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복음: 루카 3,10-18>
오늘 복음에서는 이 질문이 반복됩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요한 세례자에게 유다인들이 묻는 질문입니다. 질문의 원래 의미에 가깝게 옮기자면 ‘무엇으로서 너는 존재하는가?’입니다. 이 질문은 ‘너는 무엇으로 너 자신인가? 무엇을 행동하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원하는가?’를 묻는 것이겠습니다. 이 질문을 받은 요한 세례자는 자신이 받은 질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40장 4절을 인용하여 자신이 누구인가를 답합니다.
‘나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입니다.’
이 대답을 통해 우리는 요한 세례자의 말과 행동이 왜 그랬어야 했는지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메시아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그의 원의와 광야에서 고행을 하며 살아가기로 한 선택, 사람들에게 선포된 회개하라는 그의 말이 모두 하나로 일치하여 그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이임을 알려 줍니다. 요한 세례자는 메시아를 준비하는 소리로써 그의 원의와 말과 행동을 정향시킵니다. ‘당신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닌 나입니다.’라는 대답으로 되려 그 자신을 잘 드러낸 것입니다.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맞는 답은 아니지만,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말로 그 자신의 원의와 말, 그리고 행동이 잘 설명됩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그의 존재 의식이 그를 진정으로 그 자신으로 만든 것입니다. 요한 세례자의 이 대답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 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무엇이 되라고, 무엇을 이루라고 계속해서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 없고, 그냥 남들이 이야기하는 그 무언가가 되라고, 어떤 사람인 척하라고, 그래야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내가 행복한 줄 안다고 나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말합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잘 듣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누구인지 관심은 없고, 남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쫓기를 택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아니면 그러기를 바라면서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신앙인’인 내 자신도 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봐 주기를 바라는 ‘신앙인’이라는 이름을 나의 가슴에 붙여 두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을 사귀기 위해, 잠깐의 위로를 얻기 위해 신앙인인 척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얇은 우리의 원의에도 주님은 기뻐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요한 세례자는 현대의 우리보다 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보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 척하지 않았습니다. 되려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정체성을 자기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습니다. 자신을 스쳐 가는 잠깐의 ‘소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정체성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말을 하였고 그리스도가 아닌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아님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원했습니다. 이를 통해 진정한 신앙인인 자신을 지금도 우리에게 모범으로 알려 줍니다.
대림 제3주일에 교회는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라고 요한 세례자의 예로 초대합니다. 우리의 영혼에 새겨진 신앙인이라는 이름표가 우리 자신과 온전히 일치하도록 우리를 준비시키고 초대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리며 우리의 정체성을 스스로 알아들어야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