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 예수님!
저는 인천교구 해양사목 담당 김현우 바오로 신부입니다. 2021년 1월, 교구장님께서 해양사목(Stella Maris) 담당 사제로 임명하신 후 첫 ‘방선 미사’를 드린 날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2022년 5월 4일, 팬데믹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죠. 저는 미사 드릴 준비를 해서 인천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후 4시, 인천세관을 방문해 임시승선권에 도장을 받고 인천항 내부로 들어섰습니다. 날씨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맑고 청명한 5월의 하늘과 석양에 물든 바다는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2년 6개월 만에 재개된 선상 미사였습니다.
Stella Maris는 조금 특별한 사목입니다. 1920년 10월 4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첫 번째 해양사목 회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설립되었고, 1922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정식으로 승인되었습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 특수한 사목은 한국 교회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바티칸으로부터 공식 승인받은 해양사목 부서는 부산교구와 인천교구에만 있습니다. 이 특수한 사목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아파트를 옆으로 눕힌 듯한 크기와 넓이를 자랑하는 거대한 상선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겨우 꼭대기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웅장한 배입니다. 그 거대한 선체에는 20명 안팎의 선원들이 승선해 있습니다. 모두 외국인들이며 각자의 위치에서 무전기를 통해 소통하고 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만들어 내는 엄청난 소음에 귀가 멍멍해집니다. 휘파람을 불고 소리를 질러도 배 안에서는 들리지 않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한 선원이 저희를 발견하고 철제 사다리를 땅으로 내려 줍니다.
준비한 선물 꾸러미와 케이크, 선원들에게 나눠 줄 모자와 미사 도구를 들고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외국인 선원들이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선실 내부로 들어가 구불구불한 계단을 오르내리며 미리 준비된 공간에 도착했습니다. 주방 기기들이 놓인 공간 옆에는 식당이 있었습니다.
인천항은 항상 상선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배들은 떠나고 다시 들어오며, 들어올 때마다 보통 열흘 정도 정박합니다. 배가 정박하면 오랫동안 바다에서 일해 온 선원들의 교대도 이루어집니다.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청년들입니다. 해양사목은 바다에서 일하는 선원들과 그 가족들을 돌보는 것이 목적입니다. 가족과 떨어져 바다 위에서 고독과 불안 속에 살아가는 이들 역시 관심과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만나기 어렵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아니니까요.
탁자 위에 제대보가 정갈하게 펼쳐지고 촛대가 조심스럽게 놓입니다. 선원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합니다. 아픈 딸을 위해, 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위한 기도 지향을 종이에 적습니다. 성가도, 성대한 입당도, 복사도 없는 이 상선 안의 미사는 숙연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합니다. 선원들의 눈에서는 빛이 났습니다. 그 어느 미사에서도 본 적 없는 깊고 간절한 눈빛이었습니다.
앞으로 언제 다시 미사를 드릴 수 있을지, 언제 다시 성체를 모실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16명의 필리핀 선원은 진심으로 미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맺혔고, 각자 마음에 소중한 이를 떠올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우리는 케이크 초에 불을 밝혔습니다. 모두의 지나간 생일과 앞으로 다가올 생일을 함께 축하했죠. 이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상갑판과 엔진룸을 축복하고 나니 허락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상선을 떠나는 우리를 향해 선원들이 따뜻하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선원들과 함께 드린 미사 후에 저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해양사목을 단순히 ‘찾아가는 사목’으로만 이해하고 배에 오를 때마다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배에 오른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저의 해양사목에 대한 접근 방식과 마음가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다의 별이신 성모님,
당신의 아들들을 기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