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전례를 라틴어로 거행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제시되는 복음 말씀이 있습니다.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그 명패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히브리 말, 라틴 말, 그리스 말로 쓰여 있었다.”(요한19,19-20)
곧, 이 세 가지 언어가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 명패를 쓰는 데 사용되었기에 주님의 거룩한 희생 제사의 언어라고 여겨집니다. 왜 하필 이 언어들이었을까요? 이는 빌라도의 교활한 속셈이 반영된 선택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소식’을 도성에까지 빨리 전파하고자, 우선 '많은 유다인이 그 명패를 읽을 수 있도록' 여러 계층의 언어를 동시에 사용한 것입니다. 당시 대중 언어는 히브리어였고, 라틴어는 공무나 행정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상거래 현장에서는 그리스어를 주로 사용했다고 하니, 이 언어들이야말로 어떤 소식을 전파하기에 참으로 유용한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무엇을 그토록 널리 알리고자 했을까요? 바로 로마 제국 통치에 맞서 “유다인들의 왕”으로 행세하는 이는 사형에 처하겠다는 ‘경고’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빌라도의 불순한 의도로 사용된 이 언어들을 통해 진리의 말씀, 곧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으로만 알았던 예수가 부활했다는 기쁜 소식’이 널리 퍼집니다. 그분이야말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외아들 주님이시며 만왕의 왕 그리스도이심을 알리는 복음이 이제는 수많은 언어를 통해 온 세계로 빠르게 달려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사람의 말을 복음 전파의 ‘수단’으로 삼으셨습니다.
결국 언어는(라틴어이든 모국어이든) 복음의 진리와 전례 거행의 신비를 표현하는 수단일 뿐 진리 혹은 신비 자체는 아닙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명확히 합니다.
“거룩한 전례에서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결국 전례 거행이 담고 있는 신비에 대한 교리를 더 분명하게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오로 6세 성인 교황은 모국어로 번역된 《로마 미사 경본》을 '모든 이의 상호 일치를 증언하고 확인하는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이 경본을 통하여 모든 이가 그 수많은 언어로 성령 안에서 대사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아버지께 그 무엇보다도 향기로운 하나의 동일한 기도를 바치기를 바란다.”
여기서 전례 언어의 핵심이 드러납니다. 어떤 나라 말로 거행해도 아버지께 드리는 “동일한 기도”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번역은 반역”이라는 유명한 문구가 암시하듯, 한글로 번역된 전례서들도 라틴어 기도문의 의미를 완벽히 담아내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한글 《로마 미사 경본》으로 거행하는 미사는 라틴 예법의 그것과 동일한 경배일까요?
답은 ‘그렇다’ 입니다. 전례 거행에서의 기도문들은 그 문구에만 머물지 않고, 사제와 신자들의 동작 등과 결합하여 말마디를 뛰어넘는 ‘고유한 경배 언어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고유한 경배 언어를 “상징적 언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인은 이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고 진단합니다. 사실, 이 언어는 외국어 학원에서 혹은 반복 연습으로 습득할 수는 없고, 오직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경배드리는 가운데 알아듣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경배의 상징 언어는 하느님께서 몸소 선택한 것이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교황은 강조합니다. 이제부터 전례 거행 속의 상징 언어들을 성령께서 어떻게 표현하고 이해하도록 인도하시는지 교황의 말씀을 통해 알아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