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복음: 루카 3,1-6>
오늘은 대림 제2주일이면서 동시에 인권 주일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사회 교리 주간이 시작됩니다.
교회는 2011년부터 대림 2주간을 사회 교리 주간으로 지내고 있는데, 이 사회 교리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과연 신앙인으로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며, 무엇을 지향으로 삼아야 하는지 교회가 정의해 준 것들이 바로 가톨릭 사회 교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어머니이신 교회는 복음을 통해 요한 세례자의 말을 전해 줍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 3,5-6)
예수님 육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탄의 의미가 무엇인지 세례자 요한의 입을 통해 교회가 들려주는 것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이 땅에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선물하신 이유가 바로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나와 네가, 생각도 다르고 살아 온 역사도 다른 나와 네가 모두 함께 하느님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바로 육화의 의미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믿는 우리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우리와 같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모두가 함께 구원을 향해 나아간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도스토옙스키라는 러시아의 대문호가 있습니다. 그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저서에서 조시마 장로의 설교 중 한 구절이 모두에게 주어진 구원의 의미를 한마디로 설명합니다.
“모든 것에 대해, 모든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
모두가 구원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서로의 구원에 대해 서로가 책임을 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나도 그리고 너도 하느님의 구원으로 초대를 받았기에, 그 누구도 그 구원의 길 위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교회의 구원을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숨어 있는 세상의 구원을 찾아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이 의무들을 교회는 선교라고 부르기도 하고, 복음화라고 부르기도 하며,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나를 포함한 모두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처럼 애써야 할 신앙인으로서의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길을 걸어온 그가 하느님의 구원을 향해 얼굴을 돌리도록, 그가 더 옳은 삶을 살도록, 그가 더 맞는 판단을 하도록, 그가 더 사람답게 살도록 빛을 비춰 주어야 할 책임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믿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대림 제2주일에 시작하는 사회 교리 주간은 교회가 이야기하는 주님의 육화가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구원으로 부르셨듯이 그 부르심에 나도 또한 발맞춰 가도록 애쓰게 합니다. 이 하느님의 구원에 발맞추는 것이 바로 교회가 이야기하는 사회 교리의 핵심입니다.
“나는 당신의 구원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는 당신에게 하느님 앞에서 책임이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시작하는 사회 교리 주간의 핵심입니다.
그렇기에 교회가 이야기하는 사회 교리는 우리가 신앙인으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내가 신앙인으로서 세상 속에서 내리는 선택과 말과 의도들이 바로 사회 교리입니다. 그리하여 문제는 ‘나는 신앙인으로 제대로 서 있는가?’로 바뀌게 됩니다. 세상을 향해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나의 신앙인으로서의 선택을 요구받게 됩니다. 또 다른 예수님으로 세상 속에서 충분히 ‘육화’되었는지,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빛과 소금으로 서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사회 교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교회의 이 가르침에 따라 나와 함께 일하는 이들, 나에게 고용된 이들, 또는 내가 길거리에서 만나는 이들, 식당에서, 학교에서 만나는 이들의 구원에 내가 어떻게 책임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모든 이가 하느님의 구원을 보도록 신앙인인 내가 그들의 눈과 입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나는 과연 내가 만나는 모든 이,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인류 공동체에 대해 하느님 앞에서 책임 의식을 가졌는지 돌아봅시다.
주님은 나와 타인을 공동체를 통해 만나시기에, 우리 모두 서로에게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마음을 다시 다잡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