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전 볼일이 있어서 성당 안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쪽에서 어떤 사람들이 실랑이하는 모습이 보았다. 뒤에 가서 무슨 일인가, 하고 들어 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일어나요.”
“왜요? 제가 먼저 왔는데요.”
“오랜만에 오셔서 잘 모르나 본데 여기는 제가 예전부터 앉았던 자리예요.”
“자리에 누구 자리라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저는 여기 아니면 분심 들어서 미사 못 드리니까, 다른 데로 옮겨 앉아요.”
이는 한참을 계속되다 먼저 앉았던 사람이 옆으로 이동하면서 끝났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 미사 때 신자들이 앉은 것을 보니, 무슨 데칼코마니처럼 혹은 자력이 몸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똑같은 사람들이 매번 앉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것은 모래내 성당만의 일이 아니다. 다른 성당에서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한 사람이 매번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자리에 권리금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누군가 그 자리에 앉으면 예전부터 그 자리에 앉던 사람이 와서 이렇게 말한다.
“여기, 내 자리예요.”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를 권위에 눌려 자리를 이동하여 앉게 된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 강론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제가 모래내 성당 신자들의 모습을 보니, 미사 때마다 늘 같은 사람이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익숙한 것이 좋기는 하지만,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 똑같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만 평화의 인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 몇 차례는 자리를 옮겨 앉아 보세요.”
그 후로 며칠간 신자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랬더니 두 부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몇 년간 앉았던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자리에 앉아 보는 사람과, 그 자리에서 요지부동인 사람. 어느 날 자리를 옮겨 앉지 않는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신부님, 다른 데 앉으면 분심 들어서 미사를 못 드려요. 그러니 저에게 이리저리 옮기라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것도 분심 들어요.”
그 말씀을 들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미사 전례는 예수님의 삶을 바라보고 성체를 모심으로 우리 또한 주님을 닮고자 노력하기를 다짐하는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미사를 봉헌했다. 그 모습을 보니 마르코 복음서 10장 17절부터 27절까지 나와 있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예수님께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답하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
‘가진 것을 판다’는 것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즉 나를 비워야 그 안에 주님께서 들어오시는 것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그 사람만이 아니라 나도 내가 좋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놓지 못할 때가 있었다. 분명 주님을 위해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 앞에서는 주님의 일보다는 내 일이 먼저였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시기 전날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며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하기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하겠습니다.’라고 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예수님은 부활의 은총보다는 인간의 죽음을 받으셨을 것이다. 여러 가지 답답함이 마음속에서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성당에 가니 한쪽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자매님이 다른 자매님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늘 앉는 자리에 앉지 말고, 다른 데 앉아 보자. 신부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귀찮다고 하지 말고 해 보고 이야기하자고.”
내가 한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신자들을 보니 마음이 겸허해졌다. 맞다. 예수님께서도 열두 제자를 다 하늘나라로 이끌지 못하셨다. 주님께서는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셨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그 몫이 있는 것이다. 사제는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신자들에게 말하기 전에 나 자신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기 위해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가진 것, 즉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팔아 가벼운 마음으로 주님의 뒤를 따라
하늘나라로 향하는
우리가 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아멘.