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신비, 그리스도 우리의 빛

신학 칼럼

빛의 신비, 그리스도 우리의 빛

두 번째 여정 | 예수님의 유년기와 공생활을 걷는 순례

2025.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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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묵주 기도, 순례자의 나침반> 시리즈의 아티클로, '환희의 신비, 고통 안에서도 하느님 뜻을 찾는 마음'에서 이어집니다.

 


 

 

👣 두 번째 여정 가이드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빛의 예식을 기억하십니까? 주례 사제는 불을 축복하고 그 불을 부활초에 붙여 제대를 향해 행진합니다.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고 오직 사제가 들고 있는 초의 불빛만 희미하게 비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빛이 그리스도이시며 우리의 빛임을 노래합니다. 노래와 함께 우리에게 퍼진 그리스도의 빛을 통해 어둠으로 가득했던 세상은 점차 밝아집니다.

 

이처럼 빛의 순례는 예수님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느님 나라의 계시입니다. 감추어져 있던, 어둠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그리스도의 빛을 통해 밝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빛이신 그리스도의 여정을 따라 걸으며 세상 속에서, 다른 이에게 그 신비를 밝게 드러내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꺼지지 않은 작은 불빛

 

하느님께서는 어둠이 심연을 덮고”(창세 1,2) 있는 땅에 가장 먼저 을 창조하시면서 세상의 창조를 시작하십니다(창세 1,3-5 참조). 그 빛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다른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십니다. 하늘과 바다, 땅과 식물, 천체와 물고기, , 동물,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시며 그들이 빛을 품고 빛을 향해 나아가게 하십니다. 빛은 하느님의 생명이며 구원의 상징이자 하느님의 현존이며 영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세상의 빛”(요한 8,12)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밝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찾아오신 구원의 빛이십니다. 루카 복음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78-79)

 

빛을 따라 걸어가는 순례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나자렛 생활에서 공생활로 우리를 이끕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삶의 태도와 가치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어둠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잊고 살았던 것들이 예수님의 빛을 통해 다시 보이게 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터널의 어둠 속에서도 작은 빛 한 줄기를 발견하면 우리는 그 빛을 향해 나아갑니다. 나의 삶이 고통과 어둠으로 짙게 깔려 있어 좌절하고 한 발짝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그 어둠을 헤쳐 나올 수 있는 이유는 꺼지지 않는 빛 때문입니다.

 

너무나 희미해서 의식조차 할 수 없던 그 빛, 나의 모든 삶을 비추기에 너무 작게 여겨지던 빛, 세례 때에 흰 천을 머리에 쓰고 받았던 그 그리스도의 빛을 우리는 성모님과 함께 떠나는 이 빛의 순례에서 키워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받을 때에만 세상을 있는 그대로, 창조 때의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밝게 비출 수 있습니다.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를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을 켜서 함지 속이 아닌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4-16)

 

우리도 빛입니다. 우리도 세상의 희망이며 사랑입니다. 그 빛을 세상에 나누어 주었으면 합니다. 성모님과 함께 떠나는 이 빛의 순례, 예수님의 공생활 안에서 만들어 가시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는 여정 속에서 빛을 나누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겸손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겸손의 극치입니다. 왜냐하면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단지 우리를 위하여 죄 있는분이 되셨습니다(2코린 5,21 참조). 이 외에도 그리스도께서는 강한 힘을 지니셨지만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인간이 되셨으며, 언제나 낮은 자리에,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과 함께 지내며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런 낮춤을 하느님께서 채워 주십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마르 1,10)을 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우리의 낮춤과 겸손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세례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환시와 계시를 통해 자신의 사명을 확신합니다.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더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9-10)

 


 

삶으로 보여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세상 안에 가득했던 어둠을 당신의 위로와 사랑, 용서와 화해의 빛으로 몰아내십니다. 악마를 쫓아내시고 병을 치유해 주시며,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십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 주시고 무거운 짐을 가볍게 만들어 주십니다. 죄로 억눌려 있는 이들을 용서하시고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주십니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모습이고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비를 당신의 사람들에게 먼저 보여 주십니다. 카나에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요한 2,1-12 참조)에서는 당신의 첫 사람성모님의 부탁을 듣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기쁨의 순간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당신이 뽑아 공동체를 이루었던 다른 제자들의 마음을 신앙으로 열어 주십니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 자비를 보여 주시는 첫 대상이 바로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선포의 정점은 바로 예수님의 변모’(마르 9,2-10)입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느님의 영광이 빛납니다. 그분의 존재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소리가 들려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면,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면, 그분의 모습을 닮아 간다면 우리 또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빛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 사랑과 희생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께로 떠나시는 그 순례는 강생의 신비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와 공생활 순례의 모든 순간을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당신의 사람들과 만찬을 나누십니다. 그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를, 곧 자신의 전 존재를 빵과 포도주의 형태로 내어 주십니다.

 

이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남을 위한 삶을 위해 내어놓을 것임을 보여 주십니다. 이는 모든 것을 타인을 위해 희생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성체성사를 통해 그분의 몸을 받아 모시며 그렇게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이는 을 위한 존재로, ‘을 위해 기꺼이 내 모든 것을 내어놓는 희생과 사랑의 다짐입니다.

 


 

감추어져 있지만 언제나 함께하시는 성모님

 

이 빛의 여정 안에서 성모님의 모습을 가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집을 떠나 자신의 순례를 하시는 예수님을 어머니 마리아는 언제나 함께하셨을 것입니다. 때로는 놀라고, 때로는 아파하고, 때로는 자랑스러워하며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카나에서 성모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우리의 등불은 미약합니다. 아니 우리가 등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쩌면 빛이 아닌 빛을 가장한 어둠일 수도 있습니다. 그 빛이 참인지 거짓인지 살피기 위해서 우리는 성모님처럼 언제나 예수님의 여정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모님처럼 환하게 밝혀 주시는 예수님의 빛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빛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삶을 밝히 비추는 빛으로, 빛과 함께 살아갑니다.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맑을 때에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못할 때에는 몸도 어둡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살펴보아라. 너의 온몸이 환하여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이 그 밝은 빛으로 너를 비출 때처럼, 네 몸이 온통 환할 것이다.”(루카 11,34-36)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Profile
광주대교구 사제. 가톨릭목포성지 담당으로 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장을 맡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일상에서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나의 삶을 직시할 수 있는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과 순례를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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