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이성의 문제는 그리스도교 철학의 역사상 매우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께서 드러내 주신 구원의 진리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그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신앙이 추구하는 신적 계시는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세계를 초월하기 때문에 인간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영역을 포함합니다. 반면에 철학이 탐구하는 세상의 원리와 삶의 의미는 반드시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철학은 신앙을 통해 계시된 진리를 파악할 때조차, 지성적 성찰과 논리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이유로 종교적 신앙과 철학적 이성은 오랫동안 긴장과 협력의 관계 속에서 상호 발전해 왔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위대한 성인들의 표현으로 정리합니다.*
“믿기 위하여 이해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intellige ut credas: crede, ut intellegas.” ― 아우구스티노
“신앙은 이해를 요구한다fides quaerens intellectum.” ―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즉 신앙은 철학을 초월하지만, 동시에 신앙이 추구하는 진리는 이성을 통해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진리에 대한 앎은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는 점에서, 신앙이 철학을 배제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 《가톨릭 교회 교리서》, 158항 참조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은 이러한 관점을 회칙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의 서문에서 “신앙과 이성은 인간 정신이 진리를 바라보려고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습니다.”라고 재확인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신앙과 이성의 관계는 마치 아담과 하와처럼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열매를 맺기 위해 결합하는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이 신앙과 이성이 서로에게 점점 더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문화에서는 둘의 조화를 추구하는 그리스도교적 입장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신앙과 이성의 대립은 어제오늘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서구 문명은 한때 ‘그리스도교 세계’라고 불릴 만큼 신적‧종교적 진리를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점점 세속적으로 변했고, 특정한 시대나 사상에 따라서는 그리스도교에 배타적이었으며 심지어 혐오적인 태도까지 보였습니다. 이를테면, 홉스, 볼테르, 흄, 니체, 러셀, 사르트르 같은 현대 철학자들은 스스로 무신론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로고스logos’가 그들이 중시하는 이성에 대한 믿음을 전혀 배척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실존주의자나 경험론자들은 신앙의 도움 없이 인간의 이성만으로도 진리를 탐구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1) 신앙과 이성을 구별한 아베로에스
사실 이성이 인간을 최상의 진리로 이끈다고 생각한 철학자는 극단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로 불리는 아베로에스(Averroes, 1126~1198)였습니다. 그는 본래 이븐 루시드Ibn Rushd라는 이름을 가진 이슬람 철학자인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유럽에 알리면서 라틴식 이름인 아베로에스라고 불렸습니다.
이성을 신앙보다 우위에 두었던 아베로에스의 사상은 시제 브라방(Siger Brabant, 1240?~1283?)이라는 인물에게로 이어집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으로 인간의 지성은 인간 육체를 주관하는 영혼에 속한 것이 아니며, 더 나아가 우주에 지성은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는 ‘지성단일론’을 펼칩니다. 우리가 개념을 형성하고 판단하는 것이 각자 개인의 지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거대하고 유일한 우주적 지성에 의한 것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사유에 따르면, 만약 누군가 신성모독적인 판단이나 행위를 한다고 해도 모든 것이 그렇게 판단하도록 한 우주적 지성의 책임이므로, 이성이 잘못 판단한 것을 개인 탓으로 돌릴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그리스도교 윤리와 신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이 사상은 결국 종교 법정에 서게 되는데, 이때 철학(이성)의 진리와 신앙의 진리가 모두 참되다는 ‘이중진리설’마저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즉, 앎과 믿음은 별개라는 것이지요. 철학적 진리와 신앙의 진리를 구별하는 이러한 주장은 단죄받게 되지만, 신앙과 이성의 거리는 멀어지고 서로 양극단으로 치닫게 됩니다.
(2)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한 가톨릭 교회
이성 중심의 철학에 저항한 대표적인 인물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이어받은 보나벤투라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성과 철학은 진리를 이해하는 데 좋은 도구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은 원죄로 인해 오염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류에 빠질 수 있는 이성을 지탱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신앙이야말로 이성이 파악할 수 없는 신비주의적인 영역까지 조명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시제 브라방이 이성과 철학을 우위에 두었다면, 보나벤투라는 신앙과 신비적 차원을 더 중시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성과 신앙이 서로 다른 극단의 길로 치달을 때, 신앙의 신비와 이성적 합리성이 양립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던 인물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가 있습니다. 그는 신앙과 계시 종교가 말하는 신의 존재도 이성의 차원에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종합의 대가였던 그는 신앙의 진리와 이성의 진리는 서로 다른 진리가 아니며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은 서로 협력하여 궁극적인 진리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에 대해 그토록 위대한 이성적 통찰을 남긴 토마스 아퀴나스도 말년에는 신비 체험을 하고, 지금까지 써 온 자신의 저술이 한갓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종합할 때, 가톨릭 교회는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신앙과 이성이 서로 적대적이 아니라 협력적인 관계라고 말합니다. 첫째, 이성으로 아는 진리와 신앙으로 아는 진리는 모두 ‘궁극적인 진리’에 속하는 것이므로 이성의 진리와 신앙의 진리는 서로 모순될 수 없습니다. 신앙인들은 이성이 추구하고 철학이 탐구하는 진리도 진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둘째, 신앙은 물론이거니와 이성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인간의 정신은 모두 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신앙과 이성을 서로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통합시킵니다.
믿음의 행위와 이성의 행위는 모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행위입니다. 한 인간 존재자의 신앙은 자신의 이성적 통찰을 발전시키며 이성은 신앙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믿음만 강조하면 비이성적으로 되고, 이성만 강조하면 진리의 신비적 측면을 볼 수 없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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