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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특집 ‘기다림’
기다림이란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습니다.
신촌 레코드 가게 앞에서 괜히 거울 꺼내 들고 머리카락 각도까지 확인하던 그 시절 설렘💄, 굳지 않은 시멘트에 발자국 찍고 싶어 근질근질한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버텨야만 했던 인내의 시간⏱, 손님 온다고 청소기–걸레–방향제 삼단 콤보로 집안 전체를 뒤집어 놓는 준비의 전투 모드💨.
이렇게 기다림은 가만히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꽤 바쁜 시간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라디오가 끝났다고 잠시 쉬려 했더니 갑자기 연극 배우 데뷔🎭 같은 황당하고 반가운 일이 불쑥 찾아오기도 합니다. (네, 실화입니다😂)
이번 글은 설렘 + 인내 + 준비 + 뜻밖의 기회로 이루어진 기다림의 여러 얼굴을 가볍게 들여다보는 이야기입니다. 자, 시작해 볼까요? 🌈 |
기다림의 다른 이름 : 설렘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잔망스럽지만, 현자(賢者)스러운 어느 ‘여우’의 명대사처럼 기다림은 설렘을 동반할 때가 많다.
2000년대 초, 나에게 기다림의 장소라 한다면 신촌의 어느 레코드 가게 앞, 종로의 어느 극장 앞, 강남의 어느 제과점 앞 정도로 좁힐 수 있다. 지금처럼 카페가 많지도 않았고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발달한 것도 아니어서 상징적인 장소 앞에서 만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니 이 만남의 장소는 항상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고 각양각색의 기다림의 유형을 볼 수 있었다.
기다림의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역시 ‘설렘’이다. 다양한 설렘이 모여서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 그 빛은 기다림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고 커지다 상대가 나타나는 순간, 절정에 이른다. 저 멀리 상대를 발견하고 손을 번쩍 들면서 환하게 웃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상대가 가까이 다가와 톡! 하고 어깨를 건드렸을 때! 그 모든 순간 각자의 얼굴에서 퍼지는 미소는 기다림이 팡팡 터져 눈부시게 했다. 그 빛을 보는 게 좋아서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않으면서 괜스레 그 주변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기다림의 다른 이름 : 인내
얼마 전, 명동성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길 한복판에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양생 중입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양생이 무슨 뜻이더라?’ 분명히 예전에도 찾아본 단어였던 거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충 무슨 작업 중이라는 말 같긴 한데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사전을 검색했다(작가라고 모든 단어의 뜻을 다 아는 건 아니다).
양생(養生) : 콘크리트가 완전히 굳을 때까지 적당한 수분을 유지하고 충격을 받거나 얼지 아니하도록 보호하는 일.
뜻을 검색하니 자연스럽게 ‘발자국’이 생각났다. 한창 여기저기 새로운 건물을 짓고 도로를 새로 정비하던 시절, 시멘트 작업을 하는 곳이 많았다. 안내문을 안 붙였던 건지, 아니면 붙였는데도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갈 때는 매끈했던 시멘트 표면이 학교 끝나고 돌아올 때는 여기저기 온갖 발자국이 찍혀 있어 울퉁불퉁했다. 강아지 발자국은 물론이고 작은 운동화 발자국부터 커다란 구두 발자국까지 골고루 찍혀 있었는데 등하굣길에 늘 그 길을 지나야 했던 나는 그 발자국들을 꽤 오랫동안 마주했다. 그리고 알았다. 시멘트가 완전히 굳기 전에 찍어 놓은 발자국은 그 길을 갈아엎지 않는 한, 계속해서 남아 있다는 것을.
양생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면 발자국만 남는 게 아니라 내구성도 흔들린다. 채, 양생 되지도 않았는데 무리해서 다음 진도를 나가면 결국 탈이 난다는 건, 특별한 사례를 들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기다림은 참 쉽지 않다. 시멘트가 마르기 전에 말랐나 안 말랐나 눌러보고 싶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이다.
세계에서도 인정한 빨리빨리 문화인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성격 급하기로 치면 나도 만만치 않다. 평소에는 쌔근쌔근 잘 자고 있던 급한 성격도 급할 때는 스프링 튀어나오듯 튀어나오는 법이다. 예를 들면, 빨리 작업해서 원고를 넘겨야 하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자동 업데이트를 한다든지, 버퍼링이 걸린다든지 하면, 승질(이건 ‘성질’이라고 할 수 없다)이 머리 꼭대기로 솟구쳐 버린다. 하지만 경험한 사람은 알 것이다. 내가 아무리 급해도 컴퓨터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계속해서 새로고침을 누르면 오히려 컴퓨터는 그야말로 ‘뻑’이 나서 더 많은 시간을 기다리게 한다는 걸 말이다. 그저 기다려야 한다. 이 아이가 다음 단계를 진행할 때까지.
기다림의 다른 이름 : 준비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외모에서 풍기는 ‘정겨움?’의 탓인지 주변에서는 나를 서울 출신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30대 때까지만 해도 그 점이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8할이 어린 시절의 기억 덕분이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따지자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기억의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내 마음을 키운 시간의 대부분은 서울이 아니라 강원도 동해이다. 명절 때나 방학 때, 굽이굽이 멀미 나도록 대관령 고개를 넘어 찾아가곤 했던 엄마의 고향은 나에게 참 많은 것을 새겨 주었다.
그중 하나의 기억을 꺼내자면 5살쯤이었나?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엄마에게 육아로부터의 해방을 선포하신 것 같다. 엄마는 모처럼 만난 이모들과 자매들만의 시간을 보냈고 나는 동생과 함께 할아버지 댁에 있었다. 해가 지고 깜깜해졌는데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엄마가 오지 않음에 불안했던 나의 마음을 읽은 건지 할머니는 엄마를 마중 나가자고 했다. 나는 할머니 등에 업혀 언제 올지 모를 엄마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낮게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었고 밤하늘에 촘촘히 빛나는 별을 보았다. 서울에서는 맡을 수 없는 산 공기를 마셨고 깜깜했지만 무섭지 않은 평온함을 느꼈다. 엄마는 당연히 올 거라는 믿음과 지금, 나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가 있다는 든든함이 나의 기다림을 준비시켜 주었다.
가끔 손님을 초대할 때가 있다. 또 가끔은 손님이 쳐들어 올 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손님이 오면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예정된 손님이라면 몇 주 전부터 메뉴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분식 그도 아니면 동남아 쪽인지 고민이 많아진다. 술을 할 줄 아는 손님이라면 메뉴가 주종(酒種)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에 주종부터 정한다. 근데 주종도 그날의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결국에는 술이고 음식이고 다양하게 준비하게 된다. 그야말로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해 봤어.’이다. 이럴 경우, 장은 한 번에 보기가 어렵다. 마트에서 볼 것과 배달시킬 것과 시장에서 살 것이 각각이다. 시간도 한 번에 내기가 어려우니 며칠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준비해 둔다.
일단, 먹거리가 마련되면 이제 집 단장을 하기 시작한다. 기본이 청소다. 먼지를 털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면서 청소를 하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린다. 손님 중에 아이가 있을 때는 더 신경 써야 한다. 아이의 눈높이, 아이의 손에 닿을 것 같은 곳은 더 깨끗이 하고 위험할 것 같은 것은 미리미리 치워 놓는다. 손님이 올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화장실이다. 아무래도 다른 곳은 그냥 눈으로 보고 구경하는 것에 그칠 경우가 많은데 화장실은 사용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더 열심히 청소하고 향기까지 신경 써 준다. 여기에 손님이 자고 갈 경우는 침구까지 신경 써야 한다. 덥지는 않은지, 춥지는 않은지, 침구가 부족하지 않은지, 깔 것과 덮을 것과 베개와 방 안의 온도와 습도까지. 정말이지 분주하기 이를 데 없다. 기다림의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 버린다. 그렇게 준비한 것을 손님이 기쁘게 받아 준다면 그만큼 나의 준비도 의미를 찾게 되는 건 당연하다.
기다림의 대림
얼마 전, 4년 동안 함께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마지막이 있을 줄 몰랐던 바는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마무리였다. 영원할 줄 알고 준비했던 오프닝 멘트 중에 한 달 치를 고르고 골라 마무리 한 달 원고를 썼다. 마지막 날에는 그동안 함께했던 프로그램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전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냥 조용히 사라지기로 했다. 유난스럽지 않게 평소처럼! 마치 내일 또 올 것처럼!
그렇게 나는 다음 방송 프로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게 찾아온 것은 연극이었다. 그것도 배우로서 말이다. 이 말을 할 때마다 부끄럽고 신기해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배우라니! 60대가 되면, 대학로에 작은 소극장을 하나 사서 내가 쓴 극을 올리고 그 극에 작은 단역을 하나 맡아 공연하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배우의 기회가 올 줄이야!
아기 예수님이 오시는 12월 25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의 파밀리아 채플에서 하게 되는 이 공연의 제목은 <친구가 되어 줄래요?>다. 이태석 요한 신부님의 생애를 다룬 작품으로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지원을 받아 서울가톨릭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정기 공연이다. 몇 편의 뮤지컬과 연극을 써 보았지만, '내가 인물에 대해 이 정도로 고민했었나? 한 장면을 쓸 때마다 이 장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토록 생각했었나?' 하며 작가로서 부끄럽고 고마울 정도로 연출과 배우가 온 마음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받는 요즘이다. 연습할 때마다 인물이 살아나고 장면에 의미가 담기는 모습을 보고 배우면서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또 늘지 않는 나의 연기에 대한 인내의 마음으로, 그렇지만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든든함으로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올해 나의 대림은 이렇게 뜻밖의 기다림으로 채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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