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 메리치, 내 삶의 길잡이

영성과 신심

안젤라 메리치, 내 삶의 길잡이

기도와 헌신, 신뢰로 가득한 성녀의 삶

2025. 04. 25
읽음 262

안젤라 메리치, 본명이다. 참으로도 내게 주어진 본명을 싫어했다. 본명을 바꾸겠다는 중고등학생 시절의 반항 어린 다짐이 스무 살이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오죽하면 본명을 바꿀 구체적인 방법까지 모색했을까. 그도 그럴 것이, 내 본명이 안젤라 메리치가 된 데에는 사소한 애환이 담긴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어느 날, 태어난 지 100일이 조금 넘은 아기가 세례성사를 받았다. 본명은 안젤라 메리치. 사실 안젤라 메리치가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올인에 등장한 송혜교 배우의 역할이 안젤라수녀님이었다고 한다. 드라마 전개상, 안젤라 수녀는 환속을 선택했지만, 당시 본당 주임 신부님께서는 아기가 송혜교 배우처럼 아름답게 성장하라는 의미로 아기의 부모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그렇게 생일과 가까운 성녀 안젤라 메리치가 본명이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본명이 정해졌으니, 사춘기 소녀의 마음으로는 충분히 반항적인 다짐이 생길만하지 않은가.

 사진 ⓒ 김윤우.

 

본명을 바꾸겠다는 유치한 생각은 가톨릭대 신학과 면접을 준비하는 때가 되어서야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 안에서 공부하겠다는 사람이, 면접 때 본인 본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 저는 제 본명이 싫어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21살이 되어서야 안젤라 메리치 성녀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고, 비로소 본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안젤라 메리치, 동정의 삶

안젤라 메리치 성녀는 13세 어린 나이에 종신 서원을 하며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봉헌하고 헌신했을 만큼 신심이 깊은 아이였다. 물론 그녀의 삶이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고 깊은 고독에 빠지는 고난과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모 마리아가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녀에게 발현했다. 그녀는 네가 걷기 시작한 길을 어디까지나 걸어야 한다. 그러면 너도 언젠가는 우리의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다.”라는 성모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는 그녀의 슬픔과 고독을 기쁨으로 바꿔 주는 일이었다.

 

이후에도, 고난과 시련은 닥쳐왔다. 악마의 유혹에 빠져 평화로운 마음을 잃고, 불순한 생각들에 고뇌하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하느님을 신뢰하였다. 끝없는 기도와 단식,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마침내 평화를 되찾았다.

 

또 그녀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설립한 작은형제회의 재속회에 입회하여 검소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으며,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병자를 돌보며 가난한 이를 돕는 등의 활동에 열과 성을 다했다. 이렇게 마음을 쏟아붓는 삶을 살던 안젤라는 임종을 앞둔 순간에도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였다. 그녀는 성부여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영원한 행복을 위해 하느님께 돌아갔다. 그녀의 헌신적인 신앙과 무한한 사랑은 신앙의 모범으로 남았다.

 

세례명, 새로운 의미를 갖다

그녀의 삶을 돌아보다, 되려 안젤라 메리치라는 본명으로 살아가도 될지에 대한 시름에 빠졌다. 또 본명을 바꾸겠다는 다짐은 어린 날의 객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춘기 때에는 본명에 대한 고민을 넘어 종교에 대한 반발심까지 있었다. 왜 부모의 종교를 따라야 하는지, 주일마다 성당에서 미사를 꼭 드려야 하는지 말이다. 그런데도 성당을 놀이터이자 집으로 삼고 복사단으로 활동하던 내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는 20대가 되어서도 끝나지 않았던 과제였다.

 

그러던 2023년 여름, 리스본 세계청년대회(WYD)에 참가하게 되었다. 얼떨결에 참가 신청은 하였지만, 당시 다니던 대학과 진로에 대한 고민도 있었던 때다. 인생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여전히 하느님을 원망하던 시기였다. 도리어 안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적인 실랑이 끝에 출발한 리스본 세계청년대회는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 특히, 본대회 기간에 만난 외국인 신부님은 내게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 주셨다. 고해를 보기 위해서 화해의 공원으로 가는 길에 만난 그분은 내게 안수를 주시며 너 혼자 태극기 달고 다니는 거 멋있다! 주님께서 늘 너와 함께하기를!”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순간 이후 수많은 생각이 맴돌았다. 오랜 시간 묵상한 끝에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야겠다.’라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러 차례 당신께서 제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며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가톨릭대 신학과에 진학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그 선택은 전환점이 되었다.

 

그렇게 면접 준비 중에 만난 안젤라 메리치 성녀는 내게 참으로 과분한 본명이었다. 또 세례성사를 주신 신부님께서 단지 송혜교 배우를 닮으라는 이유가 아니라, 안젤라 메리치 성녀처럼 하느님께 삶을 봉헌하고 그분의 도구로 삶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주신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물론 아직도 검소와 헌신에 도달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그뿐인가, 여전히 하느님을 원망하는 순간도 있고,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따져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떤 방식으로 하느님의 도구가 될 수 있을지 고찰하는 시간을 가지려 애쓴다. 특히 요즘에는 성화나 교회 건축 · 교회사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를 어떻게 풀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아마 안젤라 메리치 성녀의 삶을 돌아본 것이 마음에 남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본명이 유아 세례로 정해졌든, 스스로 정하게 되었든 간에 그것은 사람의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칠은을 주시는 것처럼, 각 개인의 삶에서 부족한 것을 성인의 모습에서 닮아 채우도록 하심은 아닐까. 앞으로 본명을 바꾸겠다는 치기 어린 다짐을 하는 일은 없으리라 본다.

 

 

주님, 당신의 부르심에 당신의 자녀가 무릎을 꿇고 응답합니다.

,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부르심에 더는 도망치지 않고 있고자 하니,

원하실 때 도구로 사용하소서.”

  


 참고 자료

  • 《가톨릭 성인전》, 가톨릭출판사
 
Profile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도보 여행을 하다 보면 때로는 예상치 못한 만남을 경험합니다. 길가에 피어난 작은 생명, 끝없이 출렁이는 바다, 광활한 하늘은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하고, 저를 주님께로 이끌어 줍니다. 혼자 떠나는 길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는 경이로운 순례입니다. 길 위에서 마주하는 삶의 조각들 속에서 발견하는 은총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