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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지난 수만 년 동안 놀라운 발명과 발견을 통해 세상을 바꿔 왔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힘과 기술이 반드시 ‘지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AI와 플라스틱 같은 문명의 산물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진정 지혜로운 인간일까? |
지혜로운 인간?
현대의 인간을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즉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부른다. 지난 십만 년 동안 인간은 발견과 발명, 정복을 통해 실로 막대한 힘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 막대한 힘을 과연 ‘지혜’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인간의 힘에는 지혜로운 측면이 있다. 이를 통해 백신을 개발했고, 획기적인 식량 재배 시스템을 갖췄으며 세상 끝에서 끝까지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창의력이 넘치는 예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소식들, 줄어드는 기아와 극복되는 질병, 이 모든 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이뤄 낸 업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질문해 본다. 이 막대한 힘을 과연 ‘지혜’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인간 역사 안에서 가장 뛰어난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플라스틱을 떠올려 본다.
플라스틱의 탄생과 산업적 확장
플라스틱은 1860년대, 당구공의 재료로 사용되던 비싸고 귀한 아프리카 코끼리 상아를 대체할 물질을 만들려는 노력에서 탄생했다. 즉 본래는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에서 개발된 것이다. 인간은 코끼리의 상아를 대체하기 위해 녹나무에서 고형분을 얻어 셀룰로이드(celluloid)를 만들었고 이것이 곧 플라스틱의 시작이다.
이를 계기로 1880년대에는 영화 산업에서 보존이 어렵고 훼손되기 쉬운 종이 필름을 대체하는 셀룰로이드 롤필름이 개발되었고, 1900년대에는 최초의 합성수지인 베이클라이트(Bakelite)가 개발되었다. 이후 폴리에틸렌(polyethylene) 비닐이 대량 생산되면서 운송과 포장 비용도 크게 줄어들었다. 당시는 포장과 운반에 종이가방이나 종이 상자 등이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벌목으로 인한 환경 파괴를 걱정하던 시기였다.
폴리에틸렌 비닐이 개발되자 세상은 환호했다. 이제 나무를 더 이상 베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획기적인 발명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후 플라스틱은 더욱 다양하게 발전했다. 1940년대에는 내구성을 갖춘 가정용 플라스틱 용기가 개발되었다. 이는 이후 세계 산업의 발전에 발맞춰 다양한 환경에서 활용되는 소재가 되었다.
1960년대에는 우주복과 우주선의 부품에 사용되며 우주 산업까지 활용 범위를 넓혔다. 의료 분야에서도 플라스틱은 일회용 수술 도구나 일회용 마스크, 인체의 인공 기관을 제작하는 데까지 사용되며 유용하고 보편적인 소재로 인정받게 되었다.
플라스틱 딜레마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자. 코끼리의 상아는 계속해서 소모되었을 것이고 쇼핑백과 용기를 만들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양의 나무가 벌목되었을 것이다. 이는 인간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큰 환경적 소모였을 것이다. 결국 플라스틱은 본래 인간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대체제였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알고 있다. 플라스틱으로 인해 또 다른 환경오염과 기상 변화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그리고 결국 인간 생태계가 존립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기술 자체가 아무리 유용하다 할지라도, 또 개발 의도가 인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이것으로 지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지혜를 완성하는 힘은 기술의 힘과 그 부작용을 어떻게 예측하고 예방하며 보완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이것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기술은 자기 파괴적인 힘으로 돌아올 것이며, 인간 존재 자체를 실패로 이끌 것이다.
AI 기술과 인간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인간 문명이 가져온 좋은 것들을 생각해 보자. 극복된 질병, 예측 가능한 자연재해와 이를 기술로 예방한 사례, 줄어드는 기아 등이 있을 것이다. 이토록 유용하고 놀라운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지혜롭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문명으로 인해 현재 인류가 그야말로 실존적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생태적 붕괴의 위험, 쾌락을 우선시하는 사회, 늘어가는 빈부격차,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는 전쟁 기술, 낙태와 안락사, 그리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치장된 이기주의.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자신이 가진 힘을 오용한 탓이다. 정녕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 힘을 자기 파괴가 아닌 자기 존속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점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지혜롭지 않다. 그리고 현재 이 기술의 중심에는 AI가 있다.
AI 기술의 일상적 활용
AI는 분명 유용한 기술이다. 현대인의 삶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의 일상 속에서 활용되어 왔다. 스팸 메일의 분류, 음식을 구분해 자동 조리하는 전자레인지, 빨래의 무게와 수위를 파악해 작동하는 세탁기, 실내 온도 변화를 감지해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하는 에어컨, 하다못해 전통적인 알람 시계조차 인간의 기억과 주의 기능을 일정 부분 대신 수행한다는 점에서 규칙 기반 AI의 기초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여러 가지 편의를 누리고, 적은 에너지로 목표를 달성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복합적이고 적극적인 AI 기술이 인간에게 유용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 기술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AI 윤리와 책임
적은 에너지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은 인간 창의성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AI에 윤리가 필요한 것일까? 왜 세상은 AI에 윤리를 결합시키려 하는가? 이는 기계나 기술에 인간의 판단을 위임했을 때 여러 부작용이 드러나고, 어느 순간 인간의 존엄성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전하는 AI 기술은 이제 개발자의 의도에서 벗어나 사실상 통제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으며, 올바르지 않은 정보, 창의력 위임으로 인간의 자유마저 빼앗기는 실정이다.
AI 시대와 인간의 지혜
이에 교회는 AI 기술의 유용성을 긍정하는 한편 가장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이미 2020년 <로마의 호소Rome Call for AI Ethics>를 발표하여 AI가 인간을 위한 기술이 되도록 그 방향을 제시했으며, 이후 기술의 발전, 특별히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 기술을 고려하여 2025년 <옛것과 새것Antiqua et Nova>을 발표했다.
과연 지혜란 무엇일까? 지혜는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지혜란,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기술의 한계에 대해서 말한다.
“새로운 기술은 인간을 새롭게 만들 수는 있지만 인간의 존엄을 새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욱 지혜로울 수 있을까? 이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 AI를 다루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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