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사도의 영성을 살펴보기에 앞서 그의 삶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그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로,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 자신의 생애 전부가 구원 역사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바오로 사도는 누구보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그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던 가장 큰 이유는 율법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다인의 삶에서 전통적으로 율법은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구약 성경에서 율법은 ‘지침, 규정, 법령, 명령, 계명’을 의미하는데, 히브리어로 ‘토라’라고 불리는 율법은 본래 가르침이란 뜻이며 ‘길’이란 의미도 있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받은 십계명 등은 바로 율법의 뼈대를 형성한다.
예수님께서 활동한 당시, 유다교의 율법은 613개 조항으로 세분화되어 있었으며, 이 중 248개는 지켜야 할 명령, 365개는 행해서는 안 되는 금령이었다. 율법은 유다인 교육의 중심이었고,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는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기 때문에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유다인들은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느님의 율법을 복종하고 지키는 것이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생활했다.
바오로는 이러한 율법과 종교적 전통을 지키는데 열심이었던 바리사이파에 속했으며,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생활 속에서 율법을 열심히 실천하는 열성가였다.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사울(바오로)의 눈에는 이단자로 보였다. 그는 살기가 등등하여 그리스도교인이라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체포할 책임을 지고 다마스쿠스로 향했다. 그러나 도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기적적으로 변화되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사도 9장 참조).
그리스도인이 된 후 사울은 바오로로 개명한다. 바오로는 세계를 무대로 선교 사업을 하는 데 맹활약을 했고, 온갖 박해를 무릅쓰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사도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알고 저질렀던 일들을 회심한 후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다(필리 3,7-9 참조) 바오로 사도야말로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라는 과장된 표현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교를 유다교를 넘어서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신약 성경 27권 가운데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쓰거나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책이 무려 13권에 달하며, 이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핵심적인 신학, 그리스도론, 교회론 등이 체계화되었다. 베드로와 초대 그리스도교의 두 기둥을 이루는 지도자인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박해자에서 열렬한 추종자로, 이방인의 사도로 변모하여, 결국 순교자로서 삶을 마감했다.
바오로 사도의 기도
바오로 사도의 영성은 그의 기도 생활에서 잘 드러난다.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 사도는 좁은 팔레스티나를 넘어 소아시아와 그리스 반도를 거쳐 로마 제국까지 3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을 통해 복음을 곳곳에 전하며, 그리스도교를 지역적이고 민족적 종교에서 인류 전체를 향한 세계 종교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그리스도께 사로잡힌(필리 3,12 참조) 사람이 되면서 전혀 다른 인생관, 신앙관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존재와 소유 일체가 모두 주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고, 주님의 현존을 인식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지속적으로 했다. 바오로 사도에게는 기도가 자연스럽고 지속적인 것이었기에 그의 서신에도 이러한 부분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에게 중요한 기도는 감사 기도였다.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에페 1,16)
바오로 사도는 삶에서 수없이 많은 감사의 조건을 찾아냈다. 그는 개인적인 필요와 지인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대부분 자기가 선교한 신자들과 아직 성숙하지 못한 교회 공동체의 필요에 관해 기도했다. 그의 기도에는 늘 사랑과 진실이 담겨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분투적이었다. 그는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에페 6,12)라고 복음 전파와 기도를 전투에 비유하기도 했으며, 달리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이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1코린 9,24)
바오로 사도는 그가 받을 수 있는 최상의 보상은 그의 사목을 통해 은혜받은 신자들의 기도였다고 생각했다.
바오로 사도의 죄에 대한 견해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생명이 인간 역사 안에 들어와 죄와 율법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리스도 이전의 인간은 올바르게 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로마 3,23 참조), 하느님을 알지 못한 채 하느님이 될 수 없는 것들에게 노예 노릇을 하였다고 말한다(갈라 4,8 참조).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 없이는 온 인류가 유다인이나 이방인들 모두 죄에 사로잡혀 있다고 본다(로마 3,9 참조).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과 적대 관계에 있으며(로마 5,10 참조), 하느님을 공경하고 섬기기 위해 헌신할 수도 없고(로마 1,18 참조), 하느님과 격리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사탄에게 얽혀 있는 상태이고(콜로 1,13 참조), 악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 분명하게 지적한다.
바오로 사도는 죄를 인류 역사 안에서 행동하는 능동적 세력, 즉 위격적으로 보고 있다. 즉 죄를 행동하는 구체적 실재로 보는 것이다. 만인의 구원이 그리스도 한 분에게서 비롯되는 것처럼, 만인의 죄스러운 상태도 원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악과 잡신들의 통치는 분쇄되고(1코린 6,3 참조), 사람은 율법에 얽매임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되었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은 그 자체로 하느님에게서 왔으나 그것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율법을 실천할 능력은 주지 않고, 외부적 규범만을 제시해서 결국 죄만 많아지게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갈라 3,19 참조).
그는 죄가 율법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고 말한다(로마 7,8-10 참조). 무엇보다 율법의 신봉자였던 바오로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후 율법의 부조리를 조목조목 지적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은 죽었다고 선언했다(로마 7,4 참조). 그리스도께서 이 부조리를 인간 역사 안에서 완전히 해소하셨다는 주장은(갈라 5,1 참조) 듣는 이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다.
<참고 문헌>
1) Joseph. A. Fitzmger.S.J, 정양모 옮김, 《바울로의 신학》, 분도출판사, 1968.
2) A. H. McNeille,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1981.
3) E.E. LARKIN, New Catholic Encyclopedia, V.XⅡ, New York, 1966.
4) 마경일, 《바울의 신학사상》, 동아출판사, 1963. (pp. 56~65)
5) W.K Grossouw, Spirituality of the New Testament, B. Herder Book, 1961.
6) Prot. Firemand, The Theology of St. Paul, America, 1961.
7) Alfred Wikenhauser, Pauline Mysticism, New York, 1956.
8) New mam Card, The Mind and heart of Saint Paul, England, 1959.
9) 귄터 보른캄, 허혁 옮김, 《바울 그의 생애와 사상》, 이대 출판부, 1980.
10) 이덕근, <영성신학 강의록>, 1982.
11) 김백준, 《겨울에 꿈꾸다》, 나남,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