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의 중반을 넘어가면 전례 주년의 정점이 다가옵니다. 바로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입니다. 특히 주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성삼일은 “전례 주년 전체의 정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전례 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18항). 이 시간 동안 우리는 평소와 다르게 전례 안에서 특별한 예식들을 거행하고 더욱 풍성한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된 수난과 죽음, 무덤에 묻히심, 그리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시기까지의 전체적인 여정을 기념하고 묵상하면서, 우리 또한 주님과 함께 그 여정에 참여하도록 초대받는 것입니다.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 동안에 거행되는 여러 예식은 우리의 관심을 전례에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참여로 이끌지만, 사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듯, 몇 가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왜 저렇게 하지?”, “저건 어떤 의미가 있지?”, “저렇게 하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들을 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이 가졌고, 이를 해소하지 못한 채 부활 시기를 맞이하는, 다소 아쉬운 모습들을 마주하곤 했습니다. 전부를 나눠 드릴 수는 없겠지만,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두 번에 걸쳐 물음과 답의 형식으로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Q.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받아 가져 온 성지 가지는 꼭 십자가에 꽂아야 하나요?
A. 나뭇가지를 보관하는 방식에 관련된 구체적인 지침은 따로 없습니다. 다만 1988년 당시 교황청 경신성성의 <파스카 축제 준비와 거행에 관한 회람 (1988,1.16)> 29항에 나뭇가지의 축복과 보관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간략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나 다른 나뭇가지의 축복은 그것을 들고 행렬하기 위해서 한다.
집에 보관해 둔 성지 가지는 신자들의 마음 안에
이 행렬과 함께 거행된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기시켜 준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나뭇가지를 축복하는 이유는 본디 보관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행렬 예식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각 집에 걸린 십자가에 꽂아 보관하든 아니면 집안의 다른 적당한 장소에 보관하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집에 보관하는 성지 가지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행렬에서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기시켜 주므로, 각 가정집에서 잘 보이는 자리에 보관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십자고상이 걸린 곳은 이에 부합하는 가장 좋은 자리이므로 관습적으로 이곳에 보관해 온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Q. 성주간 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에서 병자 성유와 예비 신자 성유를 축복하고 축성 성유를 축성하는 때가 다르던데 왜 그런 것일까요?
A. 전례서가 제시하는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식은 ‘전통적인 관습에 따른’ 것입니다. 병자 성유를 감사 기도를 마치기 바로 전에 축복하고, 예비 신자 성유 축복과 축성 성유 축성은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친 다음에 하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 방식은 사목적 편의에 따라 세 성유를 모두 말씀 전례 후에, 한꺼번에 축복하고 축성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많은 교구에서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방식은 7세기경에도 이루어지던 로마 교회의 매우 오래된 관습입니다. 서로 시점이 다른 것을 지금에 와서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각 성유를 축복하고 축성할 때 바치는 기도문을 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병자 성유를 축복할 때는 “이 기름에 하늘로부터 보호자 성령을 보내 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두 번의 성령 청원 기도를 바치는 로마 전례의 감사 기도와 그 구조가 어울리기에 감사 기도가 끝나기 전에 병자 성유를 축복하면서 다시 한번 성령께서 내려오시기를 청합니다. 예비 신자 성유를 축복하고 축성 성유를 축성하는 기도문엔 둘 다 “힘과 능력(fortitudo, virtus, potentia)”이란 말로 축복과 축성을 청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방금 영성체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 모시고 힘을 얻은 하느님 백성이 세례 성사를 받을 예비 신자들과 축성 성유로 도유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그에 해당하는 힘과 능력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회는 영성체 후에 예비 신자 성유를 축복하고 축성 성유를 축성하는 것입니다.
Q. 파스카 성삼일은 목, 금, 토요일인가요? 금, 토, 일요일인가요?
A.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금, 토, 일요일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금요일이 목요일 저녁부터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전날 일몰 후부터 계산하던 유다인들과 초기 교회의 관습에 따라 오늘날 교회도 주일과 대축일을 전날 저녁부터 시작합니다. 성무일도를 바치시는 분들께서는 ‘주일 제1 저녁 기도’를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파스카 성삼일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 무덤에 묻히신 것과 그 무덤을 비우시며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에 성금요일(수난과 죽음), 성토요일(무덤), 부활 주일(부활)이 본연의 파스카 성삼일입니다. 거기에 앞서 말씀드린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저녁에 (마치 전야제처럼) 미사를 봉헌하며 성체성사가 제정된 것을 기념하면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례 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의 19항도 이를 명확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성삼일은
주님 만찬 저녁 미사부터 시작하여
파스카 성야에 절정을 이루며
부활 주일의 저녁 기도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