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모빌리쿠스(Homo Mobilicus)’는 스마트폰을 몸에 붙이고 살아가는 새로운 인간형을 일컫는 말이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뒤, 식당에서 밥을 먹는 동안 아기들에게 스마트폰을 보여 주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세상이 떠나가라 울던 아이들도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지면 세상 제일 좋은 물건을 만난 것처럼 조용해지는 신비를 경험한다. 이렇게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성장하여 성당에 온다. 아이들에게 아무리 놀라운 하느님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하느님을 향한 아이들의 관심은 스마트폰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 모습을 토요일 오후가 되면 볼 수 있다. 토요일 학생 미사 봉헌 전 1층 로비로 내려가면 대략 열 명 정도의 아이들이 앉아 있다. 그들의 얼굴이 저녁 길가 네온사인처럼 반짝인다. 그 이유는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가서 “안녕, 잘 지냈어?” 하고 인사하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 한 채 “안냐세요.”라는 짧은 인사만 들려온다. 그런 모습에 괜히 심술이 나서 학생들의 스마트폰 화면에 손가락을 ‘스윽-’ 하고 그으면 “아, 쫌!” 하는 소리만 남기고 그들은 저만치로 멀어진다. 그리고 다시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는다.
우리는 왜 스마트폰에 중독되는가?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도저히 놓지 못하는 이유는 게임이다. 그들은 스마트폰 속 세상에서 계속 ‘성장’시켜야 하는 무언가를 놓지 못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안 됐다. 모래내 성당에서는 미사 전에 바구니를 돌린다. 미사 시간만큼은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을 먼저 내려놓는 것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내기 전에 학생들은 분주하게 무언가를 누른다. 그리고 미사가 끝나면 누구보다 빨리 스마트폰을 쥐고 확인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한 아이가 말해 주었다.
“신부님! 제가 매일 키우는 게 있는데,
그 시간을 놓치면 안 돼요.
미사 전에 ‘성장 버튼’을 눌러두고,
미사 후에는 업그레이드시켜야 해요.”
결국 학생들은 스마트폰 사용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아이들만의 모습일까? 성인들에게서도 스마트폰 중독을 의심해 볼 수 있는 모습들이 있다. 미사 전 가끔 성당 안을 지나가면 스마트폰으로 《매일 미사》를 보는 척하지만, 문자에 답을 하는 신자, 주식 실황에 눈을 떼지 못하는 신자, 보던 SNS를 끝내지 못해 갑자기 영상의 소리가 나서 당황하는 신자들이 보인다. 분명 성당이라는 거룩한 공간에 들어오면 세상일에는 관심을 끊어야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연결과 자극에 굶주리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왜 이런 모습까지 보이는 것일까?
예전에 중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나온 전문가는 “왜 중독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세상사 모든 일이 금방 답이 나오지 않는데,
스마트폰만 있으면 즉각적인 답을 찾을 수 있어요.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답이 구해지는 것에 쉽게 중독됩니다.”
매일 십자가 바라보기
그러고 보니 스마트폰, 약, 돈, 성, 이런 것들에 쉽게 중독되는데 기도에 중독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기야,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복음 묵상 글을 SNS에 올리고 구독자들의 빠른 반응에 나도 모르게 중독되어 기도 시간보다 SNS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이런 외국 신부님 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다. 신부님은 아침에 일어나서 스마트폰 대신 작은 십자가를 손에 들고 바라보았다. 세수를 하면서도 한 번, 아침을 먹으면서도 한 번, 걸으면서 또 한 번, 공부를 하면서도 틈틈이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심지어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 영상을 보며 ‘내가 왜 이 방법을 몰랐지?’ 하며 ‘매일 십자가 바라보기’에 도전해 보았다.
주머니에 작은 십자가를 넣고, 스마트폰 볼 시간에 십자가를 꺼내 보았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십자가를 바라보니 예수님의 못 박힌 손과 발이 더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오래 보고 있으니, 친구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저리 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게다가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십자가를 가슴에 꼭 안으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예수님께 고백하게 되었다. 매일 십자가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지금은 스마트폰 보는 시간과 십자가 보는 시간이 비슷해진 것 같다.
신앙인에게 필요한 영적 도파민
스마트폰은 우리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왔다. 스마트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스마트폰 사용을 무조건 줄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책을 읽으면 자녀도 책을 읽고, 부모가 텔레비전을 보면 자녀도 텔레비전을 본다. 그리고, 부모가 기도를 하면 자녀도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될 것이다.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기도하는 즐거움으로 바꾸기 위해, 벽에 걸린 십자가를 내려서 품에 안아 보기를 바란다. 아빠가 안아 보고, 엄마가 안아 보며, 그 따스함을 자녀에게 전달해 주며 축복해 주는 것, 이것이 세상의 도파민을 영적 도파민으로 연결하는 방법일 것이다. 나도 스마트폰 없이 십자가만으로도 즐겁게 살아가는 사제가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