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는 물러날 데가 없다
한국인에게는 새해가 세 번 주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양력 1월 1일, 두 번째는설날인 음력 1월 1일, 그리고 마지막은 보통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2일입니다. 다들 연말이 되면 양력 1월 1일부터 결심을 지켜나가야겠다고 다짐하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올해는 기필코 일상에서도 신앙생활을 꾸준히 실천하겠다 결심했습니다. 이제 더는 물러날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다잡고 《신심 생활 입문》을 펼쳐봅니다.
목표를 위해 이 책을 택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자인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서문에 책을 쓴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지금까지 신심에 대한 글을 쓴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세상의 번뇌를 피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썼습니다. 그러기에 완전한 은둔생활로 인도하는 신심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 집안일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신심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신심 생활이라고 하면 성직자나 수도자에게만 가능한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고, 또 일상 생활과는 별개의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신심을 추구하는 것이 특정 인물만 할 수 있는것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에서 자신의 상황이나 처지에 따라 추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의 가르침이라면 나도 일상에서 신심 생활을 실천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온화한 성품과 깊이 있으면서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강론으로 유명했습니다. 귀족부터 가난한 이들까지 수많은 평신도가 그에게 영적 지도를 청했고, 파리에 머물던 시기에는 많은 시민이 매일 그의 강론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적지 않은 양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수월하게 읽어나갔습니다. 책은 일상에서도 신앙을 실천할 수 있는 수련법,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덕을 쌓는 방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유혹을 피하는 법 등을 신심 생활의 단계에 따라 총 5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신심 생활의 각 단계가 ‘농사’를 짓는 것과 무척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농사를 짓는 과정에 빗대어 책의 일부 내용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STEP 1. 밭 고르기 – 신심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밭이 있다고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씨부터 뿌리면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농사에 적합한 땅인지 고려하고 농사에 방해가 되는 잡초나 돌 등을 제거하고 땅을 잘 골라내야 합니다. 신심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적인 절제와 희생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와 직분에 맞는 목표를 가져야합니다. 또한 고해성사를 통해 세심하게 죄를 성찰함으로써 내 마음의 잡초부터 없애야 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내고 작은 돌이나 잡초도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고해한 죄를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사소하게 느껴지는 죄까지도 모두 성찰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심 생활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내면의 밭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STEP 2. 물과 거름 주기 – 영적으로 진보하기 위해 필요한 덕을 닦는 시간 : 기도와 묵상
잘 준비된 밭에 씨를 뿌리고 나면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됩니다. 농부는 작물이 잘 자라나도록 물과 거름을 주며 수시로 돌보아야 합니다. 신심 생활에서 우리의 성장을 돕는 물과 거름이 있다면 바로 ‘기도’와 ‘묵상’입니다. 성인은 ‘기도’가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의 물이라 말합니다. 선한 생각의 싹을 틔우고 우리의 결함을 씻어내며 영적 갈증을 해소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신심 생활 지도서답게 책은 영적 수련법을 현실적인 방법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 줍니다. 먼저 기도는 농부가 하루의 시작과 끝에 작물을 확인하고 농사를 마무리하듯이 아침 일찍, 그리고 저녁 잠들기 전에 바칠 것을 권합니다. 특히 아침기도에 대해 강조하며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이때 기도 방법에 관계없이 하느님께서 지금 내 앞에 계시다고 생각하며 바쳐야 합니다. 묵상은 예수님의 생애와 수난에 대해 묵상하기를 권하며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화살기도로 대신해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밭에 물과 거름을 많이 준다고 작물이 무조건 잘 자라는 것은 아니듯이 기도와 묵상은 빨리 많이 하는 것보다 천천히,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담아야 합니다.
STEP 3. 해충으로부터 보호 – 신심 생활 중에 악마의 유혹을 피하는 방법
작물이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하면 농부는 전보다 더 밭에 온 신경을 쏟아야 합니다. 해충과 야생 동물들이 호시탐탐 작물들을 노리기 때문입니다. 신심 생활 중에도 악마는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려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앞서 고해를 통해 정화하는 과정을 이야기했듯이 신심 생활을 할 때에 영적 수련만큼이나 내면을 돌아보고 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책은 유혹을 받는 것과 동조하는 것의 차이를 비교하고 유혹에 대처하는 법, 악마의 꼬드김에 맞서 영혼을 강하게 하는 법들을 알려 줍니다. 그 중 하나는 ‘화살기도’입니다. 농약을 뿌려 작물을 보호하듯이 일상에서도 틈틈이 화살기도를 바치며 주님을 떠올리면 우리는 악으로부터 도망쳐 하느님이라는 피난처로 숨을 수 있습니다.
작물을 수확할 시간
어떤 다짐도 하루아침에 습관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일부러 이번 책은 각 장을 매일매일 조금씩 나눠 읽으며 나만의 신심 생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덮을 때쯤 저는 하나의 수확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성인이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한 ‘아침기도’입니다. 이제는 아침 알람이 울리면 바로 스마트폰 화면을 켜지 않고 아침기도부터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침기도가 습관이 되면서 억지로 잠에서 깨 어영부영 시작하던 하루가 가장 용기와 활력이 가득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신심 생활이 마치 농사를 짓는 것처럼 늘 깨어 노력하면 일상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현실에 쫓겨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단순히 신심 생활을 위한 지침을 전하는 것을 넘어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즉, 신심 생활이라는 농사를 지을 때 가장 핵심은 하느님 아버지의 손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작물을 키우는 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햇빛이듯 우리도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침기도’라는 작은 열매를 시작으로 더욱 풍성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려합니다. 여러분도 올 한 해 《신심 생활 입문》과 함께 여러분만의 신심 생활의 밭을 일구어내시길 바랍니다.
by. 리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