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다르다. 생김새, 목소리, 걸음걸이, 태도처럼 겉모습뿐 아니라 심성과 사고방식까지 모두 제각각이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도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하는 삶은 그 자체로 값지다.
우리는 일상과 신앙생활 속에서 자주 ‘일치’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존재 사이에 물리적으로 완전한 일치는 있을 수 없다. 내가 타인과 같아질 수 없듯이, 타인도 나와 같을 수 없다. 진정한 일치란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신비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토록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인간 존재가 함께 살아갈 때 피어나는 삶의 충만함을 지향하도록,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체험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 아닐까. 부부 간의 일치, 가족 간의 일치처럼,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순간일수록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내어 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우리는 ‘각자’로 태어났지만 ‘우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때 진정으로 충만한 생명을 체험할 수 있다. 반대로 오직 자신만 사랑받기를 바라며 자신을 내어 주지 않는 이는 결국 누구와도 일치를 이루기 어려워질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적인 인간 존재의 이기심을 극복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는 키르케고르의 말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너의, 너는 나의 ‘동행’
내게는 ‘일치’보다 ‘동행’이라는 말이 더 현실적이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동행은 사람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삶을 떠올리게 하기에 일치를 보다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내가 누군가의 동행이 되듯, 누군가도 나의 동행이 되어 준다.
지난 10월 25일, 이 같은 동행의 아름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모임을 가졌다. WYD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 주교님께서 가톨릭평화방송 촬영을 하면서 알게 된 봉은사 청년들과 향린교회 청년들, 그리고 봉령사 청년 법우들과 서울대교구 청년부 소속 청년들이 이 좋은 만남을 함께하고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특히 명동대성당을 채운 수많은 예술 작품을 직접 살펴보며 설명을 듣는 ‘가톨릭 미술 이야기’ 도슨트를 통해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는 자리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 자리에서는 자신이 믿는 종교의 교리를 자유롭게 설명했다. 서로의 다름에 대해 반박하거나 거부하는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종교를 믿고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더욱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과 기도가 무엇인지 폭넓게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뿌듯했다기보다는, 감사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서로 다른 이들의 여정
많지는 않지만, 세계청년대회를 종교 행사로만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청년들이 만나 인생이라는 여정 가운데 참된 가치를 함께 발견하고, 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하자고 외치는 자리를 단순히 종교적인 행사라고만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청년들이 뜨거운 젊음 안에서 삶을 이야기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 배우며 나누는 이 자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 다양한 종교를 가진 대한민국 청년들이 아름답게 ‘동행’하고 있음을 전 세계 청년들에게 보여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 청년들도 이를 바라며 아름다운 동행을 만들어 갈 것이라 믿는다.
다르다는 것은 함께 사는 인생의 여정에서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 세계청년대회 조직위원회의 많은 직원들, 300여 명의 센터 봉사자들과 함께 일할 때에도 다름으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에만 매몰된 경우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동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나아가고 싶다. 아울러 세계청년대회를 향한 여정에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