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영성과 신심

말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택시 기사를 춤추게 만든 칭찬의 비밀은?

2025.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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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를 한없이 가깝게 만들기도 하고 멀게도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게 무엇일까. 바로 말이다. 말 곱게 해서 욕먹는 사람이 없고 말 밉게 해서 사랑받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일부러 말을 밉게 하려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하는 말마다 미운 말이 나가는 이유는 고운 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배우고 익혀야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고운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노력해서 고운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는 말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책을 쓰고 말로 상담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말에 대해 날마다 생각하고 더 고운 말을 찾아내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산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고운 말을 쓰면 사람과의 관계가 일순간 좋아지는 경험을 자주 하곤 한다.

 

강의를 하러 갈 때 어쩌다 모범택시를 탈 때가 있다. 강의 시간은 다 돼 가는데 택시가 잡히지 않으면 할 수 없이 비싼 모범택시를 타야 한다. 그날도 모범택시를 탔는데 보기에도 신차 느낌이 폴폴 풍겼다. 게다가 중간 길이를 확장한 고급 리무진 택시였다. 출발하자마자 걸쭉한 사투리를 쓰는 경상도 기사 아저씨의 차 자랑이 시작되었다.

 

손님. 이런 차를 타신 건, 제 차라서 하는 소리가 아이고, 행운입니다. 뽑은지 열흘도 안 됐는데, 저도 평생 기사 하면서 타 본 차 중에 최곱니다.”

, 그래요. 그렇군요.”

 

한마디 추임새를 넣었더니 속사포처럼 차 자랑이 이어졌다.

 

뒷자리 마이 넓지요. 2미터 거인이 타서 다리를 뻗어도 넉넉할 낍니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도로를 봤다가 차 실내를 봤다가. 이 고급 차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장난기가 올라와 기사님에게 말했다.

 

기사님, 근데 이 차 단점이 하나 있다면서요.”

 

그 말에 기사는 발끈했다. 얼굴이 금세 붉어지더니

 

누가 그캅디까. 에쿠* 근마들이 그카죠. 와 확 열받네. 그래 손님 이 차 단점이 뭐라 캅디까. ?”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조용히 말했다.

 

이 차가 날지는 못한다면서요.”

 

아하하하하, 으하하하하. 택시 기사의 웃음소리가 택시 안을 떠나갈 듯이 울렸다.

 

하하하, 맞심다. 이 차가 날지는 못하지요. 나는 거 빼고는 다 한다 아입니까. 하아 맞네, 맞네. 못 나네. 하하하하하.”

 

그러더니 뒤로 백미러를 보면서 물었다.

 

손님 말 참 재밌게 하시네. 뭐 하시는 분입니까?”

, 저는 이런 말하는 말 장사꾼이지요.”

아하, 그런 직업도 있어요? 말로 먹고사는 장사라고 말 장사라 카는구나.”

 

그 후 기사님은 기분이 좋아져 흥이 넘치는 노래를 틀고 손으로 운전대에 박자를 맞추며 신나게 운전했다. 중간중간 하하, 못 난다, 맞다 맞다를 반복하면서.

 

말 한마디로 기사님의 기분이 구름을 뚫고 하늘을 날았다. 말이라는 게 신기한 물건이다. 즐거운 기분을 잡치게 하기도 하고, 더 즐겁게 만들기도 하는 게 말이라는 물건이 가진 특별한 기능이요 효능이다. 나는 그 후로 리무진 모범택시를 볼 때마다 , 날지만 못 하는 차가 또 저기 가는구나.’ 싶어 웃곤 한다. 그날 날지만 못 하는 택시 덕분에 주인인 기사님도 나도 붕붕 하늘을 날 수 있었다.

 

한 번은 춘천으로 강의하러 갔다가 소고기구이를 맛있게 하는 집에 들른 적이 있다. 그 집 소고기는 처음 먹었는데 사르르 녹는 맛에 기분이 좋아졌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수록 살면서 느끼는 즐거움 가운데 먹는 즐거움이 가장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 고기에 표창장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인아저씨는 부지런히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다니면서 인사를 했다.

 

입에 맞으세요?”

맛있게 드세요.”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주인아저씨에게 기분 좋은 말을 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앉은 테이블로 온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사장님, 이 식당에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알고 계세요?”

 

그러자 아저씨는 호기심 반, 걱정 반인 얼굴로 물었다.

 

아니, 소문이요? 어떤 소문이 도나요?”

, 여기서 고기를 먹고도 맛이 없다면 춘천을 벗어나야 한다던데요.”

 

주인아저씨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그런 고약한 소문을 냈답니까. 찾아서 고기 잔뜩 먹여야겠는걸요.”

 

잠시 후 시키지도 않은 고기가 한 뭉치 불판 위로 들어왔다. ‘춘천 벗어나지 마시라고 드리는 서비스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날 나는 맛있는 고기를 원 없이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맛집 주인들은 자기 식당 음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자부심을 가진 주인에게 고기가 맛있다는 말만으로는 자부심을 높여 주지 못한다. 더 극적인 칭찬의 말에 주인은 허기져 있다. 그래서 그런 표현을 해 주는 손님이 있으면 주인은 돈 버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아진다. 시킨 것보다 많은 양의 고기 서비스를 준 것은 이 때문이다.

 

일 년 뒤에 다시 식당을 찾았을 때 주인아저씨가 바로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춘천 벗어나서 고기 드시고 또 생각나서 오셨느냐며 먼저 농담을 건넸다. 춘천 벗어나서 먹어 보니 춘천만 벗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주인아저씨와 한참 웃었다. 기분 좋게 먹는 소고기는 참 맛이 좋았다.

 

어느 분야든 자부심을 가진 장인이 있기 마련이다. 장인은 대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으며 산다. 그런데 칭찬은 묘해서 자꾸 들으면 별 감흥이 없어진다. 칭찬도 내성이 있어서 같은 만족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 진한 칭찬이 필요하다. 한 가지 진한 칭찬의 말을 기억해 두면 요긴하게 쓸 날이 온다. 그럼, 기분 좋다고 소고기 더 묵겠지.

 

사람은 신이 아니다. 어딘가 부족하고 어딘가 결핍되어 있다. 그래서 늘 자신이 없고 불안하다. 그런 사람에게 단점을 지적하는 것은 그러지 않아도 취약한 사람을 확 주저앉히는 못된 짓이다. 장점을 일깨워 주는 것이 그 사람을 살리는 약이다. 이때 장점은 근거 없이 황당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듣는 사람도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근거를 가진 것이어야 한다. 근거 없이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을 우리는 입에 발린 소리라 하여 경계하고 좋아하지 않는다.

 

쾌적한 차 내부를 근거로 이 차는 날개 없는 걸 빼면 완벽하다고 칭찬하고, 소고기 맛을 근거로 춘천에서 이 집이 으뜸이라고 말해 주어야 근사한 칭찬이 된다. 그냥 차가 좋다고 칭찬하면 자칫 입에 발린 소리가 되고, 소고기가 아주 맛있다고 하면 으레 듣는 칭찬이 되어 버린다.

 

모범택시와 고깃집에만 이 원리가 통하는 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로 이 원리가 적용된다. 관찰하기에 이어서 재미있게 칭찬하기. 여기서는 관찰이 핵심이다. 그래서 잘 살펴보는 연습을 일상에서 습관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시인 마종하는 딸을 위한 시에서 관찰의 힘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시인의 이야기처럼 어린 시절부터 세상의 사물과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습관을 지니면, 관계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다. 뿌리가 좋아야 열매가 많이 열리는 법이다. 관찰 뿌리를 든든하게 해서 칭찬 열매를 맺으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맛있는 과일로 눈앞에 나타난다. 말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아름답게 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Profile
나우리가족상담소 소속으로 사회복지실천, 상담학을 전공했습니다. 현재는 CPBC 라디오 상담 프로그램에 5년째 고정 패널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발견하고 보급하는 일이 저의 취미입니다.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그 말이 듣고 싶었어》 등 '말'에 대한 다양한 책을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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