고 감동을 주었던 김밥과 쥐포튀김처럼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과 정성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신다. 우리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하느님 사랑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맛잊지 못할 추억잊지 못할 사람으로…….

Profile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으로, 현재 서울 신월동에 있는 '살레시오 나눔의 집'에서 사랑둥이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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