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행위 자체가 도전이 되는 책이 있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심오한 도전이었던 책은 20세기를대표하는 신학자의 저서 《발타사르, 예수를 읽다》이다. 신학 전공자도 아니며 성경에 대한 지식도 턱없이 부족한 내가 대신학자의 글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대림 시기가 되고 연말이 다가오니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의 저작 중에서 가장 얇은 편에 속하는 책 《발타사르, 예수를 읽다》는한 마디로 신과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인식하고 관계하는지에 관한 하느님의 계시를 풀이하는 책이다.
발타사르의 신학적 관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쓰일 당시의 학문적 유행을 살펴 볼 필요가있다. 모더니즘 사조가 유행하며 그리스도를 인문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접근은 발타사르가 보기에 예수님의 인성에만 집중해 신성을 누락시킬 위험이 있었다. 즉 발타사르는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묵상 없이 지식의 차원에서만 예수님을 이해하려는 시도에 우려를 표한 것이다. 예수라는 존재를 인간적인 시각에서만 해석하는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발타사르는 ‘사람이 신을 인식한다’는 명제의 주체와 대상을바꾸는 질문으로 1장을 연다.
그 질문은 바로 “예수님은 우리를 아시는가?”이다. 사실 전능하신 하느님이자 우리를 만드신 주님은 이미 인간을 속속들이 알고 계시므로 이 질문은 바꿔 말하자면 ‘예수님이 어떻게 인간을 아시는가, 예수님이 인간 이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발타사르는 신과 인간이 결정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즉 죄와 고통의 차원을 끌어들인다.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죄와 고통은 하느님께서 부재하신다는 감각으로부터 온다. 그런데 빛이시며 선 그 자체인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느님이 없는 상태를 경험(?)하실 수 있을까? 여기서 육화의 신비가 계시된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라는 인간의 몸으로 세상 한가운데에 오셨고 죄 없으신 이는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에 내던져지고 이내 죽음에 이른다. 발타사르가 주목한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음’을 체험하고 완전한 어둠으로 걸어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예수님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벌을 받으셨다’, ‘저주 받으셨다고 느끼셨다’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면 안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명백히 밝히고 있다.
“평생 성부와 일치를 이루며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 양식이었던 아드님보다 하느님께 버림받는 것을 더 처절히 겪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드님은 자기 존재의 모든 끈으로 하느님께 매달려 있지만 더 이상 하느님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이제 죄인의 이름으로, 즉 하느님과의 접촉을 상실한 채로 느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56쪽)
이렇게 발타사르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에 기초하여 인간이 감히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앎을 가늠하고 추측해 본다. 그가 이 책에서 펼쳐내는 신학적 깊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성경 안에서 서로배치 되어 보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진술들(심판자이며 동시에 구원자, 인간이며 동시에 하느님)을 탐구하며 양 극점을 오가는 논의 전개 방식이 이상하게도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이 책에서 논증한 바대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부활과 십자가를 동시에 체험하며 때때로 한 극점에 머물다 견고해진다. 나의믿음 또한 앎과 삶의 무수한 흔들림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기를 기도해 본다.
by. 율리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