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교양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를 염려하는 이유는 단지 인문학으로 분류되는 여러 학과가 대학 내에서와 취업 현장에서 맞이한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정신의 황폐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용해 보이지만 사실 교양은 인간의 품위와 가치를 근저에서 지탱하는 기반인데, 사람들이 이를 외면하는 현상은 단순히 학문의 위기가 아니라 삶의 위기로 이어집니다. 이는 신앙인에게도 큰 도전입니다. 인간적으로 자신을 성숙시키고 교양을 힘써 도야하려는 노력이 결여될 때, 신앙 역시 성찰력을 잃고, 이기적이거나 맹목적으로 변할 수 있으며, 독선에 기울기 쉽습니다. 현실적 이득과 실제적 쓰임으로만 지식을 평가하거나, 손쉽게 얻는 정보와 감각적 즐거움에만 관심을 갖고, 확증 편향과 선입견을 당연히 여기는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 교양에 대해 진지하게 살펴보고, 교양을 중시한 가톨릭 신학과 사상의 전통을 되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교양은 자주 언급되는 말이지만,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각기 가리키는 내용이 다양하기에 그 개념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양은 일상에서 서로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예의와 상식을 뜻하기도 하고, 시사나 예술에 관한 일정 수준의 지식과 조예를 말하거나, 교육 기관에서 충분히 교육을 받아 양식과 지식을 갖춘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오늘날 ‘교양’에 대해 숙고하고 이를 재조명하기 위해서는 서양 사상과 정신의 역사 안에서 이 개념이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개관하는 ‘교양의 개념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이 교양의 개념사는 그 자체로 흥미롭고 풍요로운 교양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교양의 개념은 그리스어 ‘파이데이아paideia’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는 삶에 필요한 지식과 기예를 전수하고 습득하는 교육,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역량과 인격을 스스로 키우는 도야, 인격적이고 공동체적인 가치와 철학적이고 정신적 통찰의 수준에 이른 앎 등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그리스 상고 시대에서 유래하고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고전 그리스 문화 시대에 정립되어 헬레니즘 시대라고도 불리는 후기 고대에 교양 교육 과정의 정착과 함께 그리스 문화의 중심 이념이 된 ‘파이데이아’는 바람직한 교양 교육을 숙고하는 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절한 출발점이 됩니다. 그리스의 ‘파이데이아’ 개념은 키케로를 비롯한 로마 시대 지식인들에 의해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단어 안에 창조적으로 전수되었습니다.
‘후마니타스’의 정신은 로마 시대의 여러 철학자와 문인들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꽃피웠고, 교육 제도와 ‘오티움otium’이라 불린 자유롭고 문화적인 활동에서 실천되었습니다. 이러한 ‘후머니타스’라는 교육과 지성 활동의 이상은 대학의 ‘인문학’과 ‘교양학부’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도전과 어려움에도, 뜻 있는 이들이 이러한 이상을 오늘날에도 대학이라는 최고 수준의 교육 기관에서 존속시키고 갱신하고자 애쓰는 이유입니다.
후마니타스는 단순히 지식의 수집이나 전통의 보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 인간형을 제시하고 추구하는 인간학적 이상입니다. 서구 정신사가 여러 곡절을 겪었지만, 그래도 후마니타스 개념을 끈질기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온 것은 인간을 기능이나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인간 그 자체에 존엄성을 부여한 위대한 유산입니다.
파이데이아와 후마니타스라는 고대의 유산은 그리스도교 사상가인 교부들에게도 신학과 수덕에 있어 중요한 준거가 되었습니다.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라는 탁월한 예에서 볼 수 있듯, 호교 교부 이래 고대 교회와 교부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정립된 교양과 교육의 개념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지성과 정신의 위대성을 찾았고, 신학 작업을 위한 기초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했습니다.
당연히 교부들이 중심이 된 고대 그리스도교 교회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교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교도’ 철학과 문학이 성서 이해와 교의, 신앙생활과 신앙인의 세계관에 대해 도전이 되거나 위해가 되는 요소를 내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고, 긴 세월에 걸쳐 식별과 교정의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론을 포함한 교의가 여러 공의회를 통해 결정되는 과정이나, 수도원 운동을 중심으로 한 영성적 전통과 지침들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와 로마 문화가 정립한 교양의 전통을 두려움 없이 수용하고, 신학 연구와 영적 수련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분명합니다. 교회가 교양을 도야하고 교육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전통은 중세 내내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리스도교 신학의 최전성기인 11~14세기 중세 스콜라 신학의 시대에는 인문적 교양이 이미 철학과 신학 연구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지성적, 정신적 기예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스콜라 철학의 전성기 초반에 큰 역할을 한 신학자인 생 빅토르의 후고가 저술한 유명한 학문론인 《디다스칼리콘Didaskalikon》은 그 좋은 예입니다. 후고는 로마 시대에 이미 정립된 교양의 내용을 학제에 정착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인문과 교양 교육의 근간이 되는, 삼학Trivium과 사과Quadrivium로 구분되는 일곱 개의 ‘자유기예 학과Artes liberals’를 신학에 뜻을 둔 이들이 입문 과정에서 필수로 익혀야 할 학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유’라는 말이 뜻하듯이 실용성에 국한되지 않는 앎의 가치가 여기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철학만이 아니라 신앙의 학문적 탐구인 신학 역시 이러한 ‘자유’에 의해 형성된 지성이 필요합니다.
서양 문화사 안에서 ‘파이데이아’와 ‘후마니타스’라는 교양의 이념은 중세 후기라는 과도기를 보내고,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기에 ‘인문주의’가 깨어나면서 재발견되고 새로운 차원으로 부흥합니다. 그 후 프랑스와 영국의 계몽주의 운동, 무엇보다 독일에서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문예 사조를 거치면서 정립된 ‘빌둥Bildung’ 개념으로 인문적이고 세속적 차원의 교양 개념은 그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교육을 뜻하는 단어인 독일어 ‘빌둥’은 단순히 직업 교육이나 기능적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성숙해 가고 고유한 개성과 정신적 위대함을 내면화하고 표현하는 도야의 여정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이 긴 세월을 거쳐 형성한 교양 개념에 내포된 심오한 의미를 잘 담고 있습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작가이자 사상가로서 이러한 이상을 자신의 작품에서 잘 표현하였으며, 그의 인물과 생애 자체가 교양의 의미를 잘 보여 줍니다. 괴테의 중기 대표작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독일어권 문학에서 중요한 장르가 된 ‘교양소설 Bildungsroman’의 원형이라 할 만 합니다. 괴테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양소설은 정신적, 인격적 ‘자기 형성’이 교양의 본질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줍니다.
괴테 이외에도 쉴러, 슐레겔, 슐라이어마허, 헤르더 등의 뛰어난 독일어권 사상가들은 ‘교양’을 한 인간과 공동체에 있어 정신적 성숙의 척도이자 지향점으로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교양’의 이상은 정신적 가치가 위험에 처해 있고 인간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깊이 있는 인문 정신을 지키고 활성화하는 것이 시급한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정신적 유산이자 원천으로 여겨집니다.
르네상스, 낭만주의, 고전주의를 통해 문학과 사상에서 꽃핀 인문주의와 교양, 계몽의 사상과 이념은 근대 이후 그리스도교 문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교회는 인문주의를 경계하기도 하고 계몽주의의 공격에 고투해야 했지만, 비판적 대화의 자세를 잃지 않았습니다. 또한 인문 교양을 교회의 활동과 학문의 쇄신에 있어 건강한 자극이자 동력으로 삼을 줄 알았습니다.
근대 이후 교양과 인문주의에 입각한 교회에 대한 비판들 역시, 비록 범신론이나 무신론 혹은 세속화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는 고대와 중세를 거쳐 형성된 교회의 정신적이고 학적 전통이 여러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학문과 예술은 그 자체로 서양 문화 안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만큼이나 중요한 교양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인문 교양은 고대의 정신적 유산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또한 중세 이후 모든 인문적 교양은 이미 그리스도교 문화를 그 본질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세속적’ 교양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영향을 주고받아 왔습니다. 세속화를 넘어 신앙에 대한 전반적인 무관심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에 ‘새로운 복음화’와 ‘시노달리타스’를 말하는 교회에는 교양과 인문주의에 기반하여 세상과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정신적 위기에 처한 시대가 갱신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교양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인문적 교양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비판적으로 식별하고 대화하는 모범을 근대 이후 그리스도교 사상사 안의 여러 뛰어난 가톨릭 지성인들이 보여 줬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되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시복하였으며, 마침내 프란치스코 교황이 근년에 시성한 위대한 저술가이자 설교가이며 고대 그리스 로마의 교양과 교부들에 해박했던 학자였던 성 존 헨리 뉴먼 추기경(1801~1890년)이나 근대 사상에 대해 비판과 함께 서구 정신사와 교양의 영적 차원을 조명한 로마노 과르디니 (1885~1968년) 신부를 대표적인 인물로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양의 토대가 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고전들에 관심을 갖는 것은 교양인으로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유익합니다. 지금, 여기를 위한 ‘그리스도교 교양’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을 통해 교양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용’해 보이지만, 우리의 존재를 고양시키고 인격을 도야하도록 이끄며 고상한 정신적 즐거움에 맛 들이게 하는 체험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빌리자면, 이는 본연의 차원에서 ‘여가’를 향유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 함께 읽어 볼 책들
베르너 예거, 《파이데이아》 I, 김남우 옮김, 아카넷, 2019
클라우스 헬트, 《지중해 철학기행》, 이강서 옮김, 효형출판, 2007
이광주, 《교양의 탄생》, 한길사, 2009
요셉 피퍼, 《여가와 경신》, 가톨릭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