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곁에서 마주한 삶
촬영차 병원을 다녀오면 익숙해지지 않는 슬픔 때문에 마음이 지쳐 가고는 했다. 일과 일상을 분리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치료가 힘든 환자를 만나고 오면 머릿속에서 그 환자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가장 힘든 것은 병원에 들어설 때마다 마흔아홉에 세상을 떠난 젊은 아버지가 보이는 것이었다.
촬영을 하고 돌아온 날이면 어두운 방에 앉아 수없이 울었다. 그래도 새로운 촬영이 시작되면 툭툭 털고 일어나 병원에 갔다. 외래 진료가 있는 날이면 진료실 한편에 하얀 가운을 얻어 입고 앉아 명의들의 진료 장면을 어깨너머로 바라봤다. 간암 수술장에도, 뇌혈관 응급 수술에도, 백혈병 무균 병동에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마다 가지고 있는 생의 무게를 보았다. 삶은 거기에 당도해 있었다. 질병과 잔혹과 죽음이 서성거리는 병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곳에서 삶을 배우기 시작했다.
곁에 있어 주는 존재의 힘
‘어떤 사랑은 증명을 통해서만 구체화되고 힘을 얻는다.
만일 그 사랑이 한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나 환경,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역사적 시간에 대한 것이라면,
그래서 그 사랑이 이해이고 공감이고 연대라면, 그것은 분명히 증명돼야 한다.
다큐멘터리는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증명한다.’
_ 양희, 《다큐하는 마음》, 제철소
나는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감독이다. 요즘은 나를 소개할 때 다큐멘터리 창작자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기획도 하고 취재, 구성, 편집, 시나리오, 음악과 사운드까지 전부 나의 작업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제작 기간도 몇 년씩 걸리는 데다 상업적 흥행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왜 다큐멘터리를 만드냐?”라고 묻곤 한다.
2020년에 출간된 《다큐하는 마음》의 서문에서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마음을 ‘연대와 사랑’이라고 썼다. 다큐멘터리는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람과 사건,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증명하는 작업이라고. 세월호를 잊지 말자고 할 때, 이태원 참사를 잊지 말자고 할 때, 우리는 기억의 힘을 믿는다. 기억한다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사라지지 않으면 달라질 수 있기에 우리는 기억하자고 말한다. 지켜보자고 말한다.
실제로 다큐멘터리의 출연자들은 이런 고백을 한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절망을 마주할 때, 외롭고 슬픔에 잠겼을 때, 그때 곁에 카메라가 있다는 것이 힘이 되었노라고. 누군가 자신의 슬픔을 알고, 자신의 곁을 지켜 준다는 것은 그런 힘을 가진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사람이든 카메라이든.
다큐멘터리, 슬픔을 배우는 시간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누군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어떻게 하면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혹은 ‘많이 힘들지?’ 라는 말을 건네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비난은 쉽고 비판은 가깝다. 다큐멘터리는 그렇게 무뎌진 마음에 좋은 처방약이다.
5년 전쯤 네팔 이주 노동자 ‘미누’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안녕 미누>의 상영이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에서였다. 한 60대 관객이 “부끄러웠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본 것이 처음이었고, 이주 노동자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미안했고,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에게 관심을 가지겠다고 했다. 단 두 시간 만에 육십 평생 한 번도 관심을 가져 본 적 없던 이주 노동자에 대해 알게 되고 마음을 열게 되는 변화. 그것이 바로 다큐멘터리의 힘이다.
그래서 나는 ‘슬픔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권한다. 거기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는 이들이 있고, 진짜 인생이 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한 가지 더 욕심을 낸다면, 가능하다면 극장에서 보기를 권한다. 핸드폰이나 일상에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작품과 나 둘만 마주 앉아 사유하는 완전한 자신만의 시간을 가끔 가지면 좋겠다.
다큐멘터리 속 인생에는 실제 우리의 삶과 가까워 이해하기 쉬운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 얘기 같은 순도 높은 공감이 가능하다. 마치 자전적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말이다.
삶의 끝에서 드러나는 진심
“여행을 해 보고 싶어요.
어디든지 좋아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싶어요.”
《EBS 명의》를 집필할 때였다. 수술장으로 들어가는 환자를 만날 때면 꼭 던지는 질문이 있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다시 살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환자들의 병은 다양했지만 답은 거의 같았다. 그들의 바람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가족과 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 사느라 바빠 여행을 제대로 못한 것이 아쉽다는 이야기였다. 새삼 에펠탑이 보고 싶어서도, 성산 일출봉을 오르고 싶어서도 아니다. 여행이 주는 특별한 시간 때문이다.
여행을 떠날 때 우리는 비로소 일에서,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난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딸은 딸로서, 그 시간에만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힘은 거기에 있다. 나를 소비하지 않고 온전한 시간을 쓸 수 있는 기회.
가장 많이 들은 또 다른 대답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뭐가 어렵다고 한 번도 못했다는 후회를 가장 많이 했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 삶이 영원한 시간 속에서 선물처럼 주어진 짧은 소풍이란 걸 깨닫는다면, 우리는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한다는 말도, 당신이 소중하다는 말도, 태어나 줘서 고맙다는 말도 지금보다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멈춰 서야 보이는 것들
“자기 건강 그거 하나 지키지 못하면서 무엇을 그토록 좇으며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요즘엔 조금씩 보여요. 빨리 달리다 보니까 내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안 보였던 거예요. 서니까 보이는 거예요. 서니까……”
간암 병동의 저녁 회진 시간, 그날 나는 소화기내과 의사 선생님 뒤에서 회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환자는 오십 대 초반으로, 이미 폐로 전이가 된 간암 4기 환자였다.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한 그는 의사 선생님을 보자 반가운 얼굴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른 그의 몸은 가벼웠고, 눈빛은 진지했으며, 음성은 따뜻했다.
희망. 항암 치료를 받고 있지만 부작용이 크지 않고, 힘들지 않다며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그에게 기적이 일어날 거라 믿고 싶었다. 회진이 끝나고 병실에 앉아 그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제가 쉰셋인데 이제야 철이 듭니다…….”
그의 첫마디였다. 그 말은 사는 게 바빠 병을 키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과연 누가 이 치열한 인생의 뜀박질 속에서 문득 멈춰 서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멈춰 서야만 소중한 것이 보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질병 앞에 무릎이 꺾여 주저앉은 그는 그제야 자신이 지켜야 했던 것,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처음 만난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카메라가 곁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문득, 그의 얼굴에서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보았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는 그렇게 먼 시간을 돌아, 생면부지의 사람을 통해 내게 도착하고 있었다.
하여 나는 그가 살아온 이야기와,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내리치는 벼락처럼 들었다.
겨울을 지나, 슬픔을 아는 사람으로
그대가 아플 때,
그대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빈 들에 홀로 서 있을 때
내가 거기 가리라
_ 양애경, <연시(戀詩)를 쓰기 위한 연습> 중
우리에게 겨울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찬란하고 푸르른 잎들이 모두 지고, 기어이 빈 가지만 남는 그 계절이 올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외롭고 쓸쓸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조금 더 순해지고 조금 더 착해진다. 그리하여 나의 슬픔을 넘어 타인의 슬픔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우리가 이 들판에 홀로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 겨울, 이제 우리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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