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특집③ 그래도 인생은 계속됩니다

가톨릭 예술

월간 특집③ 그래도 인생은 계속됩니다

세 권의 책, 하나의 질문

2026.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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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고, 사람은 결국 늙고 언젠가는 죽습니다. 꽤 우울한 이야기 같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의 글은 삶을 더 오래 바라보도록 합니다.

 

👣 패배를 알면서도 끝까지 밀고 가는 사람들, 노년에도 다시 자신을 찾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죽음 앞에서야 삶의 진실을 마주하는 사람들.

 

💭 오늘 소개하는 세 권의 책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에 닿습니다. “우리는 왜 끝까지 살아가려 할까요?”

 


 

📖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시작하기 전에 패배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 용기란다.”

 

이 책은 대공황이 휩쓸던 1930년대, 미 남부 앨라배마에 사는 어린 백인 소녀가 주인공이자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마을에서는 부유한 백인, 빈곤한 백인, 흑인들이 편을 갈라 대립하고 반목한다. 젊은 흑인이 백인 처녀를 강간했다는 사건이 터지고, 소녀의 아버지인 변호사가 재판에 나서 터무니없는 누명임을 입증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배심원단의 유죄 결정을 막지 못한다. 그리고 변호사 가족들은 온갖 놀림과 비난, 나아가 위협에 시달리게 된다.

 

어째서 흑인을 변호하느냐고 묻는 딸에게 아버지가 해 준 대답이 바로 위에 인용한 문장이다. 백인과 흑인이 맞서는 경우 무조건 백인이 승리하는 관행과 편견을 넘어서지 못하고 늘 졌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지레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 변호사 아버지가 어떻게든 끝까지 밀고 간덕분에 그나마 배심원단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오래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미하지만 변화 가능성이 나타난 것이다.

 

5~6년 전에 그래픽 판으로 번역했던 작품인데, 작년에 어느 고등학교에 특강을 가면서 다시 훑어보다가 인용 문장과 재회했다. ‘시작하기 전에 패배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끝까지 밀고 가는 용기라는 말 앞에서 조선의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조선에서 순교한 이방의 가톨릭 신부들을 떠올린다.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을 향한 노력이 성공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 재산을, 하나뿐인 목숨을, 자식과 후손의 미래를 기꺼이 포기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파리외방선교회에서 조선으로 파견된 신부들은 또 어떤가. 20대 청년 신부들은 기껏해야 2~3년 활동한 후 박해로 처형당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조선행을 택했다. 생명 보존이라는 본능까지도 거스르는 그런 결단이 어떻게 가능한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애써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극히 사소한 차원이긴 하지만 내게도 밀고 가는 일이 있기는 하다. 가능한 한 덜 소비하고 가진 물건을 오래 쓰려고 애쓰는 것, 음식물을 버리지 않고 알뜰히 다 먹으려고 노력하는 것, 최선을 다해 종이 상자에서 테이프를 떼고 페트병 라벨을 뜯어내는 것. 그래 봐야 환경 파괴의 대세를 꺾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이 그렇다.

 


 

📖 엘케 하이덴라이히, 《나로 늙어간다는 것》

 

 

노년이 한 사회 안에서 갖는 의미 혹은 무의미는 그 사회 전체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은 내가 속한 여성단체의 독서 모임에서 선정되어 읽게 된 에세이다. 80대 노년을 살아가는 독일인 여성 작가가 썼다. 저자가 말하는 나다운 늙음세상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대로 누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유명 작가로 돈 걱정이 없고, 두 번 이혼했지만 자녀가 없으며 현재는 스물여덟 살이나 어린 남자와 동거하는 저자의 모습이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는 노년 여성과는 사뭇 다른 모습임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조금 떨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미 살아온 방식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말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년을 주제로 한 여러 문학 작품과 유명 인사들의 발언을 성실히 모아 엮은 책이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위 인용 문장은 사회 속 노년의 의미를 묻는다. 우리 사회에서 그 의미는 썩 긍정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어느새 환갑을 몇 년 앞둔 나이가 되고, 주변 지인들과 함께 노년에 대해 종종 이야기를 나눠 본 느낌으로는 그렇다. 은퇴와 노년을 즐거운 마음으로 고대하는 경우는 드물다. 생활비 걱정이 없는 상황이라 해도 그렇다. 이건 GDP에 이바지하는 생산 가능 인구의 의미가 강조되는 우리 사회, 그리고 그 사회에 적응해 오래 살아온 탓에 다른 삶을 상상하기 어려워진 개인의 모습을 드러내 주는 것 같다.

 

더 이상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노년은 사회 안에서 의미가 없고 이후 세대의 부담이 될 뿐이라는 생각은 편협한 가치. 사회를 한 번에 바꾸기는 어려우니 일단 노년의 개인들부터 성찰을 시작해 볼 일이다. 성인기 삶을 준비하는 시기, 경제활동에 매진하는 시기, 그리고 문화나 봉사 등 다른 활동에 집중하는 시기로 인생을 나눠 보면 어떨까. 그러면 그저 먹고 노는 거야.”넘쳐나는 시간을 주체 못 해서 큰일이야.” 대신 이제 그동안 못했던 걸 뭐든 시작할 수 있게 되었어.”내가 도움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지.”로 바꿔 말하게 되지 않을까.

 

독서 모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하나 더 덧붙인다. 노년을 나답게 살려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 노년에 앞선 두 시기 동안 여러 경험과 감정을 통해 나를 계속 파악해 나가야 노년의 도 제대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음은 어디 있지? 어떤 죽음이지? 죽음이 없었으므로 이제 그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 이거구나!’ 그는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기쁠 수가!’”

 

작년에 이 작품을 번역했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번역본이 여럿이니 거기에 하나 더 보태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번역하는 내게는 다시금 큰 울림을 주었다.

 

세상의 기준에 충실히 따르며 나름 성공적으로 살아가던 45세의 판사 이반 일리치는 갑자기 영문 모를 병을 얻고 자기 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죽음과 대면하고 만다. 죽음과의 만남은 한없이 외롭다. 아무도 죽음을 입에 올리지 않아서, 죽어 가는 이반 일리치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 의사들은 병이 어디서 온 것인지 진단하는 데 골몰한다. 그의 아내는 이반 일리치가 의사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잔소리만 늘어놓는다. 몸의 고통이 날로 심해지면서 이반 일리치는 스스로 죽음을 인정하고 죽음과의 대화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 이런저런 치료를 시도하는 모습, 고통과 죽음을 거부하며 맞서는 모습, 자기 삶을 돌이켜 보며 거짓투성이였음을 처절하게 깨닫는 모습, 결국 죽음 대신 빛을 발견하며 숨을 거두는 모습 등이 생생하게 진행되는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죽음의 과정을 흠씬 간접 경험하게 된다. 우리 모두 예외 없이 마주하게 될 그 죽음 말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내려놓음으로 수렴된다. 자기 삶이 품위 넘치며 훌륭했다는 믿음, 친구와 가족과 맺었던 관계에 차고 넘쳤던 거짓, 홀로 죽어 가는 억울함. 이 모든 것을 내려놓자마자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 줘야겠다는 마음, 그 진실한 배려가 빛을 발하며 죽음도 두려움도 사라진다. 마지막 순간을 빛과 기쁨으로 표현함으로써 톨스토이는 우리에게 위로를 안긴다.

 

죽어 가면서 삶을 돌이켜 보게 되리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조금 달리 보일 것이다. 진실한 삶과 거짓된 삶의 구분은 사람마다 다를 테고, 어쩌면 다른 기준을 들이대고 싶어 하는 때도 있으리라. 어떻든 삶의 순간들은 결국 죽음의 순간으로 이어지고야 만다. 자신에게 남은 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 우리는 죽음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기 일쑤다. 가끔이나마 이반 일리치를 기억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 훗날 돌이켜 보게 될 삶의 형태와 색깔을 만들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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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책을 번역하고, 글쓰기 수업에서 학생들의 글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기타 치는 일이 취미로 혼자 연주하기도 하고, 합주단에 소속되어 중주나 합주를 하기도 합니다. 더 잘 치고 싶어 매일 조금씩 연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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