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특집① “그날은 오지 말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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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특집① “그날은 오지 말도록 하여라”

이성례 마리아, 눈물과 십자가로 일군 신앙의 열매

2026. 09.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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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기를 내어라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한국 순교 성인의 믿음과 용기를 돌아봅니다

박해와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지켰던 그들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아들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품고도 끝내 순교를 택했던 이성례 마리아.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따라가 봅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경기도 안양에 있는 수리산 성지 전담 함상혁 프란치스코 신부입니다. 수리산 성지는 박해 시기에 형성된 교우촌으로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부모님인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이성례 마리아가 순교 전 마지막으로 지냈던 곳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성례 마리아 복자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믿음을 좇아 떠나다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이성례 마리아는 1818년 충청도 홍주(지금의 청양 다락골)에서 혼인하였는데, 당시 이성례 마리아의 나이는 17세였습니다. 그녀는 1821년 첫아들 최양업 토마스를 낳은 뒤 다섯 아들을 더 낳았습니다(의정 야고보, 선정 안드레아, 우정 바실리오, 신정 델레신포로, 스테파노). 1827년 둘째 아들 야고보를 낳고 최경환 프란치스코 가족은 서울로 이주합니다. 재산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오롯이 하느님을 믿기 위해 고향을 떠난 것입니다. 서울에서 다시 강원도로, 그리고 경기도 부평 접푸리를 거쳐 마지막으로 당시 경기도 과천 지방이었던 이곳 수리산 성지에 정착하게 됩니다.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순교

 

1839731일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태장 340대와 곤장 110대를 맞았고, 911일 마지막으로 곤장 25대를 맞은 뒤 그 이튿날 옥사하여 35세의 나이로 순교했다고 합니다.

 


 

배교의 아픔을 딛고 다시 신앙으로

 

그렇다면 이성례 마리아는 어땠을까요? 남편과 격리된 이성례 마리아는 두 살 된 젖먹이 막내아들 스테파노와 함께 여인들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곳에서 이성례 마리아는 막내 스테파노가 굶어 죽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먹일 젖이 나오지 않았고 다른 방법도 없어 막내아들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이성례 마리아는 결국 배교합니다. 남은 네 아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절박했을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장남인 최양업 토마스가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중국에서 유학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체포되어 형조로 압송됩니다. 옥에 갇혀 있던 다른 교우들은 배교하지 말고 순교할 것을 권고하며 용기를 주었고, 이성례 마리아는 다시 순교를 결심합니다.

 


 

마지막 당부

 

그런데 저는 이성례 마리아의 마지막을 전하는 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울컥합니다. 넷째 아들인 최우정 바실리오의 기록에는 둘째 아들 야고보에게 순교하는 날에는 절대 오지 말라고 당부한 내용이 전해집니다.

 

이때에 12세 된 야고보는 나이가 어림으로써 옥사쟁이에게 소청하여 옥중에 가끔 들 적에 푼푼이 주선하여 음식을 사 그 모친께 공궤(供饋)할 새, 노령배(奴令輩, 관노와 사령들)의 자식들이 알고 몇 번을 빼앗긴지라. 그 후부터는 큰 신바닥에 돈푼을 넣어 신고 다니더니, 하루는 모친께 들어가매 모친이 머리를 빗겨 주시며 이르시되아무쪼록 어린 동생들을 각별히 사랑으로 보호하여 친애하며, 아무 곳, 아무 곳에 각각 데려다 두고, 아직 어떻게든지 지나노라면, 중국 오문(澳門, 마카오)에 가 있는 너의 형이 나오면, 자연히 안배하리라하시며, “아무 날은 내가 치명하는 날이라. 그날은 오지 말도록 하여라. 만일 내가 너를 보면, 미진한 육정에 유감이 들까 하니 오지 말라하시며, 어서 나가기를 재촉하시니, 마지막 하직하고 나오는 모자 정이 어떠했을꼬.

 

야고보의 어린 가슴 무이는 듯 막히고, 눈물은 앞을 가려 지척을 분별할 수 없더라. 시름없는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전전푼푼(錢錢分分)이 모아 가지고, 모친 치명하신다는 당일에 옥사쟁이를 찾아가서 묻되, “이번 행형하는 희광이[즉 회자수]가 누구냐?” 하니, 아무개라 하기에, 찾아가서 있는 전냥을 주며 부탁하기를, 모습이 이러이러한 죄수는 우리 모친이시니 칼을 갈아 행형하되 각별히 조심하기를 청하니, 무도한 희광이도 칭찬하며 염려 말라 하더라.

 

이에 시간이 당도하매, 여러 죄수 치명자들을 당고개(堂峴)로 나수하여 회합하고, 차례로 행형 참수하여 한곳에 시체를 모아 구렁에 넣고 먼 가래로 시체를 묻는지라. 어린 야고보는 먼 곳에서 이 정경을 보고 실성 낙담하여 집으로 돌아오니, 어린 동생들은 어머니가 언제나 오시냐?”고 묻는다. 이에 야고보는 무슨 말로 대답하였을꼬.

 

마지막으로 아들의 머리를 빗겨 주면서 이성례 마리아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아들 야고보와 헤어진 뒤 이성례 마리아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을 것입니다. 어머니와 헤어져 집으로 가던 야고보도 울었습니다. 어머니가 아프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 달라고 희광이에게 부탁할 때, 이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십자가는 은총의 씨앗입니다

 

왜 이렇게 큰 고통을 주십니까? 하느님을 믿으면 축복을 주셔야지 왜 이리 큰 십자가를 주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믿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은총입니다. 십자가를 기쁘게 짊어진 이성례 마리아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후손 가운데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비롯해 11명의 사제와 9명의 수도자가 나왔으니,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지금 십자가를 지고 계신 분들께

 

지금 무겁고 큰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교우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눈물이 마를 새가 없고 하느님이 원망스러우며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힘을 내고 기뻐하십시오. 그 무거운 십자가가 바로 보물입니다. 100배의 축복을 주시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이니 하느님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십자가는 은총의 씨앗입니다.

 


 

수리산 성지에서의 부활 대축일 미사. ⓒ 함상혁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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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수원교구 사제. 수리산 성지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라는 말씀을 좋아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아름답게 담은 이 기쁜 복음을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잘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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