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영성과 신심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표현하는 절차

2025.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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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21,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선종하시며 교회는 큰 슬픔 속에 있습니다. 교황청은 지난해 개정된 《교황 장례 예식서》에 따라 교황의 장례 절차를 진행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표현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신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니라,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묻히는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➊ 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니라,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묻힐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신은 장례 미사 후,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전으로 옮겨지고 로마 백성의 구원자(la Salus Populi Romani)” 성화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준비된 곳에 안장될 것이다. 이는 지상에서 교황이 어머니께 드리는 마지막 인사이다.

 

교황이 처음부터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묻히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2022513, 파올리나 경당 개보수 문제 때문에 성전을 방문한 교황에게 성모 대성전 승계권 대사제 마크리카스 추기경은 해당 성전에 묻히시고 싶으시냐고 질문했으나 그 때 교황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인 520일 교황은 마크리카스 추기경을 불러 성모님이 거기에 무덤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며 자신이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성모 마리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는데 무덤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나는 기쁘다. 성모님께서 나를 잊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 내 무덤을 위한 장소를 찾아라. 왜냐하면 나는 이 성당에 묻히고 싶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백성의 구원자(la Salus Populi Romani)를 재위 기간 중에 126회 방문했다. 그만큼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남달랐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교황이 되기 전에도 로마에 올 때마다 주일 아침이면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가서 기도하곤 하였다. 이런 교황의 남다른 성모님 신심은 2023년 로마 백성의 구원자 성모님 앞에 금장미(Rosa d’oro)를 봉헌하면서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제멜리 병원에서 퇴원하여 산타 마르타로 가기 전에도 성모님 앞에서 기도하고 간 일이 있다.

 

많은 사람은 교황이 다른 교황들처럼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묻히지 않고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안장되는 것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에 이미 7명의 교황이 모셔져 있다. 그들 가운데 최초의 프란치스코회 출신 니콜로 4, 최초의 도미니코회 출신 비오 5세가 있다. 이제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 프란치스코가 있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에 이곳에 안장된 마지막 교황은 1669년 클레멘스 9세 교황이다.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안장되는 최초의 교황 호르헤 베르골리오, 프란치스코 교황과 성모 마리아 대성전과의 관계는 또 다른 이유에서 각별하다. 1538년 성탄날 밤에 예수회 창립자인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이 이 성당에서 사제가 된 후 첫 미사를 봉헌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아기 예수님을 모셨던 유물 성 요람(la reliquia della Sacra Culla)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냐시오 성인은 첫 미사를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에서 거행하기를 원했으나 거기에 갈 수 없었던 이유로 서품된 후 일 년 뒤인 1538년 성탄 밤에 이 곳, 적어도 예수님을 모셨던 유물 성 요람(la reliquia della Sacra Culla)이 보관된 곳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자신의 수도회의 회칙을 승인받기 위하여 기다리던 산 조반니 라테라노 대성전과 성모 마리아 대성전이 언덕 하나를 놓고 연결되어 있다는데 찾아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란 교황 호칭을 선택한 것은 교황 자신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청빈의 삶을 본받고자 하는 지향을 드러낸다. 전통적으로 성체 성혈 대축일 행렬은 산 조반니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성모 마리아 대성전으로 가는 길에서 진행되곤 하는데 이런 영적 연결점은 교황이 자신의 무덤을 이곳으로 정하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은 파올리나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의 측랑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곳은 성 프란치스코 제단 바로 옆이란 점도 고려할 만한 부분이다.

 

 


 

➋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426일 오전 10, 성 베드로 대성전 앞마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가 거행되었다. 이 장례 예식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 장례미사는 교황이 원했던 간소화된 형태로 2024년 개정된 《교황 장례 예식서》(Ordo Exequiarum Romani Pontificis)에 따라 라틴어로 집전되며 추기경단 단장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주례했다.

 

신자들이 바치는 6가지 기도는 프랑스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폴란드어, 독일어, 중국어로 낭독되며, 영성체 후에는 고인의 영혼을 성인들의 영광스러운 친교로 맞이해 달라는 하느님께 드리는 마지막 청원 기도(Última commendatio)가 이어진다. 이어 장례 예식의 작별 예식인 고별식이 진행되며 이는 장례 예식 중 마지막 인사로 로마 교회의 의탁 기도에 이어 로마교구 총대리 발다사레 레이나 추기경의 기도가 이어지며, 동방 교회의 의탁 기도와 안티오키아 멜키트-그리스 동방 가톨릭 유세프 압시 총대주교의 기도가 그리스어로 이어진다. 장례 예식 말미에 레 추기경은 교황의 관에 성수를 뿌리고 향을 피운다. 이어 교황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운구되고 그곳에서 운구차에 실려 장례 행렬과 함께 안장을 위해 성모 대성전으로 이동한다.

 

성모 대성전 측면에 위치한 로마 백성의 구원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에 위치한 무덤에 안장되기에 앞서 4개의 시편이 낭송되며 5번의 청원 기도가 이어진다. 이어 '주님의 기도'(Padre Nostro)가 바쳐진다. 마지막 기도가 끝난 후, 교황의 유해가 담긴 관은 무덤에 안치되고 레지나 첼리(부활 삼종 기도. 성모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성수가 뿌려진다. 이어 하관 예식 마지막 절차로, 성모 대성전 의전사제단의 공증인이 안장을 증명하는 공증서를 작성하여 참석자들에게 낭독한다. 이 문서에는 거룩한 로마교회의 궁무처장 케빈 조셉 패럴 추기경, 교황궁내원 의전 담당 레오나르도 사피엔자 몬시뇰, 교황전례원장 디에고 조반니 라벨리 대주교,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증인이 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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