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8일, 교황청 수석 부제 추기경인 도미니크 맘베르티 추기경은 이날 오후 7시 13분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 나와, 다음과 같이 라틴어로 새 교황 선출 소식을 알렸다.
Annuntio vobis gaudium magnum: 여러분께 큰 기쁨을 알립니다.
Habemus Papam: 우리는 교황님을 모셨습니다.
Eminentissimum ac Reverendissimum Dominum: 지극히 탁월하시며 존경하올 분이시며,
Dominum Robertum Franciscum: 로버트 프랜시스님,
Sanctae Romanae Ecclesiae Cardinalem Prevost: 로마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 프레보스트님으로서,
qui sibi nomen imposuit Leonem Decimum Quartum: 그분은 자신의 이름을 레오 14세로 명명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슬픔과 그리움 속에서 떠나보내고 새 교황의 선출을 고대하던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빨리 듣고 싶어 했던 말이 이 선포문을 통해 울려 퍼졌다. “Habemus Papam”, 곧 “우리는 교황님을 모셨습니다.” 의역하자면, “새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라는 라틴어로 된 전통적인 교황 선출 선포문이다.
교황 선출 선포문의 기원은?
이 선포문의 기원은 1414년, 콘스탄츠 공의회로 소급된다. 교회 역사상 동시대에 세 명의 교황, 곧 로마 교황, 아비뇽 교황, 피사 공의회 교황이 있게 된 서구 대이교(1378~1414년)를 종식하고 교회 개혁을 위해 소집된 콘스탄츠 공의회에서는 세 명의 교황을 폐위시키고, 마침내 1417년 11월 11일 마르티노 5세 교황을 선출하였다.
공의회 의사록에 따르면, 추기경 22명과 다섯 ‘국가’의 대표자 30명이 참석한 전무후무한 콘클라베(conclave)의 마지막 날에 충만하고 완전한 화목 속에 만장일치로 선출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교황으로 선출된 제나차노 출신의 오도 콜론나(Oddo Colonna) 추기경에게 이 선출을 받아들이겠느냐고 묻자, 콜론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전능하신 하느님, 당신은 죄인을 의롭게 하십니다. 당신께서 이 일을 이루셨으니, 찬미와 영광이 당신께 있나이다.”
이후 모든 선거인과 콘클라베 참여자들이 서열과 품계에 따라 나아가 새 교황의 발, 손, 입에 입을 맞추었다. 이로써 모든 이가 그를 로마 교황이자 최고 사목자로서 받아들였고, 그에게 그날의 성인 이름인 마르티노를 교황명으로 삼을 것을 권하였으며, 그는 이를 받아들였다. 마르티노 5세 교황은 곧 자기 방으로 들어가 교황 전례복을 착용한 뒤, 콘클라베 경당의 제대 위로 올려졌고, 그곳에서 Te Deum 찬송이 큰 소리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때 부제 재무관 루이 알레망(Louis Aleman, 1390~1450년)이 창문을 통해 경당 안으로 들어갔고, 이윽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Habemus Papam”이 선포되었다. 이 말은 “이제 우리는 [세 명의 교황이 아니라], 한 명의 교황을 모시게 되었습니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시작된 교황 선출 선포문의 전통은 이후 전례적으로 정형화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콘클라베에서 사용되는 라틴어 문구
아울러 콘클라베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라틴어 문구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Pro eligendo Romano Pontifice”
이것은 수요일, 모든 추기경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 모여 교황 선출을 앞두고 봉헌하는 마지막 미사의 명칭이다. 이 미사의 목적은 “로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하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tra omnes”
수요일 오후, 전례 진행자가 이 말을 통해 시스티나 경당 안에 있는 모든 비(非)추기경들에게 퇴장을 명령한다. 쉽게 말하면, “모두 나가시오!”라는 뜻이다. 그 이후부터는 오직 추기경 선거인들만 경당 안에 남게 된다.
“Et ego spondeo, voveo ac iuro. Sic me Deus adiuvet et haec Sancta Dei Evangelia, quae manu mea tango”
이는 모든 추기경이 비밀 엄수의 서약을 할 때 바치는 서약문이다. “저는 약속하고, 서약하며, 맹세합니다. 하느님과, 제 손으로 만지는 이 하느님의 거룩한 복음서가 저를 돕기를 바랍니다.”
“Eligo in Summum Pontificem......”
이는 투표용지에 미리 인쇄된 문구로, “저는 교황으로 ……를 선출합니다.”라는 뜻이다. 그 아래에 각 추기경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직접 기입한다.
“Testor Christum Dominum, qui me iudicaturus est, me eum eligere, quem secundum Deum iudico eligi debere”
투표용지를 제출할 때, 각 추기경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저를 심판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삼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선출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이에게 제 표를 드린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Acceptasne electionem de te canonice factam in Summum Pontificem?”
2/3 이상의 득표자가 나오면, 추기경단 단장이 선출된 이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당신에 대해 교회법에 따라 이루어진 교황 선출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Quo nomine vis vocari?”
선출자가 위 질문에 "예"라고 응답하면, 즉시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당신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자 하십니까?” 곧, 새 교황명 선택을 묻는 질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새 교황의 선출 사실과 이름을 공포할 때 교회 전통에 따라 라틴어를 사용하는데 조금 특이한 낭독법을 사용한다. 이번에도 교황청 수석 부제 추기경인 도미니크 맘베르티 추기경이 레오 14세 교황의 선출 소식을 라틴어로 발표했을 때, 그는“magnum”, “Papam”, “Dominum”, 등 어미가 ~m으로 끝나는 단어를 발음하면서, “마그늄↘마, 파팜↘마, 도미눔↘마”처럼 발음하였다.
이는 라틴어 발음 전통과 교회 예식 발성법의 특수한 방식이 결합한 결과로, 단어 끝음절, 특히 강세가 없고 짧은 폐쇄음인 -um, -em은 종종 다음 단어와 연결되는 형태로 길게 발음되는데, 중세 이후 교황 선출 선포의 전례적 형식미를 살리기 위한 의도된 낭독법이다.
이제 우리는 미국 출신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을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로 모시게 되었다. 그에게도 라틴어로 “Quo nomine vis vocari?”, 곧 “당신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자 하십니까?”라는 질문이 있었을 것이고, 그는 “레오 14세”로 자신의 이름을 명명했다.
그가 교황명을 “레오 14세”로 선택한 것은 레오 13세의 노선을 따른다는 표현일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레오”라는 교황명을 가진 교황들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레오”라는 이름을 가진 교황들의 역사
본래 “레오”라는 교황명을 처음 가진 사람은 토스카나 가문 출신으로 로마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레오”이다. 성 레오 1세(440~461년) 교황은 자신의 본래 이름을 그대로 교황명으로 택하였는데, 이러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교회 역사에서 그레고리오 1세와 더불어 ‘대(大)’라는 존칭을 받을 정도로 위대한 교황으로 평가받는 레오 1세 교황은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부여한 교회의 수위권과 보편적 권위는 사도의 상속자인 로마의 주교에 의해 계승되고 있음을 강조했으며, 에페소 강도 공의회(449년)와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당시 그리스도론과 관련된 이단들에 대항하여 자신의 교의서간(Tomus ad Flavianum)으로 그리스도론 정통 신학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곧 그는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분은 그리스도 한 분이고 같은 분이시며, 신성과 인성이 본래의 속성을 간직한 채 하나의 위격 안에 결합되었다고 가르치면서 단성론의 오류를 반박했다. 다음과 같은 그의 성탄 강론은 교회의 정통 신앙을 대변한다.
“만일 그분이 참된 하느님이 아니셨다면 우리를 치유하시지 못하셨을 것이며, 참된 인간이 아니셨다면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칼케돈 공의회에서 그의 교의서간이 낭독된 후 주교들이 “베드로가 레오를 통해 말하였습니다.”고 말할 정도로 교황의 교도권은 레오 1세 때에 이르러 보편 교회 안에서 결정적 권위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또한 레오 1세 교황은 452년 훈족의 아틸라 왕이 이탈리아 북부를 초토화하고 남부까지 압박하자 로마 원로원의 특사 자격으로 아틸라를 직접 만나 협상에 나섰고, 그의 강력한 설득과 위엄 있는 중재를 통해 아틸라군의 철수를 성사했으며, 이로써 로마와 이탈리아 중부 지역을 파괴로부터 구해 냈다. 이 사건은 교황권의 도덕적 권위와 외교적 영향력을 전 유럽에 각인시킨 계기였다. 이에 따라 그는 후대에 “대 레오(Leo Magnus)”라는 존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200여 년 후, 성 레오 2세(682~683년) 또한 교황명으로 “레오”를 택하였는데, 그 역시 서품 이전부터 이미 “레오”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본래 이름을 그대로 교황명으로 사용했다.
레오 2세는 로마와 비잔틴 제국 사이에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열었으며, 특히 <교황 인명록>은 그가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고 그들의 처지를 개선하고자 했던 노력을 높이 찬양하고 있다.
* 다음 화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