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신비 전체를 기념하는 연중 시기

교리와 전례

그리스도 신비 전체를 기념하는 연중 시기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에는 예수님의 특별한 사건도 있고, 일상적인 모습도 있다

2025. 0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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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시기가 시작됐습니다. 이 시기에 봉헌되는 미사의 복음으로 교회는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읽어 내려갑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복음 선포와 가르침, 기적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일어나시고, 기도하시고, 식사하시고, 이야기하시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그래서 교회는 이 연중 시기를 그리스도 신비의 특별한 부분을 경축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 신비 전체를 경축한다.”(〈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43)라고 말합니다.

 

공식적인 일과 일상적인 일

 로마 유학 시절, 이탈리아어 어학 과정을 마치고 학교에 입학해 석사 과정 수업을 막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전례문의 해석학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은퇴를 바라보실 정도로 연세가 지긋한 이분은 수업 첫날부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강의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저를 포함한 학생들은 평신도 교수님으로 생각했는데, 그분은 자신을 이탈리아 북쪽에 있는 교구 소속 사제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심지어 오래전에 서임된 몬시뇰이라고 합니다. 사실 유럽에서는 많은 사제가 성직자 복장을 하지 않고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모습들을 종종 봤기 때문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강의 시간 중간에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수님이 성직자 복장을 하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의 성직자 복장, 그것도 위아래로 검은 양복에 로만 칼라를 두른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에 학생들은 다들 궁금해며 무슨 일 있냐며 물었습니다. 교수님은 이 수업이 끝난 후, 바로 자신이 지도한 학생의 논문 심사가 예정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성직자 복장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이 우리가 당신의 강의를 듣는 이 시간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의 대답이 참 쿨(!)했습니다. 자기는 지금 교수라는 소임을 맡고 있기 때문에 매일 강의하는 것은 자기에게 공식적인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우리는 공식적인 일과 일상적인 일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공식적이라 함은 예외적인 것이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인 일을 예외적이라고 여기면, 그 일상적인 것만이 가지는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전례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니까 저한테 이렇게 묻겠지요.

미사는 매일 봉헌하니까 우리에게 일상적인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도 합니다.

여러분, 미사는 매일 예외적인 것입니다. 날마다 특별한 일입니다. 미사를 매일 봉헌한다고 해서 그 성찬례가 일상적인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그 특별한 것만이 가지는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젊은 여러분, 제 나이까지, 아니 그 너머까지 부디 미사성제의 특별함을 일상으로 여기지 말고 오히려 특별함을 삶 전체에서 계속 찾아내길 바랍니다.”

 

연중 시기는 그리스도 신비 전체를 경축하는 시기입니다. 대림, 성탄, 사순, 부활 시기가 아닌 이 시기를 특별한 것이 없는 아무것도 아닌 날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에는 예수님의 특별한 사건도 있고, 일상적인 모습도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평범한 일상이 이어질 때가 있고, 특별한 사건이 일어날 때가 있듯이 말입니다. 일상적인 일과 예외적인 일에 크고 작음이 없듯이, 우리 신앙 여정의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올 한 해의 연중 시기를 주님의 은총 속에서 잘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Profile
인천교구 사제. 전례학을 전공했고,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살아갑니다. 신자들이 바른 전례에 의식적으로 참여하도록 돕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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