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의 유명한 ‘어릿광대와 불타는 마을’에 대한 비유가 생각난다. 덴마크를 순회하던 어느 서커스단에 큰불이 발생했다. 서커스 단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이웃 마을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달려갔다. 그 가운데 피에로 분장을 하고 있던 광대 역시 가까운 마을을 향해 열심히 달렸다. 때가 추수기였기에 불씨가 옮아 번지면 그 마을도 위험에 빠질 상황이었다. 그래서 광대는 절실히 진화 작업을 도와 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광대의 외침을 구경꾼을 모으기 위한 행동으로 여겼고, 그의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했다. 자신을 보고 웃는 사람들을 보며 광대는 더욱 간절히 진짜 불이 났고, 마을에도 번질지 모르니 도와 달라고 외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크게 웃기만 했다. 결국 불길은 그 마을까지 번져 어찌해 보지도 못한 채 마을 전체가 불타고 말았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당신의 저서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서 하비 콕스가 인용했던, 키르케고르가 제시한 위의 비유를 빗대어 그리스도교 신학이 마주한 심각한 위기 상황을 무겁게 경고하셨다. 오늘날 교회는 내적으로 교회가 지키고 선포해야 할 신앙 유산과 교회의 영적 자산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현대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와 표현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외적으로는 종교적 무관심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서 드러나듯 ‘종교 혐오’에까지 이른 세속 사회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WYD를 준비하며
‘세계청년대회’라는 엄청난 규모의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무엇이 우리 신앙의 본질인가?’, ‘지금 하는 일을 단순한 메가 이벤트로 여기지 않고, 하느님께서 교회를 통해 주시려는 열매를 제대로 맺기 위해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지만 이러한 질문을 가슴에 품고 정부와 지자체 관계자들, 동료 사제들, 직원들과 청년들을 만날 때면, 자주 나 자신을 세계청년대회의 가치와 정신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피에로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또 어떨 때는 누군가의 무겁고도 날카로운 외침을 외면하는 방관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전 대회의 수많은 사진, 영상 그리고 결과 보고서를 보면, 분명 청년들 안에서 청년들과 함께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준비 과정에서 일에 치여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내는 내 모습을 돌아보다 보면, 과연 나는 이 시대 청년들의 아픔과 두려움, 위기를 진정으로 함께 아파하며 보듬어 주고 함께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깊이 반성하게 된다.
청년을 위한 WYD
이런 속내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면, 작은 노력들이 하나씩 모여 세계청년대회를 통해 분명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 용기와 위로를 건네준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피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꿈틀거리며 나를 괴롭힌다. 정부 관계자들과 민간 업체를 만날 때 대회를 통해 얻게 될 경제적 효과에만 집중해 설명하려는 모습, 국빈으로 방문하는 교황님을 잘 맞이해서 국가 이미지를 향상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모습 속에서 정작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늘 뒤로 밀려나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세계청년대회를 위해 정치적 상황과 역사적·문화적 가치, 나아가 경제적 효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이 동반되어야 국민들이 불편을 참아 감내하면서도 이 대회에 박수를 보내고 전 세계 청년들을 기꺼이 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이라는 이름을 앞에 내세우면서도, 정말 청년들을 위하기보다는 다른 가치들만을 추구하려는 유혹이 내 안에서 피어오른다.
다시, 본질로 돌아가기
왜 그런 것일까. 아마도 내가 받은 신앙, 교회가 지키고 선포하려는 신앙 안에 나 자신이 먼저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대회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세계청년대회를 단순히 행사로만 생각할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 때문에, 하느님 안에서 더 많은 지혜를 찾지 않고, 세상의 논리와 방식에 의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WYD를 앞두고 정부 관계자들뿐 아니라 선의를 가지고 이 대회에 함께하려는 민간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곤 한다. 그 가운데에는 가톨릭의 영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청년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한층 더 힘을 얻게 되기를 바라는 분들이 있다. 어떤 분들은 너무 경제적 가치에 매몰되지 말고, 교회가 추구하는 본질과 대회가 지향하는 정신을 잘 지키고 전해 달라고 말씀하신다.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그들의 논리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마음을 얻고자 애썼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하느님의 마음과 청년들의 마음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와 다른 이들이 ‘동상이몽’을 꾸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불안과 불신이 나 자신을 둘로 나누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피에로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하다. 불이 났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그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다만, 나의 진실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아픔과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 또 하나의 정신없는 하루를 마무리한 뒤, 고요 속에서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는 선물이다.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순례 (2025.12. 가회동 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