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쓰는 사람, 쓰는 기쁨> 시리즈의 아티클로, ‘우리가 만약 일기 쓰는 어른이 된다면’에서 이어집니다.
권투에는 ‘앞손’과 ‘뒷손’이 있다. 평소에 주로 쓰는 손, 그러니까 글씨 쓰는 손이 뒷손이고 다른 손은 앞손이다. 앞손은 공격하기에 앞서 상대와의 거리를 재거나 상대의 펀치를 막는 역할이고, 뒷손은 강한 펀치를 날리는 역할이다. 뒷손의 공격이 상대에게 제대로 먹히려면 앞손이 자기 역할을 다해 줘야 한다. 잽을 날려 상대가 내 펀치의 사정거리 안에 있는지 아닌지 파악하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방이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손을 상대방 얼굴로 날리면 상대는 양손을 들어 방어하는데, 이때 뒷손으로 상대의 비어 있는 옆구리를 가격하는 식이다.
권투 학원에서 스파링하면서 앞손을 내밀 때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라디오 원고를 쓰기 전에 늘 하는 생각도 앞손이 하는 일과 같지 않을까. ‘청취자가 누구일까. 어디서 이 방송을 들을까, 이 오프닝에서 중요한 내용은 이 부분인데, 듣는 사람 귀에 쏙 들어가려면 어떤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까.’ 하고 가늠하는 일.
권투와 글쓰기
권투는 계획된 움직임과 전략적인 공격으로 이뤄진 종목이다. 앞손이든 뒷손이든 마구잡이로 펀치를 휘두른다면 그것은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많은 일이 그렇듯 글쓰기에도 전략이 필요한데, 문제는 정해진 공식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의정부교구에서 ‘함께 쓰는 기쁨’ 글쓰기 수업을 진행할 때도 여러 수강생이 글쓰기 전략을 물어 왔고 그럴 때마다 나는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일타 강사’처럼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비유와 설명을 곁들이면 좋으련만, 결국 많이 쓰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애매한 답변을 늘어놨다.
애매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글을 쓰기 전에 설계도부터 만들지만 누구는 쓰면서 다음 문장을 찾아가는 식으로 글을 완성한다. 문장을 짧게 쓰는 것도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은 아니다. 만약 자신의 글이 별로라고 느껴진다면 ‘독자를 확 잡아당기는 백전백승의 전략’을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충분히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빠른 길 같은 건 없다는 뜻이다.
글쓰기에 현란한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거나 남이 잘 쓰지 않는 생소한 어휘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은 분명 귀한 재능이지만 그런 기술을 익히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나한테 없는 재능을 갈구하는 대신, 글쓰기에서 내가 잘하는 것 한두 가지를 최대한 정교하게 다듬는 게 더 중요하다. 라디오 작가인 내게는 누구나 알 법한 쉬운 언어로 쓴다는 장점이 있다. 말은 글보다 쉬워야 하고 한 번 들었을 때 바로 이해돼야 한다. 나는 글을 쓸 때도 이 원칙을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글쓰기에도 스파링이 필요하다
복싱을 배우기 시작한 지 몇 개월 지났을 때였다. 스파링 상대의 주먹이 내 아래턱을 세게 친 적 있었는데 당황하거나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이거지!’ 싶은 생각이 들어 오히려 몸이 가벼워진 기억이 있다. 그전엔 상대에게 맞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덜 맞으면서 더 많이 때려야 한다고 여겼기에 펀치를 맞으면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트러지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제대로 얻어맞고도 자세와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은 것이다. ‘오, 나 맷집이 좀 늘었는데?’ 스파링이 끝나고서도 한참 기분이 좋았다.
맷집이 늘면 맞아도 손상이 적다. 잘하려면 필연적으로 많이 얻어터져야 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안전한 데서 혼자 써 봐야 늘지 않는다.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하는 글을 써야 한다. 비공개 계정이나 일기장에 쓰는 글도 좋지만, 누구나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글을 올리고 민감한 주제의 글을 쓰는 경험도 필요하다. 선거 때에는 내 정치적 소신을 밝히기도 하고, 때론 내가 속한 단체와 기관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기도 하면서. 어느 날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심한 비난도 받을 것이다. 그러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반론의 말을 준비하자. 아니면 내가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집단 지성 덕에 뒤늦게 깨닫고 ‘이불킥’을 해도 괜찮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부끄러워 나만 읽는 글을 쓰기보다는 여러 사람 앞에서 부끄럼을 당하면서 맷집을 키우는 편이 글쓰기 실력을 늘리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매일, 조금씩 강해지기
언제는 안 그랬느냐마는, 요즘 내 생활은 더없이 단순하다. 오전에 권투 연습을 하고 오후엔 글을 쓴다. 애들이 하교하면 간식을 챙겨 주고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을 한다. 식구들 저녁 먹이고 치운 후에는 낮에 다 쓰지 못한 원고를 마무리하거나 책을 읽는다.
직업이다 보니 매일 글을 써야 하지만 다행히 괴롭지는 않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날의 원고를 써서 제작진에게 보내고 나면 해방감이 느껴진다. 맺고 끊음이 없는 육아에 비해, 원고 작업은 한 편 한 편 완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쓰기 덕에 답답한 일상에서 숨통이 트인 셈이다. 아이 셋 낳아 키우는 동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던 순간이 셀 수 없이 많지만, 그때마다 글을 쓰면서 화를 가라앉히고 찢어진 마음을 기웠다. 이제는 권투가 그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비록 체육관을 나서자마자 걱정과 고민이 다시 펼쳐진다 해도, 샌드백을 치는 순간만큼은 머릿속이 말끔해진다. 하루 중 얼마 안 되는 자유로운 시간이다.
어느 날은 체육관 거울 앞에서 자세를 연습하는데 아무리 해도 엉성해서 화가 났다. 두 손의 위치나 몸과 다리가 회전하는 각도가 어설프기만 했다. 관장님이 옆에서 봐줄 때는 관장님의 몸짓을 복사해서 붙여 넣은 것처럼 똑같이 할 수 있지만, 관장님이 “좋네요.” 하고 가 버린 다음에는 말짱 도루묵이 된다. 수업 시간이 아닐 때 혼자 연습하면 내가 지금 하는 이 자세, 이 각도가 맞는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관장님에게 어떻게 해야 바른 자세를 구사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수천 번쯤 하면 알게 돼요.”
‘원투 원투’를 수천 번 하다 보면 총알이 발사되듯이 펀치가 나가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그러면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저절로 알게 된다고 한다. 평소 글을 쓰지 않았다면 대답이 그게 뭐냐고 버럭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글쓰기 역시 양이 질을 만든다. 밤낮없이 쓰다 보면 ‘아,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하고 머릿속에 저절로 전략이 세워지는 때가 온다.
글을 쓰고 아기를 돌보던 손을 글러브 안에 밀어 넣는다. 파트너와 스파링을 하고 샌드백을 치고 팔 굽혀 펴기를 하는 동안 나는 강해진다. 체력도, 마음도. 내가 좋아하는 은유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자기 삶을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다.”(《글쓰기의 최전선》, 메멘토, 2011.)
약자였던 나는 에세이를 쓰고 권투하면서 나를 표현하는 언어와 몸짓을 갖게 됐다. 글쓰기와 권투, 두 가지 다 잘하고 싶다. 오늘도 운동 가방에 글러브와 붕대를 챙겨 넣고 체육관으로 향한다. 땀 흘려 가벼워진 몸이, 더욱 신나게 활자의 세계를 탐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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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서는 글쓰기가 무너진 마음을 어떻게 다시 세우는지 함께 살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